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성관 혜암스님


성관 혜암스님

성관 혜암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나의 몸은 본래 없는 것이요
마음 또한 머물 바 없도다
무쇠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고
돌사자는 소리 높여 부르짖도다

제목 : 해인사 부방장 혜암스님 1993 년 1 월(131 호) 신년방담
대담/민우스님(월간 ‘해인’ 편집위원)

스님, 오랫만에 뵙겠습니다. 그 동안 원당암에 주석하시면서 불사도 많이 하시고 참선 지도하시면서 도량을 일신하셨는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나이 든사람의 건강은 나이가 들어 봐야 알지.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밥힘으로 산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익힌 습관이 되어서 점심 한끼만 먹지. 죽이라도 삼시 세때 먹어 보려고 해도 그게 잘 안 돼. 그래서 사시에 아주 작은 공기로 잡곡밥 한그릇 먹으면 그것으로 색신을 유지하는 데는 충분하지. 간식은 전혀 하지 않아. 그리고 부지런함이야 말로 건강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지. 요즈음도 웬만한 일은 시자를 시키지 않고 내가 손수 다 해. 그러나 최상의 보약은 역시 좌선이야. 나는 내 경험을 통해서 참선을 해서 힘이 생긴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어. 건강은 바른 생각과 바른 행동 속에 있다는 것올 알아야 해.

역시 건강함과 관련이 있는 질문이 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랫동안 장좌불와를 하신걸로 제방에 알려져 있습니다. 스님께서 거처하시는 방에는 이불과 베개를 볼 수 없는데, 지금도 장좌불와를 하시는지요?

도의 본분사에서는 제팔아뢰야식에 대한 오매일여가 되어도 화두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정법안장에 쓰여 있듯이, 공부를 하는데 낮과 밤의 구별이 있어서야 되겠느냐 해서 장좌불와를 시작했지. 일반적으로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하듯이, 평생 익힌 공부 방법이라 지금도 앉아 있는 것이 편해. 나이가 들면 기력이 떨어져서 자리에 누우라고 주변에서 하도 권하길래 누워 봤더니 해로움이 있고 더 불편해서 아주 기운이 부치면 잠시 벽에 기대기는 하지만은 자리에 눕지는 않아 그리고 몸은 많이 야위었지만 따뜻한 방에 앉아 있으면 공부가 잘 안된다는 것을 젊었을 때부터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방안 곳곳에 물올 떠다놓고 청냉한 자리를 만들려고 하고 있지. 음식도 그래. 나이가 들면 기름진 것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시험삼아 먹어 봤는데, 오히려 힘들고 내 몸에 안 맞아. 보약도 권해서 먹어 봤는데, 밥 한 공기 겨우 들어가는 속에 하루 세 번 먹는 약이 보약이 되겠어. 도리어 해가 되는것 같아. 되도록이면 어떤 약도 먹지 않으려고 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꼭 이런 방법이 맞다고는 할 수 없지. 나는 내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것을 얘기할 뿐이야. 건강법도 마찬가지고공부하는 법도 마찬가지야. 자기에게 맞는 법을 찾아야 해. 장조불와니 일종식이니 하는 상에 집착하면 안 돼.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부처님의 바른법을 깨닫는 데 있는것이지. 불행佛行은 불심에서 나오는것이니까.

돌이켜보건데 지난 임신년은 참으로 다사 다난했던 한해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우선 종교적으로는 종말론에 심취한 사람들의 휴거 파동이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대선이 있었습니다. 이제 새로이 계유년을 맞이하여 불자들과 일반 대중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우선 건강하고 복 많이 짓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축원하고, 바리는 것들이 모두 성취되기를 기원합니다. 사실 원하는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일이 험난하고 힘들다는 것이야. 내가 보건대 복이라든지 호사好事라든지 하는 좋은 말은 있어도 참으로 그 말에 걸맞는 좋은 일은 없는 것 같아. 물건에 반드시 그림자가 따르듯이 좋은 일에는 꼭 나쁜 일이 따르기 마련이지. 허망한 인연 따라 생겨나는 것들은 인연 따라 없어지게 돼 있어 . 그래서 공행空行을 닦아야해. 부처님도 말씀하셨듯이 보는 것도 헛것, 듣는 것도 헛것, 마음으로 사랑분별 하는것도 다 허망한 것이기 때문에 먹어도 먹는 것 없이 가도 가는 것 없이 수행을 해야돼.
연극 배우처럼 인연 따라 사아가되 생사의 업을 짓지 않고 해탈의 길을 찾아서 가는 것이 바로 복짓는 일이고 좋은 일이야 도란 무엇인가하면, 바로 내 마음을 깨닫는 것이야 제불제조가 한결같이 말씀하셨듯이, 내 본심을 깨우치는 것이 성불의 길이야.
불법이라는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성인들의 것이 아니라 내 불교이고 내 법인 것이야. 그것은 내 마음을 떠나서 따로 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끝없이 고통이 이어질 뿐 다른길은 없어. 이 세상에 보물이 뭐냐. 부동산이나 은행에 있는 돈이나 금은, 진주가 보물이 아니고 사람이 몸을 받은 것이 보물이고, 이보다 더 큰 참 보물은 사람의 몸을 받아 도를 깨우쳐 생사고를 벗어나는 것이지.
이러한 법이 살아있을 때가 언제나 정법의 시대이고, 설사 부처님이 계시더라도 이러한 법이 사라져 버리면 그것이 말법이고 종말인 것이야.
모든 것은 우리 마음에 있고 사람에게 있지 법(法) 자체에 말법(末去)이니 종말이니 하는 것은 없어.

스님께서는 평생 선을 통해서 수행하시고 대중들을 교화하시면서 나름대로 가풍이나 납자들을 지도하시는 원칙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첫발이 밝아야 만리가 밝다고 먼저 계를 잘 지켜야 돼. 일반인들은 천상에 가려고 계를 지키지만 스님들은 계를 통해서 정을 이루고 정이 갖추어져야 지혜를 이룰 수 있는 것이지. 이 셋이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이지. 환경이 공부에 해태심을 내게 하지만 분발심이 있으면 이런 문제는 자연히 해결돼지.
나는 참선하는 법과 먹는 법을 둘로 보지 않아 많이 먹으면 힘이 넘치고 육단심이 생겨나지. 또 말을 많이 하게 되고, 말이 많으니 시비가 일어나고, 배부르니 돌아다니고 싶어지. 그래서 음식을 잘 조절할 줄 알아야 돼.
나는 평생 밥을 함부로 먹어 본적이 없어. 일부러 밥을 적게 먹으려고 속바루만 빼 가지고 다녔어. 선방에서 특히 간식 먹는 법을 없애야 돼. 용맹정진 때도 간식을 먹고 오면 대중 분위기가 달라져. 더 힘들어하고, 간식 안 먹으면 잘 따라 오는데, 뭘 먹으면 더 많이 졸고 힘겨워하지. 먹는 것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잠도 마찬가지야.
나는 오대산 동관음암에 살면서 육개월 동안 자리에 눕지도 앉지도 않고 시험을 해봤어. 잠을 안 자도 되는가를 말이야. 오대산 동관음암에서 적멸보궁까지 이십오리인데 그 길을 밤이고 낮이고 지팡이 하나만 짚고 걸어다녔지. 밥도 한 끼만 먹고 밤에 등불도 없이 다녔어. 그 때는 늦게 오면 뱀이 다리를 칭칭 감은 줄도 모르고 산에서 내려오고, 그렇게 뱀이 많았어. 나는 그래도 미물인 뱀도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두려움도 없이 육개월을 그 길을 걸어다녔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녔는데 지팡이 한 번 까딱하지 않았어. 잠은 익혀서 되는 것이지 꼭 몇 시간을 자야한다는 말은 다 허망한 소리야. 나는 나 자신하고 약속한 것은 천하 없어도 지키는 사람이야. 장좌불와를 할 때도 한 번도 엎드리거나 등을 기대지 않았어. 내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귀신이 나를 얼마니 얕보겠냐 해서. 일 주일 단식하고 용맹정진 할 때도 쌀 한 톨 안 가지고 굴에 들어가서 정진했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귀신이 얕볼까 해서 철저하게 공부했지.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은 첫째는 적게 먹고, 둘째는 적게 자고 셋째는 말을 적게 하고, 넷째는 돌아다니지 말고, 다섯째는 꼭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대 용맹심이 있어야 돼. 그리고 부처님의 계율이 있고 밀행의 계율, 곧 자신과의 약속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그 약속을 꼭 지켜야만이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겨야만이 불퇴전의 정진력이 생기는 것이지. 이것이 내가 선을 지도하는 원칙이고 내 살림살이야

요즘은 경제적으로 사회나 절집 모두가 매우 풍요로워졌습니다. 스님께서 젊으실 때 고행하시며 수행하셨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물질적으로 궁핍했던 과거 시절이 바르게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예전의 수행 풍토와 오늘날의 수행풍토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그때는 대중들이 서로 위하고 아낌 줄 알았지. 오십 년 전만 하더라도 사회나 절집이나 먹을것이 없어 매우 어려웠던 때였지. 그때는 대처승들이 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구승들은 행각하면서 대처승 절에 가서 한끼 얻어먹고 그랬어. 그때는 선방도 별로 없었어. 해
인사에 있었고 전라도 다보사하고 운문선원 상원사선방 등 몇 개 없었지. 그때 한암 스님이
계시는 오대산 상원사에서 사는데 삼동에는 오후 불식을 하고 해동하면 채소를 심어 양식을삼았어. 반찬이 아니라 주식이었지. 밥상에는 간장도 없고 김치도 짜게 해서 적게 먹으려고 그랬어. 기름은 아예 먹을 생각도 못내고, 그리고 옷에 풀을 먹여 입는것도 없었어. 밀가루가 없었으니까 한감스님께서는 옷도 자꾸 빨지 말고 목욕도 자주 못하게 했어. 해인사에서는 여름이면 아침에 죽을 쑤어 먹는데, 그때는 아욱을 식량으로 쓰려고 계획적으로 많이 심었어. 그래 쌀알은 어쩌다가 보이고 소죽처럼 풀죽을 먹고 살았지. 가끔 도에서 군에서 배급을 타오는데 곰팡이 핀 썩은 국수, 아니면 중국만주에서 온 수수쌀, 그것도 배불리 못 먹었지. 그리고 노스님들이 장경각에서 기도해 돈이 생기면 삭발 목욕일에 대중공양을 내. 두부하고 미역하고 찰밥올 먹는데, 그날만 돌아오면 온 산중이 잔칫날이야. 그때도 나는 두부를 받으면, 위에 앉은 스님 좀 덜어 주고 아래 스님도 덜어 주고 그랬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이 지금도 안 잊혀져 . 그렇게 불쌍하니까 서로 도와주고 젊은사람은 노인 공경하고 노스님네들은 젊은사람 도와주려 하고 도반道伴들끼리도 마찬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시비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어.

그때는 빨래를 담구어 놓기만 하면 누가 빤지도 모르게 빨래줄에 걸려 있었어. 노스님네들
도 젊은 사람이 빨래 담궈 놓고 화장실만 가도 빨아서 놓고 일꾼들이 담궈 놓아도 누가 한지 모르게 다 빨아 놓고 그랬어. 지금도 안 잊혀지는게 일꾼이 장에 가면서 “노스님 저 오늘 장에 갑니다. 그런데 빨래 담궈 놓고 갑니다” 했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또 대중들이 어디 나갔다오면 빈손으로 안와. 먹올것이나 돈을 챙겨와서 대중공양을 내고 시간나면 산에가서 나물을 뜯어 다듬어서 오늘 이것 대중 공앙하게 해주십시오 그랬어. 지금처럼 이것 해라 저것 해라 그러지 않았지. 그래서 다들 양식떨어지기 전에 성불해야지 하는 발심을 해서 열심히 공부했어. 학인들도 그렇게 어렵게 사니까 일념으로 공부를 했지. 그때 문리를 통한 대강백이 나왔지. 요즈음 그런 강백이 어디 나와. 사람이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그때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심은 대단했어. 지금은 물질만능 시대가 되어서 그런 정신을 다 매장해 버렸어. 그때는 물질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안살림은 극락이었지. 사람이 환경을만들기도 하지만 요즈음은 환경이 인정을 메마르게 해서 예의도 사라져 버리고 정신을 썩게 만들어 버렸어. 요새 사람들이 참으로 박복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옛날 대중처소에는 노스님들이 많이 계셨는데 지금은 노스님들이 안계셔. 노스님을 공경하고 대우해 주는 풍토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야. 옛날 책에도 있듯이 절에는 고목나무와 노스님이 보물인 것이야 옛말에도 물건은 새 물건을 쓰더라도 사람은 헌 사람을 써야 한다고 했듯이. 절에는 노스님들이 계셔서 자리를 잡아야만 법이 서는 법이지.
위계 질서가 올바로 서고 노스님들의 가르침과 젊은 사람들의 구도심이 함께 어우러졌을 때, 대중처소가 살아있는 것이지. 이끌어주고 편달해 주는 어른이 안 계시면 대중처소는 없어질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해.

돈오(頓悟)와 점오(漸悟)는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논란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방법과 그 내용에서 돈(頓)과 점(漸)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어떠한 것이 바른 견해인지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도 무량겁을 닦아서 성불하셨고, 나도 지금 닦고 있는데, 그것을 비방함이 아니야 그렇다면 전국에 선방을 모두 없애 버려야지.
우리 정법안장에서는 깨달음이란 바로 불조의 경지에 이르러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것, 그것이 돈오지. 바로 여래지에 들어간다 함과 부처님의 근원에 도달한다 함이 이를 두고 한말이지. 깨닫고 난 뒤에도 닦을 것과 제거할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정법(正法)이 아니야. 차제 법문을 통해서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돈오법이라고 하는 것은 일언지하에 한 몫에 깨달음에 이르면 점수라는 것은 있을 수 없지. 견성하면 그 자리가 성불의 자리이지. 다시 닦을 게 남아 있다는 것은 정법(正法)계통에는 없어. 교리적으로도 돈오점수는 맞는 말이 아니야. 점수법은 장엄문, 불사문, 소승법, 교가의 방편문이지.

지금 종단에는 토초세라든지, 동국대학교 경주분교 문제 때문에 교단수호위원회가 발족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그 문제에 관여하고 계신 줄로 알고 있는데, 그 내용과 대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그 회의에 두 번 갔는데, 이런 중대한 일을 사전에 상의도 없이 결정해서 일방적으로 통고한 정부에도 문제가 있지만 일차적으로 스님들의 정신이 다 죽어 버렸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야.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법적으로 해결해야 하겠지만 참으로 부당한 일인 줄 우리가 안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줄 알아야해.
나는 그 사람들에게 “대통령 결재가 났습니까. 좋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가 순리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하고 우리의 입장을 전했지. 삼보(三寶)의 재산은 당대만의 것이 아니고 미래에 물려줄 것인데,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후세에 큰 누를 끼치기 때문에 이참에 전 종도가 단합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해.

올해는 제칠공화국0| 출범되는 해입니다. 지난 대선 때 스님께서도 유권자로서 한 표를 행사하였을 줄로 믿습니다. 이미 지난 일입니다만 지난 대통령 선거에 대한 소감을 한 말씀 해주십시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사람들이 와서 “이번 대통령은 누가 되겠습니까” 하고 묻길래, 나는 원칙론에 입각해서 “국민이 복이 많으면 복이 많은 사람이 당선될 것이고, 국민이 복이 없으면 대통령도 박복한 사람이 당선될 것이다 하고 했어.
참으로 이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고통을 사라지게 할 대통령이 뽑혀야지.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복이 없는 것이야.
선거라는 것은 바른 사람을 뽑는 하나의 방법이지. 공명선거니 부정선거니 하는 방식에만 매달려 사람을 바로 보고 뽑지 못하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격이 되는 거야. 아무튼 이번 선택이 복 많은 국민의 선택이길 바랄 뿐이야.

오랜 시간 동인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학들을 위해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