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장경 연구소를 찾아서

고려대장경 전산화본 발표 및 봉정식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의 전산화가 드디어 완료됐다. ’93년 해인사 우화당 한쪽 방에서 ‘고려대장경연구소’라는 현판이 걸린 지 7년 만의 일이다.
고려대장경이 완각되고(고종 38, 1251년) 750년 만에 81,258매의 대장경판이 지름10cm CD롬 15장으로 환생하게 된 것이다.
글자수로 보면 52,801,771자, 우리 국민 한 사람이 한 글자씩 나누고도 천만 여 자가 남는 방대한 양이다. 몽고침입이라는 전장(戰場) 속에서 ‘불경을 판각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나라가 평화롭고 국민이 편안해진다’는 숭고한 믿음으로 판각되어진 그 한자 한자에는 우리 조상들의 불심과 국난극복 의지가 담겨져 있다.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대장경판 중 최고(最古)의 것이며 여러 차례 교감을 거친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경판으로, 대정신수대장경도 고려대장경을 그 본(本)으로하여 교감되었으며, 한역(漢譯) 경판의 내용을 아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료이기에 95년 국내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7년 여에 걸친 전산화 작업을 마치고 마침내 12월 6일 ‘팔만대장경전산화본 발표 및 봉정식’ 행사준비에 여념이 없는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종림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원만한 전산화의 회향과 앞으로 진행할 대장경 표점 표기, 한글병행서비스가 스님의 앞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제 부처님의 말씀이 목판본으로서만이 아닌 디지털 정보라는 새로운 가치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이는 아직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루어내지 못한 대장경전산화는 디지털 세계를 선점함으로써 세계불교에 기여함과 동시에 한국불교의 저력이 만방에 떨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8만여 개의 경판내용이 CD롬 15장 안으로 목판본의 가치에서 정보의 가치로 재탄생

- CD 15장에 고려팔만대장경을 모두 담았다고 들었는데 전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돼 있습니까?

“고려대장경 목판본을 그대로 옮긴 이미지본, 원문 글자를 유니코드화한 유니코드텍스트본, 검색시스템, 고려대장경해제, 불교용어사전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여기서 이미지본(12장)은 학술전문가용으로, 대장경 원본을 영인해 그대로 넣었기 때문에 오자가 있을 수 없지요. 한 자 한 자 따로 잘라서 넣었기 때문에 단어별 검색도 물론 가능합니다. 활자본에서는 색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나머지 3장은 일반용으로 일반인에게 보급할 예정입니다.
불교용어사전에는 1만여개의 불교용어가 들어가 있는데, 10만여개의 불교용어 가운데 대장경에 나와 있는 용어들을 추려내 풀이하고 대장경에서 검색도 가능하게 전산처리 했습니다. 또한 해제가 있어 대장경을 구성하고 있는 1,514종의 경전별 특성에 따라 분류하고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누구나 손쉽게 경전을 찾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전산화의 장점은 검색에 있는데 검색기능은 어느 정도인가요?

“하나의 한자로 대장경 원문을 찾아가는 일자검색과 색인표준을 통한 색인검색(10만여 불교용어가능), 불교용어검색(1만여자), 경전명으로 경판을 찾는 경전목록검색 기능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대장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글자가 뭔지 아십니까? 아니 불(不)자예요. 무려 경전의 63만여 곳에 나옵니다.
이처럼 수많은 한자와 검색프로그램의 원활한 실행을 위해서는 컴퓨터가 펜티엄Ⅱ이상이 되어야 하고, 하드용량이 1GB이상, 램은 64MB, CD롬 드라이브, 마우스, 윈도우 98은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체자전(異體字典)>을 활자로 출판한다고 들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일이라면서요.
“최초이자 최대의 이체자전입니다. 고려대장경을 전산화하는 데 가장 어려웠던 점 가운데 하나가 이체자예요. 하나의 글자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쓰여지고 있으니까요. 그것을 가려내는 일, 입력하는 일 등이 난제였지요. 고려대장경 내에서 가장 많은 이체자를 보유하고 있는 글자가 鑿(뚫을 착)자인데, 무려 65종의 이체자가 있어요.
이번 이체자전에 수록된 이체자는 정자를 기준으로 그 자종이 7,486종이고 사전에 수록된 이체자수는 29,478자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모두 망라한 것은 아니예요. 작업과정에서 누락된 것도 있어 이는 차후 추가하려 합니다.

- 새삼스러운 것 같긴 한데 대장경을 전산화해야 하는 이유, 당위성은 무엇입니까?

“전산화되었다 함은 고려대장경이 목판본으로서의 가치에서 정보로서의 가치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도서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대장경을 책상 한 켠에 두고 언제라도 검색할 수 있게 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지요. 불교학은 지금까지 일본의 신수대장경과 대만의 불광대장경을 바탕으로 연구돼 왔으나 이제 고려대장경이 중요한 학문자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학문적 토대가 바뀔 수도 있으며 이는 우리 불교학의 올바른 위치를 찾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세계 최고의 경전체계인 고려대장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교학의 학문적 바탕은 일본이나 대만 등 외국의 불교학 자료를 통해서 배우고 익혀온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조상들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보존방법으로 자연상태의 보존이 가능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지형의 변화, 이상기후 등으로 자연상태의 보존에만 의존하기에는 염려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전산화를 통해 고려대장경의 영구보존은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동안 신수대장경이 불교학 연구의 기본텍스트가 된 데는 방점과 색인에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인데요 그러면 방점과 색인까지 완성한 것입니까?“솔직히 색인은 신수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신수에서는 단어별 분류가 돼 있어요. 지명, 인명, 교리 등 구분을 해놓았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이것이 어디어디에 나와 있다는 정도예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불교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바탕으로 전산화하는 일이지요. 방점은 작업이 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CD에는 들어가 있지 않아요. 좀더 검토를 해서 보완을 해야지요.”

- 그러면 이번 CD가 완성품이 아니군요? 계속 내용을 보완하나요?

“부족한 것이 많아요. 전문도 교정을 본다고 보았지만 계속 확인해야 하고 불교용어사전의 불교용어수도 늘려야 하고 한글대장경도 번역이 완료대로 입력할 예정이에요. 한글대장경은 아직 한글화작업도 끝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용어 통일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용어통일이 안 되면 검색이 안 되거든. 바뀌는 내용은 보완해서 계속 교체시킬 예정이에요.”-그러면 CD를 계속 새로 사야겠네요?
“CD는 무료 배포합니다. 영인본이 담긴 12장은 학술단체와 도서관 등에 배포할 것이고 3장짜리는 이번 발표회장에 오는 후원자들에게 나누어 줄 예정입니다.그리고 누구든 원하면 드릴 예정이에요. 보완되면 그것도 보내드리려고요. 이를 통해 돈을 벌려는 생각은 없어요. 철저히 제공자의 입장에 서려고 해요. 때문에 뜻있는 분들의 후원이 보다 중요합니다.
일본이 이것으로 장사하려다가 안 됐어요. 실제 우리보다 시작은 빨랐는데 팔아서 돈을 만들려고 했어요. 1챕터 만들어 팔고 그 돈으로 만들고 뭐 이런. 그런데 그게 되나. 복사해서 쓰는데. 그래서 우리는 아예 CD는 선물이고 인터넷에 주력하려고 해요. 아직은 부족하고 한번 더 가공하면 광고료나 사용료를 받을 생각도 하고 있어요.”

-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물론입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www.sutra.re.kr) 이미지본 외의 것은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이체자본도 서비스하고 있어요.”

중국, 일본도 아직은 못한 일
디지털세계만은 우리가 선점했으니

한자의 본토인 중국도 신수를 자랑거리로 여기는 일본도 아직 대장경 전산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래도 중국 본토가 제일 앞서 중국의 역사책 <25사>를 전산화한 상태이고, 대만의 불광사와 시베타(중앙불교연구원)에서 대장경 전산화를 추진중이나 경전별이지 우리와 같은 대규모작업은 아니며, 일본 역시 시작은 빨랐으나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우리나라 역시 오래 전부터 준비중인 <이조실록>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종림 스님은 ‘디지털세계에서 불교의 장을 먼저 선점했다’는 것에 가장 큰 의의를 둔다.
“한국불교가 세계불교에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먼저 함으로써 세계불교에 기여하는 점도 있고, 전자시대로 넘어가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대열에 설 수 있게 된 기회라고 생각해요. 국내적으로도 그 동안 불교계는 사회의 흐름을 뒤따르기 바빴는데 모처럼 앞장서 나가게 된 게 기뻐요.”앞서나갔다는 것은 그만큼 기초작업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만들며 나가야 했던 것이다.

- 대장경전산화의 가장 난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대장경에 나와 있는 한자를 입력할 수 있는 코드체계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고려대장경을 전산표현하자면 이체자를 포함하여 61,352자의 한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한국, 중국, 일본 및 유니코드 등 국내외에서 표준화되어 있는 코드체계에서는 대체로 1만 5천자의 한자표현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고, 최대로 많은 한자가 표현될 수 있도록 설계된 유니코드의 경우에도 2만 7천여자의 한자표현이 가능할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6만자 이상의 한자를 표현할 수 있는 보다 확장된 코드체계가 필요하기에 고려대장경용 4바이트 코드체계를 새로 설계하였고, 이 체계에 사용할 수 있는 한자폰트도 개발해야 했어요.”

- 전산입력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입력작업과 교정, 교감작업, 이체자 작업, 그리고 해제와 새로운 한자의 폰트생성작업 등 지난 7년간 연 평균인원 40여 명이 대장경과 함께 했습니다.
5천만 한자를 새로이 입력하기에 필요했던 새로운 한자만도 11만 여자(이체자 포함), 700여 년전 목판에 판각을 하던 선인들의 손놀림은, 컴퓨터용 한자로 만드는 폰트생성작업을 통해 모니터의 마우스로 바뀌었을 뿐 그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단순입력과 수정에 걸린 시간만도 屠6년부터 屠7년까지 1년 6개월. 수정작업은 먼저 컴퓨터에 입력한 한자본과 인경본(경을 그대로 한지에 찍은 것)을 대조 비교하는 대조(對照)작업이에요. 이는 한문학 전공자들이 글자의 한획 한획을 비교하여 잘못 입력한 한자를 찾는 작업인데 한획 한획 대조하는 과정에서 음과 뜻이 같으나 모양이 다른 것은 이체자(異體字)로 분류하여 이체자 자전 작업의 자료로 활용됩니다.
대조작업을 통해서 오류입력된 한자는 교정감리하는 교감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이 작업은 한자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으로 하나의 한자가 정자인지 이체자인지, 바르게 입력되었는지, 잘못 입력되었는지, 바로 컴퓨터에 입력할 수 있는지 아니면 폰트를 개발해야 입력이 가능한지의 서지학적 판단과 글자의 경전내 출처를 확인하고, 전산수정작업을 하는 전산팀에게 수정을 지시하지요.
수정입력 과정에서 5만여 자의 이체자를 정리할 수 있었으며, 전산개발할 한자를 약 3만여 자 찾아냈습니다. 이는 폰트개발로 이어지고 이체자는 대장경내 출처를 확인하여 이체자 자전으로 편찬하였지요. 지금까지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개발한 한자폰트는 6만 여자. 필요로 했던 3만 여자보다 훨씬 많은 한자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국고보조가 큰 힘 돼
2만여 명의 후원자 있었기에

일은 원력만 있으면 된다고 말을 하지만 성패의 관건은 예산이 좌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림스님은 자신이 “조금만 더 계산적인 머리가 있었어도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이라고 한다. 어려워도 이것까지만 하다가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屠3년 이후 고려대장경연구소에 들어간 비용은 80억원. 순수작업비만 60억원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屠7년부터 국가에서 지원해준 28억원은 대장경연구소에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사가 무사히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은 후원자들의 힘이었다고 스님은 말한다.
고려대장경전산화본의 한 구석을 보면 수많은 이름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대장경전산화를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후원해 준 2만여 가족들의 이름이다. 대중의 동참에 의해 대장경이 전산화된 예는 세계 어느나라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기에 외국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한국불교며, 한국불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후원금이 어느 정도 됐습니까?

“IMF이후 기업체 후원은 꿈도 못 꾸었어요. 절불사도 거의 중단됐지 아마. 그런데 우리는 꾸준히 들어왔어요. 작은 정성들이 모아준 돈이 35억원입니다.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보내온 매달 5000원의 후원금, 태어나서 지금까지 저금한 7만 6천 5백원을 부모님과 함께 후원한 6살 어린 친구, 이생에서 내가 부처님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며 100분 이상의 후원자를 모아오신 팔순의 보살님, 회갑잔치에서 모인 축의금을 선뜻 내주신 보살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아르바이트비를 낸 후원자, 수감중인 남편을 위해 조그만 정성을 보내주신 보살님 등 그 사연들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 분들이 이루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사(謀事)는 사람에게 있지만 성사(成事)는 하늘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사부대중의 정성이 하늘을 움직인 모양입니다.”웃음으로 시작해 웃음으로 마치는 종림 스님, 불사의 성취가 저 가식 없는 웃음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웃으면 복이 온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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