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방으로부터 함께 모여들어
모두 무위의 법을 배운다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시험장이니
마음을 비워야 급제하여 고향에 돌아가리라
(十方同共聚)
(個個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만언봉두셜작퇴 萬仞峰頭雪作堆
일지한목의암외 -枝寒木倚岩限
청청불괴사시조 靑靑不改四時操
임대춘풍취불회 任待春風吹不回
만 길 높은 봉우리에 눈더미 쌓였는데
한 그루 차가운 나무 바윗가에 서 있노라
푸르고 푸른 절개는 사계절 변함 없고
봄바림이야 불든말든 아랑곳 하지 않네
사실 세속은 윤회의 길이요 출가는 해탈의 길이니 해탈을 위히여 출가한사람이라면 세속을 당연히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혜원스님은 삼십 년 동안 여산 동림사를 떠나지 않았고 경수좌는 설봉산에서 사십 년을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혜스님의 제자 둔임종연遯庵宗演 선사는 스승이 입적하고 나서는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누더기 한 벌로 추위와 더위를 이기면서 삼십 년 동안을 한곳에서 보냈습니다.
설사부모의 깊은 은혜라고 할지라도 출가수도로써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부모의 은혜에 끄달리게 되면 이는 자기는 말할 것도 없고 결국 부모까지도 지옥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이니 부모라 할지라도 길 위의 행인 대하듯이 해야 할 것입니다.
황벽희운 선사가 수천 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황벽산에 주석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때 노모가 의지할 곳이 없어서 아들을 찾아왔습니다. 희운 선사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대중에게 물 한 모금도 주지 못하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노모는 하도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다가 대의강大義江가에서 배가 고파 엎어져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밤 희운 선사의 꿈에 모친이 현몽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물 한 모금이라도 얻어먹었던들 다생으로 내려오던 모자의 정을 끊지 못해서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너에게 쫓겨 나올 때 모자의 깊은 애정이 다 끊어져서 그 공덕으로 죽어 천상에 가니 너의 은혜는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절을 하고 갔습니다. 무엇이 출가자의 효도인지 왜 세속의 정을 끊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수도에는 인정이 원수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서로 싸운 사람같이 지내야 합니다. 인정이 두터우면 도심은 성글기 마련입니다. 독행독보獨行獨步하여 세간의 대 낙오자가 되지 않고는 그리고 참으로 고독한 사람이 되지 않고는 이 공부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부인이라면 세속과는 단절하고 살아야 합니다. 세간과 더불어 타협할 때는 이미 엄벙덤벙 허송세월하다가 죽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명주明州 땅의 계하덕굉啓하德宏 선사는 인품이 강직하고 까다로워 쓸데없이 말하거나 웃지 않은 탓에 총림에서는 철면鐵面 곧 쇠 같은 얼굴이라고 불리워졌습니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와서 형양형陽 땅에 살고 있는데 스님과 같은 고향이라 한다고 시자가 전해 왔습니다.
굉선사는 주장자를 끌고 가면서 “가서 참선해서 도는 배워 오지 않고 고향사람은 알아서 무엇을 찾겠다는 건가?”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그 스님이 우물쭈물 머뭇머뭇하자 주장자로 후리쳐 쫓아 버렸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연줄로 자신의 위치를 굳히려는 자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만들어서 사람을 다스렸던 것입니다
공부에 어찌 승속이 따로 있겠습니까? 민산閩山 거사 유경현兪景賢은 무봉용鄭峰用 수좌를 만난 다음엔 경계가 달라져 그 뒤로부터 친척권속과 인연을 끊고 혼자 살았습니다. 거사의 신분으로도 공부를 위해서는 세속을 끊었던 것입니다.
민산거사가 무봉수좌를 뵙고 물었습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그대에게 말해 주고 싶지만 그대가 믿겠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에게는 참선이 요긴한 것이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물을 것은 없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저쪽에서 오신 데 무슨 의의가 있겠습니까?“
이에 거사는 환히 깨닫고 옷을 털며 일어나 나가자 용수좌가 다시 그를 불러 세우며 말하였습니다.
“무엇을 보았기에 곧바로 나가시오?”
거사가 뒤를 보는 찰라에 용수좌가 악! 하고 할을 하나 거사는“그만 그만!” 하고서 곧장 나가 버렸습니다.
그 뒤 고향에 돌아가 친척권속과 인연을 끊고 말 없이 섬 위의 별채에서 홀로 살며 이런 게송을 저었습니다.
착각유홍역제귀 錯脚遊洪歷制歸
갱무일법가사유 更無一法可思惟
시문고엄장강상 柴門高據長江上
수관풍도고시비 誰管風濤鼓是非
잘못 내친 걸음으로 홍주제주를 다니다가 돌아오니
아무 것도 생각할 것이 없네.
장강 위에 사립문 굳게 닫아 걸었으니
누가 시끄러운 사비에 상관하랴.
하물며 재가자도 이러할진대 출가자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언제나 수행자의 본분을 잊지 말고 절대로 세속에 물들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야 할 길만 고고하게 걸어 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