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아한 봄기운을 견디며 노루귀 꽃과 현호색 꽃이 피었습니다.
저녁노을 속에서 보얗게 웃는 연보라 빛깔들을 들여다보면 가장 낮은 곳에서 기장 높이 날려 보내는 자유의지, 우주를 향하여 흔드는 작은 메시지들이 참 깊고 신비스럽기만 합니다. 그들이 지나가고 나면 산수유. 매화, 그 다음은 목련, 수선화, 양지, 하얀 제비꽃 그리고 벚꽃, 이렇게 꽃이 지고 피는 소식과 더불어 훌쩍 지나가 버린 세월, 참 빠릅니다. 멀리서 낙화의 소식이 있으나 우리 시는 곳엔 아직 북향한 봉오리가 동벌을 향해 열리기엔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찹니다.
부처님!
큰 은혜를 입으며 오늘 이 자리에서 하루를 살았습니다. 하루를 사는 것이 하루를 죽는 것보다 나은 삶이 되었는지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파 눈을 감아 버립니다. 요즘 저는 많이 게으르고 어떤 까닭에서든 힘이 모아지지 않고 번뇌하며 투정합니다. 오늘을 후회하며 내일을 설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인 줄 압니다. 오늘이 최선인 사람만이 내일도 최선의 날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내면으로 해탈의 신기루를 쫓으나 실행이 없고, 밖으로 타인을 의식하여 보여지기 위한 삶을 살면서 스스로 공허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은 포곡布穀(뻐구기)과 같아서 뻐꾹뻐꾹 울지만 뜻은 전하지 못하니 그 답답함을 어찌하겠습니까. 껍데기 글줄이라도 제대로 전할 수 있어야 하련만 그러한 일로 요즘 저는 무척 의기 소침합니다. 부인하거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넘어진 자리에서 땅을 딛고 일어서거나 주저앉거나 양판 가운데 하나일 뿐 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 하루가 그대로 부족한 바가 없는 참된 가치를 인식하며 살고싶습니다.
나의 영혼과 더불어 사는 모든 사람이 지극히 사랑스럽고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한 송이 연꽃과 같이 밀입니다. 본디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존재, 그 존재가 처한 오늘 흐드러진 봄 언덕이 그대로 불국토임을 인식하는 일 말입니다. 알음알이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아는 만큼 실행하는 것이 어려울 뿐입니다. 늘 그렇듯이 문제와 문제에 대한 해답은 자신에게 있을 뿐. 오늘의 결론도 역시 그러하군요.
먼 길을 돌아서 긴 여행을 다녀오셨다구요? 여독旅毒으로 여러 날 몸져 누우졌다지요. 육신통六神通을 써서 한자리에서 두루 볼 수도 있을 터이나 남섬부주南贍部州 곳곳을 순례하려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백두대간 한반도 땅을 온몸으로 구르며 걸음마다 입을 맞추며 지나고 싶은 그런 심정일까요. 당신의 사바세계 그 설움 많은 예토穢土의 중생, 외아들 라훌라 사랑하시듯, 그들의 처해진 상황과 정서를 읽
어 내며 더불어 기쁘고 아파해면 그 이상의 방법이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당신이 단위에 앉아 고상하고 우아하게 웃고 계신다고 말하지만 종일 맨발로 걷고, 온몸으로 설법하며 땀 찬 옷에 삽질을 차마 놓지 못하십니다. 따뜻한 체온과 감정으로 누군가의 가슴속에 들어가 위안이 되고 사랑이 되고, 역사와 사회 속에서 고난과 아픔을 넘어설 때마다 당신의 정신과 사상은 별이 되었습니다. 맹세코 당신을 배우고 닮으렵니다. 이 땅을 지나실 때 곳곳에 떠도는 일거리 없는 아버지들의 어깨를 보셨는지요 그들의 처진 어깨 너머로 어머니의 근심과 자식들의 슬픔을 말입니다. 대책 없이 주는 한끼의 점심도 여러 날 의지하기에는 부끄러워 차라리 굶고 마는, 그 자존심이 꺾이기 전에 일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자포자기의 눈빛이 다시 초점을 맞추고 불같이 살아 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의지를 주소서.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 재물을 잃고, 가족이 흩어지는 등, 이렇게 시련이 닥쳐왔을 때 모든 것을 잃은 듯이 아득하며 참으로 고통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무상하게 다가온 불행은 때가 되면 무상하게 가 버립니다. 어려운 고비를 비탄으로 지새지 말고 이런 기회에 참회 염불로 자신을 바꾸어 보는 기회를 삼도록 지혜를 주소서. 법계에 가득한 행복의 기운을 나의 것으로 만들게 하는 것이 참회요 염불입니다. 업장이 녹으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저도 그 동안의 갈등과 게으름 내려놓고 내일부터 다시 참회의 절을 시작하리라 다짐합니다. 안과 밖으로 부끄럽지 않은 자, 스스로 지신을 맑게 하고 힘을 채우고 창의적인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 것이 바로 시작을 위한 절망이며 살아 있음의 기쁨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모든 이가 저와 더불어 새로이 시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소서.
제가 마지막 당신을 본 것은 수발다라를 제도하시고 그의 열반과 다비를 지켜보시고 27선정의 차제를 지나 열반에 드신 그 날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당신의 열반을 애통해 하는 우족羽族이었습니다. 어느 물가에 세워진 탑전에 깃들어 사는 목 긴 한 마리 학. 그 뒤로 수많은 생을 떠돌며 당신 문전에서 밥을 벌며 오늘에 이르렀으니 참 숙업宿業이 지중합니다. 머잖아 당신의 생신을 맞이합니다. 불기 이천오백사십삼년 아니 삼천 번은 쉬이 되는 햇수인 것 같습니다. 초파일을 맞이하면 기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여 만감이 교차할 것입니다. 영원한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나의 존재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 하루를 보람으로 이끄는 의미, 내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하여 그리고 우주적인 에너지를 형상화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노력하여야 하는지 이젠 압니다. 힘을 쓰는 일은 곧 힘을 모으는 자리이기도 하지요. 오로지 진실심, 차비심, 보리심, 회향심으로 이 한생 살다 가게 하소서. 오롯한 마음 하나 불전에 올리며 가 없는 글 총총 맺습니다. 참, 삼소회에서 북녘 어린이 돕기 음악회를 엽니다. 저희 운문사 승가대학합창단도 더불어 노래하오니 꼭 오셔서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영덕 합장合掌 구배九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