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종념이 남전보원에게 물었습니다.
"도란 무엇입니까?"
남전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평상심이 도이다."
조주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도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까?"
남전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의심을 가지게 되면 곧 어긋난다."
잘 아시다시피 저 유명한 조주어록에 나오는 대화 한토막입니다. 선문에서는 어떤 기특한 일이나 신비한 체험, 불가지한 진리를 말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허공과 같은 절대 진리가 있다거나 저 언덕 너머 행복과 안락의 세계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신이니 천당이니 사후의 세계니 하면서 무엇인가를 설정하면, 곧 진리의 대도에 어긋나 버린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에 지쳐 있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겪게 되는 가치의 혼란이나 갈등은 공히 안팎 살림살이의 흔들림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일년은 전인류적인 문제에서부터 한 개인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심한 변화와 격침의 파랑을 건너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면서 얼었던 동토에 해빙의 물결이 일었는가 하면 다른 한켠에서는 전쟁의 광풍이 몰아쳤고, 남과 북의 화해의 시대가 열리는가 하면 생존의 현장에 서있는 사람들은 매서운 지배의 논리에 내몰리기도 했습니다. 경제의 고도 성장으로 물질적 풍요가 가난을 벗어나게 했는가 하면, 부패와 타락과 일확 천금의 금전 만능 풍조가 넘쳐나기도 했습니다. 정치는 더 많이 지배하고자 하고 경제는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고 문화는 말초 신경을 더 많이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문명 사회라고 부르는 오늘날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물질적 풍요에 대해서 심각한 반성을 할 때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무한대의 욕망으로 이루어 내는 물질 문명은 끝도 없이 그 한계 상황으로 치달아 사람만 상하게 할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차가운 지혜의 눈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 지혜는 다름아닌 우리의 무한에 가까운 욕심을 버리고 물질적 풍요의 허상에서 벗어나 평상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의 행원과 관음보살의 자비야말로 진정 우리의 상처받은 삶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새해의 실다운 불법은 우리 모두가 안분 자족하는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깊은 어둠을 밀어내고 저 동해 위로 두둥실 떠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임신년 새해는 밝고 활기찬 새해가 되도록 합시다.
새해는 우리의 삶이 작은 아름다움에서부터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삼보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천상 천하, 두두 물물, 삼라 만상이 두루 청복을 누리소서. 평히 안락 하소서.
해인사 주지 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