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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속, 따뜻한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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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염화미소 - 성전 1996년 12월 178호
산이 높아 하늘이 옹색한 동네의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눈이 오면 발목을 묻어야 하는 그 곳의 겨울은 그 산의 높이만큼 추위또한 심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긴 겨울 동안을 동네 사랑방에 모여 장작불을 때며 화투를 치기도 하고 서로 담요 안에 발을 묻고 긴 겨울밤을 정담으로 보내기도 했다. 동장군의 추위가 거리를 꽝꽝 얼리고 지나갔지만 흐린 전구불 아래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 가슴은 장작불의 온기처럼 따뜻이 녹아 있어 그들이 풀어내는 풍경은 체온보다 따뜻하기만 했다.
일 거리가 없어야 비로소 한가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던 큰 산 아래의 사람들. 그들에게 어쩌면 겨울밤은 너무나 짧았던 것은 아닌지.
가끔씩 잠자리에 오줌이 마려워 마당에 나설 때면 밤늦도록 꺼지지 않는 불빛과 바람에 묻어오는 그들의 이야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믐의 시린 달 아래서 바라보는 밤 하늘은 살갗에 소름을 남겼지만 이즉히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웬지 내 발길을 놓아주지 않았다.
어른들의 시간인 겨울밤이 지나고 한낮이 돌아오면 그 때는 우리 아이들의 시간이었다.
변변한 놀이 거기도 없던 그 때 눈은 얼마나 반가운 것이었는지 .
눈이 가득 쌓인 날은 신문지로 미군 모자를 만들어 쓰고 눈으로 눈집을 만들고 병정놀이를 했다. 그 때 아이들은 누구나 대장을 하고 싶어 했지만 대장은 그렇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힘이 센 아이나 할 수 있는 대장을 아이들은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나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때 우리들의 병정놀이란 이쪽 눈 집에서 저쪽 눈 집까지 한 오백 미터쯤 되는 거리를 눈썰매를 타고 가서 상대편의 눈 집을 발로 폭파하는 것이었다. 눈 뭉치를 몇 십 개나 눈썰매에 싣고 상대 눈 집을 향해 달리며, 상대편을 향해 던지면 상대편의 아이들은 대개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것은 그냥 단순한 눈 뭉치가 아니라 물에 얼린 눈 뭉치였으니까. 그런 눈 뭉치를 맞아본 사람은 기억하리라. 그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 상대편의 눈 집을 점령한 우리는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눈 집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상대편의 아이들은 그저 한쪽에서 처량하게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들의 겨울은 그렇게 눈 집을 부수고 짓는 일로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웃음과 우정의 온도가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창가에서 성애가 낀 유리창에 가만히 손가락으로 잊혀진 얼굴들의 이름을 써 본다. 남헌이, 현철이, 영삼이, 그리고 강희 아줌마, 태완이 아줌마...,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유리창 너머로 내 유년의 겨울의 풍경들이 눈 덮인 큰산을 업고 지나간다. 문득 와닿는 시간에 대한 의문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으며 살아왔을까. 대답은 언제나 유보인 채 남겨져있다. 살면 살수록 질문만이 뚜렷해지고 대답은 날로 희미해져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다만 내 유년의 웃음과 아득한 거리만이 선명하게 와 닿는다.
아직 몇 개의 감을 달고 추위 속을 견디고 있는 감나무를 향해 창을 연다. 문득 까치의 울음소리가 기다려진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 아침 큰 산 밑에서 긴 겨울을 웃음과 놀이로 함께 했던 따뜻했던 풍경 속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한해가 가고 있다. 이제는 이름조차 잊고 살 그들을 향해 저무는 한해의 안부를 묻는다.
여태 우리의 유년을 간직하고 사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