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뱀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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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로 가는 길 - 박원순
1996년 12월 178호
살인공장까지 차려놓고 그랜저급 이상의 승용차를 탄 사람들을 상대로 마구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지존파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일 년 이 겨우 지났다. \"압구정동 야타족을 다 죽이고 가지 못하는 게 한\"
이라고 말하던 그들 대신 이번에는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인간들을 증오한다\"며 아무 죄없는 단란주점 주인 여자를 생매장한 \"막가파\" 가 나타났다. \"막가는 인생\"이라는 의미의 \"막가파\"는 \"막가는 사회\"의 또한 단면을 드러내 주고 있다.
지존파의 그 끔직한 범행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일부에서는 이들을 동정하는 여론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를 \"야타족\"의 존재와 대비시키며 \"분배불균형\"의 딱한 희생자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한편에서는 \"지존파는 어디까지나 예외중의 예외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 짐승만도 못한 범죄인은 가장 도덕적이었다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도 있었다\" 며 법석을 떨 일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지존파를 \"예외 중의 예외\"로 단정한 것은 무엇보다 \"막가파\"의 등장으로 오류임이 증명되었다. 더구나 지금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가 아니라 21세기를 몇 년 앞둔 개화문명의 시대이다. 이 시대에 증오와 살기로 번뜩이는 \"인간늑대\"들이 우리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평화로운 삶은 보장될 수 없다. 법석을 떨고 또 떨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그 피해가 우리 가족에게 떨어지지 않은 것만 다행으로 생각한다.
허구한 날 성폭력 범죄가 보도되어도 내 딸과 마누라에게 일어난 불행이 아니니 안심한다. 성수대교가 끊어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려도 내 가족은 안전하였으니 그 일들은 먼 옛날의 기억이 되고 말았다.
농약 뿌린 콩나물과 병들은 고추로 만든 식품이 나돌아다녀도 분노의 목소리조차 별로 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무관심과 방관과 침묵 속에 살인범과 치한은 날뛰고 비리와 부조리는 판을 친다. 우리의 관심이 가족의 울타리 속에만 머물러 있는 동안 세상은 뒤죽박죽이다. 사회의 공의가 살아 숨쉬고 건전한 시민정신이 흘러 넘치는 사회에서 이 끔찍함과 불의가 자리할 공간은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공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이들 조직은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피폐하기 짝이 없다. 이 생에 다 누리지 못할 부를 자식에게까지 상속시키고 저승까지 이어가기 위해 사찰과 교회에 미련 없이 온갖 재화를 갖다 바치건만.
부처님이 일찍이 매사냥꾼이었던 아릿다 비구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하였다. \"비구들아 , 어떤 사람이 뱀을 잡으려고 뱀의 꼬리 부분을 잡았다고 하자. 그 뱀은 몸을 돌려 그 사람의 손 또는 팔을 물 것이다.
그는 그로 인해 죽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뱀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여기 일부 어리석은 자들이 법을 배우고 있으나 그 법의 지혜를 제대로 고찰하지 않기 때문에 고뇌를 받는다. \"자신의 이익과 가족의 안일이라는 뱀의 꼬리를 탐하는 사이 불의와 무질서라는 커다란 뱀의 머리와 몸통은 그 사람과 가족, 나아가 사회마저 물어 죽이고 말 것임을 부처님의 비유는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