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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변화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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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해인사 개산 1,200년 - 황찬익 1996년 12월 178호
가야산 해인골프장 반대 서명운동 참여 인원이 백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찍이 숱한 목적의 서명운동이 있었지만 백만이라는 숫자를 넘어선 예는 단 두 번뿐이다. 94년 쌀 수입개방 반대운동과 지난해 오일팔 특별법 제정운동이 그 보기의 전부라고 한다. 이 운동들에 견주어 해인골프장 문제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민의 생활고와 관계가 깊은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해인골프장 문제는 왜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켰을까?
사람에 따라 그 해답을 찾는 방식이 다르지만 대부분은 예전에 비해 국민의 문화의식이나 환경의식이 고양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얘기가 일리는 있지만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더 직접적인 원인을 찾는다면 이 문제의 핵심위치에 있는 해인사가 알게 모르게 국민들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불자들에게 있어 해인사는 은연중 한국불교의 구심으로 여겨져왔음이 사실이다. 또 해인사는 불자가 아닌 일반 국민에게도 태생적인 불교에의 그리움을 갖도록 만드는 마음의 귀의처 같은 역할을 해왔다.
여기까지 동의한다면 얘기를 더 진척시켜보자. 해인사의 위상이나 역할이 이처럼 굳어지게 된 데는 몇 가지 계기가 있다. 성철스님을 비롯하여 근대 이후 가야산에 무게를 얹었던 여러 큰스님들의 존재가 해인사의 오늘의 위상을 만들어 왔다. 한편으로는 어느 나라 어느 절에서도 볼 수 없는 팔만대장경이라는 성보문화재가 해인사에 있음으로 해서 해인은 해인다울 수 있었다. 그 밖에도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인 해인사 강원을 빼놓고 해인사의 영향력을 말할수 없다. 어쩌면 강원에서 배출해낸 수많은 스님들이 해인의 가장 큰 자부이지 않을까? 그 뿐 아니다. 이 모든 요인들이 조화롭게 합치될 수 있던 해인사만의 분위기, 곧 대여섯 문중이 상존하면서도 한 문중에 의해 전횡되지 않고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온 것이 오늘의 해인사를 있게 한 또 다른 요인이다.
나는 이 네 가지 요인 가운데 오늘날 해인사가 보이고 있는 바람직한 모습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요소는 뒤의 두 가지라고 본다.
곧, 문중과 사자상속師資相續이라는 봉건적인 틀에 얽매인 불교집안에서 젊고 유능한 스님들이 유독 한곳, 해인사 강원으로 모여드는데 아무런 잡음도, 껄끄러움도 없었음은 정말 다행한 일로서 그것은 불교 내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를 논의하는 공론의 틀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오는 성과를 남겼다. 또한 대부분의 근대 고승들이 거쳐간 해인사라서 남은 발자취에 따라 여러 문중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어느 한 켠의 독단이나 독선을 견제했던 민주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도 앞서 말한 공론의 틀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조건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런 점들로 인해 해인사의 역동성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살아 움직여 온 것 아닐까.
결국 해인사의 이런 특징적인 측면은 종단 내에서 유일하게 불교 발전에 대한 총체적인 안목을 만들고 유지해왔다. 종무행정에도 치우치지 않고 포교나 교육, 또는 수행이나 교학 에도 편향되지 않으며 지역이나 연배, 문중과 파벌, 보수와 진보, 각 개인의 작은 성향 차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별이 공통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였던 경험 자체가 해인사였다.
그런 면에서 한국불교가 가져야 할 균형감의 잣대 역할을 그야말로 조계종 최초의 총림인 해인사가 해왔다.
이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조선 오백 년 동안 그리고 일제의 해방 뒤 정화 운동기 까지 특정 사안이 아니면 한자리에 앉아 본 경험 없던 한국불교였다. 일상에서 일상적인 사안을 가지고 여러 부류의 스님들이 마주 앉아 본 경험의 출발이 해인사 강원 아니였을까 싶다.
앞으로 육 년 뒤 , 개산 1,200주년을 맞는 해인사의 이런 건강한 풍토는 여전히 건강하다. 하지만 이런 우려를 해본다. 해인사가 1,200 성상을 맞기까지 그 이면에는 지킬 것이 너무도 많아진 게 아닌가?
당장 해인사를 감싸안고 있는 가야산을 지키기 위해 백만이 넘는 서명인이 동원됐다. 또 앞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을 지켜야 하고 해인사에 몸담았던 역대 고승들의 이름도 지켜야 한다.
1,200년의 세월 위에 꿰어진 지켜야 할 자랑거리가 그 뿐이겠는가.
역사가 쌓일수록 지킨다는 것의 소극성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요즈음 불교의 풍토 자체가 자칫 \'지키는 불교\' 로 주저앉아 버리지 않았는지 우려스럽다.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필요한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보다는 지키지 못할 과거의 계율과 환경, 전통 그리고 명성에 끊임없이 얽매어 들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허울뿐인 이천만 불자를 지키려는 노력만 있지 실제 신도증을 발급 받은 신도수 오만을 육만으로 늘리는 작업은 지지부진 하다는 얘기다. 과거의 수많은 고승들의 위업을 지키기보다는 오늘 한 사람의 지도자를 배출하는 것이 더 촉급한 문제다.
또 과거에 만들어진 문화재를 지키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오늘의 문화재를 창조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물론 지키는 것이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 지킨다는 것은 범하는 사람을 없게 만드는 창조적인 노력의 결과다. 이 창조성이 결여된 가운데서는 지키는 사람도 범하는 사람도 한정없이 소모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오는 2002년을 맞이하는 해인사의 1,200년이 단지 흘러 가버린 세월의 양만 뜻한다면 무의미하다. 지금까지 1,194년 동안 들인 각고의 의지와 노력이 오늘의 해인사를 만들었음을 생각할 때 앞으로 길지도 짧지도 않게 남은 육 년이란 기간동안 해인사의 모습은 적어도 1,194년의 오늘과는 문득문득 다르게 창조적으로 변화해 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