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방으로부터 함께 모여들어
모두 무위의 법을 배운다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시험장이니
마음을 비워야 급제하여 고향에 돌아가리라
(十方同共聚)
(個個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정진은 좌복 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채소밭에서도 하는 것이요,
법문은 법상 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들판에서 호미 들고서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남전스님은 밭갈고 풀을 베면서도 법거량을 하였던 것입니다.
남전스님이 살고 있는 토굴에 어떤 객승이 왔었습니다. 이에 선사는 때마침 잘왔다 싶어서 지게를 챙겨 화전火田으로 밭을 일구려 사립문을 나섰습니다.
“나는 산으로 올라가서 밭일을 할 터이니 스님께서는 쉬다가 밥 때가 되거든 밥을 지어 먹고 나에게도 한 그릇 갖다주시오” 하고 부탁했습니다.
공양 때가 되자 그 객승은 밥을 지어서 혼자만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솥을 뜯어내고 그릇 등 집안의 세간을 모조리 부수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남전스님은 산에서 밭일을 하면서 아무리 기다려도 참이 오지 않자 배가 고파서 할수 없이 토굴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객승은 눈 하나 낌짝 않고 평상에 여유롭게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남전스님도 바로 그 옆으로 가서 가만히 누웠습니다. 그랬더니 그 객승은 벌떡 일어나서 떠나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뒷날 이를 두고 남전스님은 “내가 토굴에 살 때 도인이 하나 다녀간 뒤로 아직껏 그런 이를 보지 못하였다”라고 회고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방거사에게도 있습니다. 방거사가 쌀을 일 때 쓰는 조리를 팔리 다니다가 실족하여 다리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것을 본 그의 딸 영조는 바로 아버지 곁으로 가서 누워 버렸습니다. 이에 거사가 “너는 왜 그러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영조는 “아버지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부축하려 왔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거사가 귓속에다가 대고 말하가를 “자! 자! 그래 가자. 누가 보지 않은 게 다행이구나” 하였습니다.
넘어지는 것이 넘어지는 게 아니라 바로 법문인 셈입니다. 영조의 쓰러짐이나 남전의 드러누움은 모두 법거량인 것입니다.
또 하루는 남전스님께서 풀을 베고 있었습니다.
어떤 스님이 와서 ‘남전-산이름-으로 가는 길(南最路)’ 을 물었습니다.
이에 선사께서는 낫을 들어 올려면서 “나는 이 낫을 삼십 전에 샀노라”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스님은
“나는 낫을 묻지 않었습니다. 남전길이 어딘지를 물었습니다” 하니 이에 선사는 “나는 이 낫을 신나게 쓴다” 하였습니다.
그 어리석은 스님은 길을 물을 줄만 알았지 발 밑에 진창이 깊은 줄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길을 물을 줄만 알았지 비추는 대로 종지를 잃는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토굴에 온 객승은 밭매는 남전스님의 공양을 지으면서 공부를 하였고, 풀 벨 때 나타난 그 스님은 가는 길만 물었지 공부길은 묻지 않았던 것입니다.
적변상봉문로두 顆面相逢問路頭어늘
겸도제기만상수 鍵刀提起護相酬라
가령불구금강안 可擔不具金剛眼하여
공주운산암도추 空走雲山暗度秋라
얼굴을 마주보고 길을 물었는데
낫을 들어 넌짓넌짓 대답하였네.
애석하다! 금강의 눈 갖추지 못해
구름 걸린 산을 헤매 짙은 가을 보낸다.
이 이야기를 듣고 천동각天童覺 선사는 법상 위에서 야렇재 말을 붙인 적이 있습니다.
“남전스님이 ‘이 낫을 신나게 사용한다’ 고 한 것이나
‘이 낫을 삼십 전에 샀다’ 고 한 것은 남전의 문턱에 오솔길이 트여 있는데 길가는 사람들에게 정신 차릴 것을 깨우쳐 준 것이다.
‘정신을 차림이여! 속임수가 심하니 납자의 눈가죽이 案山의 가리움을 입는다’ 고 하더니, 지금 알고 보니 당당하게 드러나서 온 땅덩이가 묶이어 한덩어리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주장자를 한번 구른 뒤에 한참 있다가)
이런 경우를 만나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남전스님께서 ‘나는 이 낫을 신나게 사용한다’ 랴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를 속이는군요’ 하면서 한걸음 얼른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랬더라면 아마 남전스님도 뒤로 넘어지면서 물러났을 것입니다.
운력을 하면서도 공부하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이기도 합니다.
‘일 따로 공부 따로’ 라고 생각해 버리면 남전스님에게 길만 물어보는 그 어리석은 스님과 다를 바 없다 하겠습니다.
운력하면서 하는 뇨중關中공부가 큰방에서 하는 정중靜中공부보다 훨씬 더 수승합니다. 마치 고요한 연못에 비친 달빛보다도 흔들리는 연못에 비친 달빛이 더 반짝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옛 조사 스님들처럼 함께 일하면서 같이 정진하는 모습을 배우도록 합시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