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니, 어머니,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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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조태일
1996년 12월 178호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는 영국 속담이 있다. 여기에서 \'어머니\' 는 영국의 어머니들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지구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잊혀지지 않는 얼굴, 그 소중한 사람\' 에 대한 내용으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어머니\' 에 대해서 쓰기로 했다. 나는 삼십 수년 동안 시를 써왔는데 그 동안 쓴 오백여 편의 시 가운데는 내 어머니에 대한 시가 십여 편 된다. 이 십여 편의 내용을 중심으로 써 볼까 한다.
\"열일곱에 시집오셔서/일곱 자식 뿌리시고/서른일곱에/남편 손수 흙에 묻으신 뒤//스무 해 동안을/보따리 머리에 이시고/이남땅 온 고을을/당신 손금인 양 뚝심으로 누비시고/훤히 익히시더니,//육십 고개 넘기시고도/일곱 자식 어찌 사나/옛 솜씨 아슬아슬 밝히시며/흩어진 자식 찾아/방방곡곡을 누비시는 분.//에미도 모르는 소리 끄적여서/어디다 쓰느냐, 돈 나온다더냐 시 쓰는 것 겨우겨우 꾸짖으시고,/돌아앉아 침침한 눈 비비시며/주름진 맨손바닥으로/손주놈의 코를 행행 훔쳐주시는분.(「어머니」전문)\"
내 어머니는 열 일곱 나이에 서른 다섯의 노총각 스님에게 시집오셔서 이십여 년간 칠 남매를 낳으시고 서른 일곱에 아버지와 사별하셨다. 홀몸으로 이 일곱 자식을 키우기 위해 어머니는 실로 이십여 년 동안이나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시며 행상을 하셨다. 육십 고개를 넘기신 뒤에는 장성하여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자식들이 어떻게 사나 걱정이 되어 한 달이 멀다 하고 \"온갖 것이 남편을 닮은/둘쨋 놈이 보고파서/호남선 삼등 야간열차로/육십 고개 오르듯 숨가쁘게 오셨다.
(중략) 타고난 시골솜씨 한철 만나셨나/산 일번지에 오셔서/이불 빨꼬 양말 빨고 콧수건 빨고/김치, 동치미, 고추장, 청국장 담그신다/양념보다 맛있는 사투리로 담그시며(「어머님 곁에서」부분)\"자식들을 보살폈는데 팔순이 가까워서도 그러셨다.
\"팔순이 눈앞인데/어머님은/부지런하시다//삼라만상이/쉴새없이 움직이듯//세상도 넓고 세월도 많다시며/광주에서 대구로 또 어디를 다니시다가/꼬부랑 허리로 궂은 하늘/가까스로 달래며 받치며 오셨다//손자 , 며느리, 손녀, 차남/밥상머리에 제 편안대로 섞어 앉히고/깻잎무침, 깻잎 부침이, 깻잎삼 먹으라며 느릿느릿 말씀하신다. (「깻잎쌈을 싸며」에서)\"
어머니께서는 \"노는 땅 있어서는 안 된다. 임자가 있든 없든 누가 거두어가든 말든 빈땅엔 씨를 뿌려 사람들이 먹에 해야 한다고\"늘 말씀하셨다. 위의 시에서 \'깻잎\' 도 상경했을 때 양재동 지나다 묵힌 땅이 있 길래 씨 뿌려놓았었는데 잡초 속에서도 이렇게 자랐더라며 한 짐 뜯어 머리에 이시고 오신 깻잎이다. 처녀적부터 어머니는 나이 어린 노동자 였다.
\"어머니는 처녀적부터/일본사람이 경영하는/생사공장의 여공이었다//누에가 걸쳤던 새하얀 비단실 뽑아 올리면/펄펄 끓는 물 위에/기름 번지르르한 노오란 번데기가/다투어 둥둥 떠올랐다//해는 왜 그리 길고/배는 왜 그리 고픈가/ 현장 감독의 눈을 피해 졸고/졸면서 번데기로 배를 채웠다(중략) 열일곱에 서른 다섯 노총각 스님에게/업혀와서 칠 남매를 낳으신 후에도/어머님은 생사공장의 여공이었다/6.25가 끝난 한참후에까지.(「어머님 처녀적」에서)\"
물론 일제시대 때부터 육이오가 끝난 한참 뒤까지 생사공장에 다니신 것은 아니었다.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사 사하촌에서 살다가 여순 사건이 일어나자 우리 식구들은 살아남기 위해 광주로 피난을 와서 농사를 지었는데 농한기 때는 처녀적 솜씨를 살려 생사 공장에서 노동을 하신 것이다. 나는 내 누이동생을 업고 생사공장 까지 가서 점심 시간에 젖을 먹이곤 했다. 어머님이 귀가할 때를 맞춰 마중을 나가곤 했는데 가끔 어머니께서 다림 밑의 거지에게 번데기를 주는 것을 보았다. 간밤에 큰 비나 큰 눈이 오면 몸을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어머니를 가끔씩 보기도 했다. 어려운 살림인데도 꽁보리밥일망정 \'다리 밑의 왕자\' 인 거지들에게 갖다 주는 심부름도 나는 많이 했다. \"수족을 잘 쓰지 못한 채/빼꼼한 눈만을 껌벅이는 그 왕자를 /누가 버렸으나 우리의 땅에서/생사공장에서 귀가 할 때마다 /누이동생 업고/마중가다가/나는 보았다/어렵사리 들고 나온 번데기 한웅큼/그 왕자에게 주는 것을/걱정 많아 보이는 어머니의 전체를 (「다리 밑의 왕자」중에서 )\"
나는 결혼하고 나서부터 어머님께 다달이 한번도 거르지 않고 용돈을 드렸다. 육십 연대 말부터 천 원씩 드렸는데 이 년 전 돌아가실 때까지 다달이 십만 원씩 드렸다. 돌아가신 지 이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월급을 타는 매달 십칠 일이면 제일 먼저 온라인으로 송금해 드린다.
살아생전 이 용돈을 어머님은 푼푼이 모아 두셨다가 선영을 가꾸는데 쓰셨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상들의 무덤을 옮겨 곡성의 선영을 마련하신 분이 어머님이시다.
\"우리 어머니는/틈만 나면 사시사철/곡성의 선영을 찾는다//이승의 사람들 잠깐 멀리하고/저승의 사람들과 만나는일 즐거운 일/콩도 심고 깨도 심고 고추도 심고/삼베수건으로 땀 닦으며 남편의 무덤 시부모의 무덤/증조부의 무덤/당신이 잠들 빈 무덤도 찬찬히 손 보신다(「산일」에서)\"
이처럼 자식들이 드린 용돈으로 조상들의 무덤, 당신이 영원히 쉬실 빈 무덤도 가꾸시면서 늦가을엔 선영 근처 빈 땅에서 가꾸신 곡식이며, 참기름, 콩기름, 메주, 고추 등을 팔도에 뿌리내려 살고있는 자식들이나 손주들 앞에 내려 놓으신다. 그럴 때마다 \"죄짓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라. 태일아, 너 술 좀 덜 마시고 저녘엔 일찍일찍 들어오너라
잉. 알겄재.\" 를 잊지 않으시며 당부하셨다.
이러시던 어머님께서 이 년 전 늦가을에 이 세상을 뜨셨다. 일곱자식 가운데 세 자식을 생전에 당신의 가슴에 묻으셨는데 이 세 자식 세 무덤을 품고 고생 많으시고 눈물 많으시고, 한 많으시고 정 많으셨던 어머님은 극락왕생 하셨으리라.
아버지가 주지로 계셨고 내가 태어났던 곡성의 동리산 태안사에서 사십구재를 지냈고 청화 큰스님 집전으로 천도재도 지냈지만 어머님 크신 희생과 사랑은 늘 나약한 나를 오늘도 감싸고 계신다.
\"일주문을 들어서며/어머니, /오오내아아, //대웅전을 들어서며/어머니,/오냐.//부처님 앞에서/어머니!/...//지장보살/지장보오살/지이자앙보오사알/지이자앙보오사알...(「태안사가는길.2」끝부분)
그러나 다시 한번 불러본다.
엄마!엄니!
어머니!어머님!어머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