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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잊지 못할 낯선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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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법장 1996년 12월 178호
어쩌다 보는 텔레비전 프로에 이름자나 알려진 사람들이 나와서, 그동안은 살기에 바빠 못 만나던 사람들을 찾고서 펄쩍펄쩍 뛰며 즐거워하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찍어내는 장면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장면을 보며 에잇, 쩟쩟하며 부질없어 하다가도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 때고 있다. 저토록 그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사는 사람들일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이만큼 살아왔어도 만일 저런곳에 나가 누구를 찾고 싶냐고 물어도 별로 있을 성싶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부처님은 \"여래까지도 모습으로나 음성으로 구하지 말라\" 하셨다. 그러나 사바세계에 얹혀 사는 중생으로서 당연히 정으로 뭉쳐 살게 되고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 생길 수가 없다. 아무런 그림도 글씨 하나도 씌여지지 않은 천장을 마주보고 누워 가만히 있어 보면 더러 사무치게 는 아닐망정 스치는 모습들에 혼자서 피식 웃음 지을 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 혼자서 떠돌다 갈 생이라서 그런지 정말로 가까운 사람들은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그리운 적이 없다. 출가하기 전 육친의 가족이 그렇고 출가 뒤 뭉쳐진 권속들이 그렇다. 본래 그리 생긴 체질 이어서인가 . 가족보다는 친구를 더 그리워하며 살았다. 권속들보다도 도반 들이 더 허물없이 느껴지고 때로 그리워졌다.
이 말에 섭섭해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믿기에 더 그러는지도 모른다.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은 아니지만 늘상 마음에서 잊을 수 없는 얼굴은 그래도 은사 스님과 그 윗분인 노스님이시다. 그럼에도 두 분은 언제나 생소한 얼굴로 다가온다. 노스님은 뵐 적마다 완벽하게 새로운 얼굴을 대하듯 하신다. 사람 얼굴을 참 기억 못하신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권속이며 도반인 ㅈ스님과 노스님을 친견하러 갔었다.
그 때만 해도 모시고 산 일도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같이 간 스님은 알아보고 한참 얘기를 나누시었다. 그러다가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시며 \"저수좌는 누군고\" 하셨다. 웬지 역정이 좀 났다. 그래 퉁명스럽게 한마디 쏘아드렸다. \"아니, 노스님은 어떻게 뵐 적마다 그러십니까.\"
\"나를 만난 적이 있었느냐?\" \"그럼요. 벌써 몇 번째인데요.\" 어디서 처음 뵈었으며 어느 절에서는 며칠이나 모시고 있었노라고 장황하게 말씀드렸다. \"그래 , 그러면 너도 절에 온 지 수월찮이 됐나보네 . 거기서 봤으면\" 하며 빙긋이 웃으시었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 한동안은 모시고 살았었다. 그 때는 그렇지 않으신 듯 하더니 한참 뒤에 가니 똑같았다. 같은 방법으로 설명해 드리고, 이젠 아예 들어서면서 제가 누구이며 어떻다는 식으로 말씀 드려 버린다. 덜 황당하려면 제일 좋은 방법이다. 하긴 특별히 기억하시게 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
노스님은 사미계를 수지하던 날 처음 뵈었다.
어린 마음에 각인된 노스님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스러웠다. 지상에 저런 얼굴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싶었으니까. 수행을 잘 하면 저렇듯 맑고 신선 같은 모습이 되나보다. 나도 열심히 닦아 저렇게 닮아야지 그런 마음 뿐이었다. 아마 그때가 수행자로서 노스님께선 최 절정기였던가 보다.
그러나 아무나 그리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잠시 흉내는 가능할까.
지금의 은사 스님을 첫날 뵈던 때도 감정이 거의 같았다. 맑고 청초하였다.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렵기 시작했다. 그 앞에만 가도 오금이 저리고 기가 살아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몇 마디 더듬거리다가 물러나오곤 하는 적이 많다. 마음을 서로 닫아버린 듯한 세월을 꽤 보낸다. 그러던 언제 스님의 장한 모습을 , 잊을 수 없는 참으로 장한 얼굴을 뵙게 된다. 그때가 치열했던 5공 정권 말기였다. 스님은 그 이전부터 이른바 말하는 운동권 스님으로 기세를 떨쳐오고 있었고, 87년 6월 10일 명동의 성공회성당에서 호헌철폐를 외치는 대회가 열렸다. 삼엄하고 철통같은 군인들 때문에 예정된 장소는 원천 봉쇄되어 가까이 접근하기조차 매우 어려웠다. 그런 속에도 스님은 승려의 몸으로 그 전날 일찌감치 성당의 담을 넘어 잠입하였다고 한다. 무슨 용기인지. 거기서 스님은 성당 지붕에 올라가 그날 모임의 개회사를 단숨에 읽어 내렸다. 6. 29선언이 없었다면 주동자들은 사형도 면키 어려웠을 거라고 뒷날 누군가에게 듣고 오싹하였다. 당연히 스님은 주동자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 그 속에서의 생활은 짐작만으로 어떻다고 할 수가 없겠다.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테니까. 나중에 스님은 그러셨다. 참으로 마음은 편하여 수행처를 옮겨 놓은 듯 참선이 더 잘 되더라고, 말씀은 그리해도 퍽 힘드셨을 거다.
다행이 열화 같은 시민의 6월 항쟁을 거쳐 5공 정권이 무너지는 바람에 스님은 살아 돌아오셨다. 별빛 얼굴의 투사가 되어. 그 때 절집 분위기는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어 스님께는 여간 불리하고 매사에 불이익뿐이었다. 그 권속까지도 빨간 눈으로 쳐다볼 때였으니, 스님의 석방이 결정된 날. 고속버스를 타고 사형과 함께 서울에 내렸다. 전날 밤은 근처 어느 절에서 자고 서둘러 서대문형무소로 갔다. 간판집에 가서 \"축 0 0 스님 출소\" 라는 피켓도 하나 써서 사형과 번갈아가며 쑥스럽게 들고 있기도 했다. 그냥 내보내면 될 걸 웬 절차가 그리 복잡한지 얼마를 기다려서야 큰 철대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그 쪽으로 또 사람들은 몰려가고, 스님도 보였다. 석방된 사람들 특유의 한복을 입고 화창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여러 사람들에 섞여 구경꾼처럼 어쩌지도 못하고 서있었다. 먼저 남 앞에 나서지 못하는 비윗살 때문이기도 했다. \"은사 스님이 석방되어 나오셨는데도 달려가지 못하고 다른 환영객 속에 묻혀 있다는 게 좀 우습지 않은가. 그런 위인이었다. 환영 나온 사람들을 차례로 스님께선 손을 잡고 웃기도 하고 그랬다. 당연한 내 순서에야 멋적게 스님하며 나섰다. 스님께서 손을 덥썩 잡고 흔들며 지금껏 보다도 훨씬 다정하고 친근한 웃음을 보이셨다. 그랬다. 정말 그날 웃는 모습은 돌아온 성자의 티없는 자세였다. 넉넉하기도 하고
그 몇 달 뒤 다시 한번 감동적인 모습을 본다. 스님은 예상을 뒤엎고 나의 대학졸업장에 상좌들을 대동하고 나타나셔서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그동안 고생했다. 그리고 너에겐 정말 미안하고 할 말이 없다.\"
어려운 말씀이셨다. 그런 다정한 얼굴과 친근한 말씀은 자주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감동스러웠다. 스님은 평소에 너무 기세 등등하다. 한번도 여린 모습을 뵌 적이 없다. 또한 군중 속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며 어느 때부터 낯설어지고 더 멀어져 갔다.
그 전의 스님은 청아한 목소리로 염불하시고 틈 여투어 꼭 좌복에 앉는 실다운 수행자였다.
지금 스님의 길도 가치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전의 스님이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자꾸 행선이 엇갈린다. 치열한 가을을 지내고 이번만은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공양이라도 한 끼 올려야지 하며 갔는데, 아니 계신다. 도량 가득 노오란 은행잎만 쌓여 가을 깊었음을 일러주고, 지나간 날들은 아름답다했듯, 손잡고 흔드시던 그때의 다정하고 친근한 모습만 오래 기억하려 한다. 지금처럼 우뚝선 모습이 아니라 덜 유명했던 그 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