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도림 법전스님


도림 법전스님

도림 법전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동안거결제법어

사방으로부터 함께 모여들어
모두 무위의 법을 배운다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시험장이니
마음을 비워야 급제하여 고향에 돌아가리라
(十方同共聚)
(個個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제목 : 백길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1997 년 6 월(184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객견장사백로동 客見長沙階路同하니
영인의약탐가풍 令A依約探家風하노라
수미만인마금고 須鋼萬忍磨今古한데
절초양천왕용공 折草量天柱用空일세 .
객여 장사長沙를 찾아 가는데 길가는 사람 함께 하니,
남을 시켜 약속에 의해 그 가풍을 탐색했네.
만 길 수미산은 고금을 통해 연마되었는데,
풀을 꺾어 하늘을 재려함은 공연한 헛수고 일세.

장사경잠長沙景岑 선사가 어떤 스님을 시켜 여회如會스님께 법을 묻도록 하였습니다.
“화상께서는 남전스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하고 물으니 여회 화상이 ‘양구良久’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묻되 “만난 이후엔 어떠했습니까?” 하니 “별다른 것이 있을 수 없나니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회 화상으로부터 돌아온 그 스님은 경잠선사에게 고하니 선사께서는 “백척간두좌인百尺竿頭坐人이 수연득입미위진雖然得入未爲眞이라. 백 척 장대 끝에 앉은 이가 깨달아 들기는 했으나 참이 아니다. 백척간두수진보百尺竿頭須進步하야사 시방세계시전선十方世界是全身이니라. 백 척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나아가야 시방세계가 온통 한몸이라”고 송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스님이 디시 물었습니다.
“백척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한걸음 더 나아갑니까?” 하니, 선사가 대답하기를 “낭주郞州의 산이요 예주禮州의 물이니라” 하였다.
그 스님이 “모르겠습니다” 하니 선사께서는 다시 “사해四海와 오호五湖가 왕의 덕화德化 속에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호남湖南의 장시長沙 지방은 동으로는 상강湘江, 남으로는 동정호洞處湖가 인접한 곳으로 당대 이후 많은 선지식들이 머물면서 법을 설한 곳입니다. 경잠 선사도 여기에서 살았던 인연으로 장사長沙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남전스님에게 참학하여 그의 법을 이었지만 이후에는 한곳에서 정주定住하지 않고 유령하면서 한생애를 마쳤습니다. 얼마나 기개가 드센지 앙산혜적仰山慧寂 선사와의 문답 도중 그를 차서 넘어뜨릴 정도인지라 뒷날 사람들은 그를 ‘장대충岑大蟲’ 곧 ‘호랑이 경잠’ 하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서슬퍼럼과 함께 ‘내가 만일 정통전법正統禪法만을 선양한다면 사람이 아무도 없어 법당 앞에 풀이 한길이나 자랄 것이다”하여 자비심의 방편도 함께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여회 화생 역시 남전 화상의 도움으로 마음저리를 깨달았습니다. 크게 이름을 드날리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터득하고 남모르게 증득한 선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잠스님이 시지를 보내 법을 물어보게 하였던 것입니다.
제4조인 우바국다존자에게 ‘내 몸’ 이라는 견해에 집착된 사람이 와서 제도해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에 존자는 “제도를 받고자 한다면 나를 믿고 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아야 한다”라고 다짐을 받았습니다. 이에 그 사람은 “이미 스님께 귀의하였으니 마땅히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존자는 신통으로 험한 산벼랑에 높이 솟은 나무를 만들고, 나무 밑에는 깊은 구덩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로 하여금 높은 나무에 오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리를 떼게 하니 그 사람은 명령을 받들어 바로 두다리를 떼었고, 또 한손을 놓게 하니 그 손을 놓았습니다. 다시 한손마저 놓게 하니 그사람이 이르되 ‘이 한 손을 마저 놓으면 나무에서 떨어져 구덩이에 빠져 죽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존자께서 이르되
“아까 내 말을 따르겠다고 약속했는데 어찌하여 그 말을 어기는가?” 하였습니다. 그 순간 몸에 대한 애착이 바로 끊어져서 한손마저 놓아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나무도 구덩이도 보이지 않었고 바로 그 순간도를 증득하였던 것입니다.
백장百文스님에게 출가하고 위산鴻山스님에게 참학參學하였던 향엄香嚴스님도 “마치 어떤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서 입으로 나뭇가지를 불고 손으로 가지를 잡거나 발로 가지를 밟지도 않았거늘 밑에서 어떤 사람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를 물었다고 가정해 보자. 대꾸하지 않으면 묻는 이의 뜻에 어긋나고, 대꾸하면 자기의 목숨을 잃는다. 이 때는 어찌 해야 좋을까?’라는 법문을 한적이 있읍니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할수 있는 그 마음이 바로 결제結制하는 마음입니다. 칼날 위를 걷고, 살얼음을 타고, 계단이나 사다리를 쓰지 않고 절벽 위에서 갑자기 손을 놓아버릴 수 있는 현애살수懸崖撒手의 각오 바로 그것입니다. 벼랑에서 손을 놓아버려야 바로 살길이 생깁니다. 일체의 집착 곧 자신과 자신의 생명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릴 때 비로소 그 사람은 부처 그 자체, 심성心性 그 자체가 될 수 있습니다.
백척간두에서 진열보 해야 시방세계가 온통 한몸이라는 경잠스님의 법문에 대하여 승천종承天宗스님은 주장자를 들어 올리면서 “백 척 장대 끝이 여기에 있으니, 앞으로 나아가도 뛰어넘을수 없고 나아가지 않는다 하여도 뛰어넘을수 없으리라.
설사 석불石佛이 주장자를 꺾어 버리더라도 뛰어넘을 수 없으리라. 어째서 그런가?
여러분이 아는 곳은 석불이 모두 알지만 석불이 아는 곳은 여러분이 모르기 때문이다. 마지막 구절에 말하기를 ‘시방세계가 온통 몸’ 이라 하여도 역시 뛰어넘지 못하리니 일곱 군데 뚫리고 여덟 구멍이 있는 안목이 없는 이는 장사長沙의 과굴菓窟 속에 떨어짐을 면치 못할것이라”고 평창評唱을 하였던 것입니다.
결제대중結制大樂 이여 !
옛 선지식들의 이러한 이야기가 기특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점검해 보건데 물을 건널 줄만 알았지 물이 흐르는 줄은 모르는 격입니다. 그리고 시방세계가 온통 그의 몸이라고 하였는데 백 척 장대를 도대체 어디에다 꽂겠다는 것입니까?
누가 그 자리를 찾아내겠습니까? 찾아내기만 한다면 당장에 모든걸 던져 버리고 집에 돌아가서 편안히 앉았겠지만 만일 찾지 못했다면 짊어지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백척간두수부도 百尺竿頭誰不到오
무권운수일고고 驚卷雲收日고果로다.
남북유인귀거래 南北遊人歸去來하니
예낭주중산수호 豊郞州中山水好로다
백 척 장대 끝에 누군들 이르지 못하랴.
안개와 구름이 걷히니 햇빛이 밝구나.
남북으로 오가는 이 집으로 돌아오니,
예주 땅과 낭주 땅에는 산도 좋고 물도 좋다.

2541년 하안거 결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