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방으로부터 함께 모여들어
모두 무위의 법을 배운다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시험장이니
마음을 비워야 급제하여 고향에 돌아가리라
(十方同共聚)
(個個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옛날 몽산蒙山스님께서는 상근기上根機는 일 주일만 공부하면 깨칠 수 있고,
중근기中根機는 한 달이면 깨칠 수 있으며, 설사 하근기下根機라고 할지라도 석 달이면 깨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산승이 공부하는 방법에 대하여 몇 마디 이르고져 합니다.
먼저 생사生死를 해결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내야 합니다.
이는 바깥 세계와 나의 몸과 마음이 모두 인연으로 이룩된 거짓 존재일 뿐 그것을 주재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아야 함을 말합니다.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면 생사에 집착하는 마음을 절대로 깨뜨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죽음을 재촉하는 귀신이 순간순간 멈추지 않고 따라다니게 되니, 이것을 어떻게 쫓아버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이 한 생각만을 가지고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살아날 길을 찾듯 해야 할 것입니다. 비틀거리며 걸어나가려 해도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고 가만히 있자니 그럴 수도 없으며, 다른 생각을 하려 해도 한 생각도 일으킬 수 없고, 다른사람에게 도움을 청할수도 없으니,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모름지기 타오르는 불도 돌아보지 말고, 목숨도 돌아보지 말아야 하며, 또한 남이 도와주기를 바라지도 말고, 머물러 있을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고는 곧장 앞으로 달아나 우선 불길 밖으로 뛰어나오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생사에서 벗어나겠다는 대발심大發心이 이 공부의 출발입니다.
두번째는 의심疑心을 일으켜야 합니다. 무엇을 의심이라고 합니까?
예를 들면 이러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로부터 태어났는지를 모르니 그 온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니 기는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생사문제라는 관문을 뚫지 못했을 때 문득 의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의심 뒤에는 일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납자는 고개를 쳐들어도 하늘을 못 보고, 고개를 숙여도 땅을 보지 못하며, 산을 보아도 산으로 보이지 않고, 물을 보아도 물로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길을 걸어가더라도 걸어가는 줄을 의식하지 못하며,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줄을 몰라야 합니다. 조주趙州스님은 삼십 년 동안 쓸데없는 데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루 두 끼 공양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잡된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몸과 마음이 온통 이 의심덩어리 하나뿐이어야 합니다.
참선하는 납자는 죽어서 살아나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살아만 있고 죽지 않을까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결단코 의심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들떠 움직이는 경계를 굳이 떨쳐버리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지고 마음을 억지로 맑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히 맑아지며 그리하여 육근六根이 텅 비어 자유로워집니다.
셋째로 또렷하게 깨어 있는 채로 참구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졸면서 어떻게 공부를 하겠습니까? 참선하면서 눈을 감고 공부한다는 납자가 있다는데 참으로 이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이는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술취한 사람이며 꿈꾸는 사람일 뿐입니다.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납자는 쥐를 잡으려는 고양이처럼 분명하고 또렷하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두 눈에는 불이 나야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망상의 도깨비 굴에 들어앉게 되어 어둡고 깜깜한 채로 일생을 다 보내고 말 것입니다. 앉으면 졸고 일어나면 잡담하면서 무슨 공부가 되겠습니까?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목표물을 노려보고 네다리에는 힘을 주고 곧추서서 오는 쥐를 잡아 입에 물어야만 비로소 그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설사 그 때 닭이나 개가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참선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오직 이 도리만을 밝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을 뒤흔드는 여덟 가지 경계(八境)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해도 신경 쓸 틈이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쥐는 커녕 고양이마저도 달아나고 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간절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참구해야 합니다. 화두를 한번 붙들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공부하고서는 쉬는 시간에는 화두를 보자기에 싸가지고는 선반 위에 올려놓고 딴짓을 한다면 미륵보살이 하생하더라도 구제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참선할 때 간절함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합니다.
간절하다면 어찌 방일한 마음이 일어나겠습니까? 화두 하나에 온통 간절한 마음을 쏟으면 선과 악 그리고 무기無記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곧 선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악도 생각하지 않게 되며, 또한 간절한 마음 때문에 무기에도 떨어지지 않게 됩니다. 화두를 간절히 참구하면 마음이 들뜨는 상태인 도거棹擧나 어둡게 가라앉는 혼침昏沈도 없어집니다. 마음 씀씀이가 간절하면 마魔가 들어을 틈이 없으며, 유무有無에 대한 분별심을 내지 않기 때문에 외도外道에도 떨어지지 않게 됩니다. 외도와 마구니가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삼 입고 큰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외도 짓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더러 참선하는 사람들이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기 쉬운데 이것은 공부를 포기하는 일이 됩니다. 화두 공부는 마치 모르는 길을 물어서 가는 것과 꼭 같습니다. 물어도 길을 모른다고 쉬어서야 되겠습니까? 정확하게 길을 찾았거든 걷는 일만이 중요하니, 똑바로 그 길을 걸어가서 목적지인 집에 도착해야 합니다. 길바닥에 진을 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걸어가지 않으면 끝내 집에 도착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대신심大信心을 내면 분심憤心도 따라서 일어나게 되고 분심이 일어나면 저절로 간절한 마음이 생겨 굳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공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로회탈사비상 塵勞廻脫事非常
긴파승두주일장 緊把繩觀故一場
불시일번한철골 不是一觀寒徵骨
쟁득매화복비향 爭得梅花聽鼻香
티끌세상을 벗어남은 보통일이 아니니
고삐 끝을 꼭 잡고 한바탕 일을 치르라.
매서운 추위가 뼛속을 사무치지 않으면
어떻게 매화 향기 코를 찌르랴.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