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방으로부터 함께 모여들어
모두 무위의 법을 배운다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시험장이니
마음을 비워야 급제하여 고향에 돌아가리라
(十方同共聚)
(個個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황룡黃龍스님께서 설날 아침에 법상에 오르자 한 스님이 여쭈었습니다.
“묵은 해는 이미 지나갔고 새해가 찾아왔습니다.
이 두 길을 지나지 않는 길을 스님께서 지적해 보여 주십시오.”
“동방東方은 갑을목甲乙木이니라.”
“인간과 천상이 귀를 쫑긋 세우고 오로지 흘러 통하는 소리를 들을 뿐입니다.”
“흘러 통하는 일은 어떤 일인가?”
“흐르는 물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찌 다른 산으로 지날 수 있겠습니까?”
“삼십 년 뒤에 잘 헤아려 보아라” 하시고는 경청鏡淸스님과 명교明敎스님의
법문을 끌어왔습니다.
경청스님에게 한 스님이 물었습니다.
“신년벽두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있느니라.”
“어떤 것이 신년벽두의 불법입니까?”
“초하룻날 아침에 복을 여니 만물 모두가 새롭구나.”
“스님께서 대답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노승이 오늘은 손해를 보았구나.”
다시 그 스님이 명교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신년벽두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없느니라.”
“해마다 좋은 해이고, 날마다 좋은 날이거늘 무엇 때문에 없다 하십니까?”
“장서방이 술을 마시는데 이서방이 취하는구나.”
“원, 무슨 말씀을. 용두사미龍頭蛇尾로군요.”
“노승이 오늘은 손해를 보았구나.”
그리고 난 뒤 황룡스님은 “경청스님이 손해 본 것은 묻지 않겠다.
그대 납자들이여! 무엇이 명교스님이 손해본 것이더냐? 가려낼 사람이 있다면
문수의 머리는 하얗고 보현의 머리는 까맣겠지만 가려내지 못한다면
오늘은 내가 손해를 보리라” 하고는 법좌에서 내려 왔습니다.
장산 근藏山 勤스님은 “새해 아침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라는 질문에 “유有와 무無의 양쪽에도 있지 않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내가 오늘 손해를 보았다.”라고 해 버렸습니다.
조계 명曹溪 明스님은 “새해 아침에도 불법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주장자를 들어 등줄기를 후려 때리리라. 만일 가죽 밑에
피가 흐르는 놈이라면 반드시 산승의 사람을 위하는 일이 옳다고 하리라.
지금이라도 생명을 아끼지 않는 납자가 있다면 나와서 물어라”라고 외쳤습니다.
한참 있다가 깔깔거리며 웃고서는 “풀섶을 치는 것은 다만
뱀을 놀라게 하려는 것 뿐이니라” 하였습니다.
목암 충牧庵 忠스님은 “경청은 가이 신날 것이 없는 곳에 신을 돋우고
뽐낼 것이 없을 때에 의기를 더 하는구나.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것이 새해 아침의 불법인가?’ 하고 묻는다면 ‘설날 아침에 복을 여니,
만물 모두가 새롭도다’라고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지해 청智海 淸스님은 “은하수는 비록 같으나 섬은 끝내 나누어지고,
구름과 달은 같으나 개울과 산은 각각 다르다. 경청이 수놓은 주머니를
바람결에 여니, 맑은 향기가 멀리 사람의 코를 찌르고,
원명圓明이 물거울(水鏡)을 장대 끝에 걸어두니,
싸늘한 빛이 미미하게 햇빛을 쏜다”라고 하였습니다.
경청스님은 ‘신년벽두에도 불법이 있다’는 말에 손해를 당했고,
명교스님은 없다는 말에 손해를 당했다고 했는데 도대체
잘못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만일 밝혀 낸다면
나아가고 물러설 줄을 알 것이며, 길하고 흉한 것을 알아, 한마디에
몸을 나누는 귀절이 있고 몸을 빼내는 길이 있음을 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두 노장님 중 한 분은 높고 높은 봉우리에 서서 정수리를 드러내지 않았고,
한 은 깊고 깊은 바다 밑을 다니면서 발도 젖지 않았으니
옳기는 옳습니다마는 그래도 역시 모자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두 노장님의 견해가 한쪽으로 치우쳐 ‘없다’거나 ‘있다’거나 하였지만
가능한 한 그들에게 한마디로 잘라 버렸다면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쉬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일인一人은 향남섬부주向南廳部洲하야
월하月下에 탄금彈琴하고
일인一人은 재북구로주在北俱盧洲하야
일리 日裏에 무검舞劍이라.
홀연일실忽然一室에 상회相會하여 무장대소無掌大笑하니
서광瑞光은 직투청소외直透靑宵外하고
자운紫雲은 편복진사계遍覆塵沙界로다
한 사람은 남섬부주를 향해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고
한 사람은 북구로주에 있으면서 햇빛 속에서 칼춤을 춘다.
문득 한방에서 서로 만나 손뼉 치며 크게 웃으니
상서로운 빛은 푸른 하늘 밖을 바로 뚫으며
자주빛 구름은 온 세계를 두루 덮나니라.
억 (喝) !
새해 아침 퇴설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