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방으로부터 함께 모여들어
모두 무위의 법을 배운다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시험장이니
마음을 비워야 급제하여 고향에 돌아가리라
(十方同共聚)
(個個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육조 혜능 선사께서 오조 홍인스님에게 가사와 바루를 전해 받고는 한밤중에 황매산을 떠나 남쪽지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냥꾼들 무리 속에서 오년을 지낸 뒤 광동성 광주 땅의 법성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인종印宗 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는 회상이었습니다. 그 때 마침 바람이 불어서 깃발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한 승려가 “깃발이 움직인다”라고 하자 다른 승려는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에 육조스님이 밀씀하시되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하는 말에 두 승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서천의 17조인 승가난제僧伽難提 존지헤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존자께서 바람결에 풍경이 울리는 것을 보고 동자에게 물었습니다.
“방울이 울리는가? 바람이 울리는가?”
이에 동자는 “바람도 방울도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울립니다” 하였습니다.
조사가 다시 “바람도 방울도 울리는 것이 아니면 어느 것이 마음인가?” 하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결제에는 종문宗門에 전해 오는 유명한 화두인 ‘육조풍번六組風幡’으로 법문하고자 합니다. 정자본爭子本 선사는 “내가 당시에 깃발이니 바람이니 하는 그 두 승려들을 보았다면 이 잠꼬대하는 친구야! 무엇을 깃발이라 하고 무엇을 바람이라고 했는가?” 하고 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조계명曹溪明은 이에 대하여 “두 승려가 이렇게 하여 깨달았다고 했으니 쏜살같이 지옥에 들리라. 만일 가죽 밑에 피가 끓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니요, 오직 그대의 마음이 흔들린다’한 것을 들었을 때 ‘돌! 그게 무슨말인고!’ 하는 호통을 한번 쳤더라면 바야흐로 숨돌릴 한가닥의 길이 있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옛 성인의 방편이 항하사수와같이 많으나 육조대사의 ‘바람과 깃발이 움직임도 아니요,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임이니라’ 하신 이것은 무상심인無常心印이요, 지극히 묘한 법문입니다.
우리가 조사문하祖師門下의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려고 합니까?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지 않고 너의 마음이 망령되이 움직인다거나, 바람과 깃발을 버리지 않고 바람과 깃발에서 깨치라 하거나, 바람과 깃발 움직이는 곳이 이 무엇인가라고 하거나, 물질에 의하여 마음을 밝히되 물질을 인정하지 말라고 하거나, 색色이 곧 공空이라고 하거나,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지 아니하는 곳에서 모름지기 묘하게 알아야 한다라고 하면 조사의 뜻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이 화두에 대하여 많은 선사들이 자기의 견해를 붙여 왔습니다. 육조풍번六祖風幡에 대히여 파릉호감巴陸顥鍵 선사는
“조사가 말하기를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라 하니 이 두 가지가 아니라면 어디서 찾아야 할까? 누구든 조사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수 있다면 나오라. 파릉이 만나주겠다” 하였습니다.
설두중현雪寶重顯 선사는 파릉의 염을 들고는 말하되 “바람이 움직이고 깃발이 움직인다니 이미 바람과 깃발일진데 어디에서 찾을꼬? 누군가가 파릉과 겨눌 수 있다면 나오라. 설두가 상대해 주리라” 하였습니다.
상방익上方益 선사는 파릉과 설두의 염을 듣고는 말하되
“한마리의 개는 물체를 보고 짖는데 백 마리의 개는 소리를 따라짖는다. 그 때에 금색두타金色頭陀이었던들 문앞의 찰간대를 꺾어버려서 남북의 납자들이 바람과 깃발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꼴을 면하게 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백운병白雲昺 선사가 뒤이어 말하되
“파릉은 말하기를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 했으니 어디서 참뜻을 찾을까? 또 설두는 말하기를 바람과 깃발이 모두 흔들린다 하니 역시 어디서 찾을꼬? 그렇다면 물은 물을 씻지 못하고 금은 금을 바꾸지 못한다. 홀연히 생명을 아끼지 않는 이가 있어 이 두노장의 발꿈치를 끊는다면 세간적인 진리만이 유포되는 것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불안원佛眼遠 선사는 “내가 말하노니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하였습니다.
육왕심育王講 선사는 이에 대하여
“파릉과 설두 불안원 이 세 노장님이 한 분은 놓아 버리니 마치 벼랑에서 돌어 굴러 쏟아지는것 같고 한 분은 가만히 고정하니 큰 바다가 조수를 삼키는것 같고 한 분은 오똑 앉아서 요동치 않으니 마치 수미산 같구나?” 하였던 것입니다.
천목문례天目文禮 선사가 무봉鄭峰에 있을 때 일입니다. 불조佛照스님이 개당開堂을 맞이하여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하는 화두를 거론하면서 “저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목스님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물物의 견見과 주主의 안眼이 우뚝서서 비춥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어디에서 조사를 뵙는단 말인가?”
“두개골을 뒤집어 내 보이지요.”
이 때 마침 인공수 스님이 뒤따라 방장실에 들어 왔습니다. 이에 불조佛照스님이 먼저 말하였던 화두를 물으니 수스님이 대답하였습니다.
“흰 물결 구경하다가 쥐었던 노를 잊어 버렸습니다.”
“대단한 사람이 고작 이런 말을 하다니. 좀 들으시오. 조금 전 저 후배가 던진 한마디를.”
천목스님은 불조스님 문하에 삼년 동안 었으면서도 어떠한 소임도 보지 않고 정진만 하였습니다.
후일 영암사를 지나는 길에 치둔癡純스님을 뵈었습니다.
그 스님도 앞의 화두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지난번과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치둔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은 육왕育王 회중會中에서나 쓸 수 있는 말이지 여기서는 너가 마실 물도 없다.”
(양구良久 후)
누군가 이 산숭에게 와서 이 풍번화두를 물어 온다면 나 역시 이렇게 대답해 줄 것입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마음 또한 움직 이는 것도 아니니라.”
풍번시심갱하언團觸是心更何言고
육문휴헐고금전六門休散古今傳이라.
약립사호若立絲毫면 잉구격仍舊隔이라.
대천사계일모면大千妙界一毛端이로다
바람과 깃발이 마음인데 무슨 말을 더하랴.
여섯 문을 닫으란 말 예부터 전한다네.
털끝인들 인정하면 종전대로 막히나니
대천세계 모두가 한 터럭 끝일세.
억(喝) !
2541. 동안거 결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