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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빛을 향해 걸어가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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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법연 1996년 12월 178호
아침의 산사는 그 햇살의 여롱함으로 눈부십니다. 조락의 계절 속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의 눈부심에 나는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봅니다. 파아랗게 얼어 있는 하늘. 그 차디찬 가슴속에 그토록 눈부신 태양을 품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가슴 깊은 곳을 응시해 봅니다. 무엇이 나의 내부에서 저렇게 눈부실 수 있을까. 나는 끝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맙니다. 수행을 한다고 가슴을 여미고만 살았지 사람들을 향한 가슴의 빛은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파랗게 시린 하늘 아래만 서게 되면 내 존재의 시간들에 사무치는 회한을 지니게 됩니다.
그럴 때면 언제나 도반인 그대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단 한번의 만남을 가졌을 뿐이지만 스님이 머물다간 자리에 자꾸만 허망한 눈길을 주는 것은 진정 스님 삶의 자세를 내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겠지요.
스님을 처음 만나던 날을 떠올립니다. 어느 산사의 객실에서 옅은 어둠을 안고 허리를 곧추세워 좌선을 하시던 그 모습. 나는 그 모습에 기가 질려 객실에서 객으로서의 권리도 내세우지 못하고 스님의 그 침묵 앞에서 숨죽여있어야만 했습니다. 스님 앞에서 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고요가 깨질까봐 나 역시 스님과 똑같이 결가의 좌세로 앉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스님을 따라나선 내 좌선의 시간은 자루하기만 했습니다. 스님의 좌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그 갑갑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엉덩이를 들썩여야 했고 그 때마다 무명 바지가 바시락거리는 소리가 스님의 깊은 침묵 속을 헤집어야만 했습니다. 그 때도 스님은 미동도 헛기침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일초일초가 그렇게 명확히 가던 시간이 저녁 여덟시를 알리고서야 스님은 비로소 가부좌한 다리를 푸셨습니다. 이미 어둠은 깊게 내리고 스산한 바람 소리만이 문풍지를 타고 들어와 우리 둘 사이에 놓인 깊은 어둠의 정적을 밟고 다닐 뿐이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의 어둠과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방에 불을 켰습니다.
전구 불 아래서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스님의 모습. 그 모습은 지루한 시간 속에서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상이하게 다른 것이었습니다. 구참 수좌에 바위 같은 모습을 한 중늙은이쯤이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불빛 아래서 어둠이 조각 나듯 그렇게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나와 비슷한 연배에 맑은 귀공자 타입의 스님 모습은 내 의아함을 뚫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내게 인사를 건냈습니다. 만난 지 두 시간 가까이 되어서야 우리는 서로 예를 올리고 통성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 인내한 뒤에 볼 수 있었던 스님의 미소는 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연배도 비슷하고 출가 년도도 비슷한 스님이 아주 오랜 지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내게 말했습니다. 오후 불식을 하고 밤에도 가급적 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 자지 않는다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그만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코도 골고 잠버릇도 그리 곱지 않은 내게 함께 자야 할 사람이 장좌 불와를 하는 이라는 사실 앞에서 나는 그냥 막막해 할 뿐이었습니다. 괘종시계가 아홉 시를 치자 스님은 먼저 이부자리를 펴고 눕자고 했습니다. 이불을 코 끝까지 올리고 빙그레 웃으며 자리를 청하던 그 때 스님의 모습.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것이 스님의 나를 향한 배려라는 것쯤은 알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스님은 내게 말했습니다. 스님 덕분에 모처럼 큰 잠을 잘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 나는 그 말에 그냥 피식 웃음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큰 잠자는 내게 모처럼 큰 잠잤다는 스님 말씀은 나를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대개 중의 만남이 그렇듯이 만나면 그냥 덧없이 헤어지는 것이 예사인데 그 때 스님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함께 만행을 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만행? 하루 밤도 갑갑했는데 이 중과 만행이라니. 택도 없는 소리라는 부정에도 불구하고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나는 그만 그러자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인연이겠지요. 자신도 모르게 막연히 끌리는 힘 같은 것을 그때 나는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스님을 따라 타박타박 걷던 강원도 산길에서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지요. 수많은 나무의 이름과 바람의 울음소리에 대해서. 한데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나무의 이름을 호명하던 스님의 목소리와 바람 속에서 쓸쓸히 웃던 스님의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직 이 한마디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도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을 사랑해야 하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해야 하고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전부를 불태워야 한다고.
나는 그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갑게 걸어가는 자의 발길 속에서 무섭게 불타버리는 시간의 의미들을 그리고 그 불타버린 시간들이 존재의 빛으로 눈부시게 퍼져 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단 한번 만났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린 하늘이 눈부시게 다가오는 날이면 스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을 불태워 존재의 빛을 빚던 아름다운 스님의 모습을 . 나도 언젠가는 빛을 찾아가게 되겠지요.
그 빛을 들어 이 세상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의 길을 밝히고 추운 곳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의 시린 가슴을 따뜻이 감쌀 날이 오겠지요.
산다는 것은 그렇게 존재의 빛을 빚어 나 아닌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그런 것이겠지요. 그런 삶의 의미를 나는 스님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코 끝에 바람이 찹니다. 스님이 그리워 편지를 썼지만 막상 부칠곳이 없습니다. 거처도 모르는 스님을 향해 쓴 편지를 제 가슴속을 향해 부치겠습니다. 그리고 빛을 찾아 걸어가는 스님의 모습을 닮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디서나 눈부신 존재로 걸어가시길 삼보 전에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