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방으로부터 함께 모여들어
모두 무위의 법을 배운다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시험장이니
마음을 비워야 급제하여 고향에 돌아가리라
(十方同共聚)
(個個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어떤 것이 정법안正法眼입니까?
“넓다.”
여기에 대우수지선사가 송領하였다
부처를 설하고 법을 설하여 널리 펴 벌림이여
활촉 위에 뾰족함을 더하니 크게 어리석다.
눈 밝은 납승納僧이 옆에서 엿보니
한 개 주장자를 두 사람이 마주 든다.
선문의 화두공안 가운데 널리 쓰여 납자의 안목을 점검하는 운문스님의 법어입니다. 이 자리는 알음알이나 마른 지식으로 헤아려 낼 자리가 아닙니다. 오직 향상일로(向上一路)의 밀밀상승(密密相乘)한 오매일여(寤寐一如)의 자리에서만 그 기틀을 알뿐입니다. 이 근본의 자리를 일러 부처라 하고 큰 깨달음이라 하고 본래면목이라 합니다. 우리가 불법을 수정하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을 이루어 내는 일 없이 어떤 것을 말해도 그것은 방편문이고 생사문이지 등지문, 해탈문은 아닙니다.
임신년 한 해가 가고 계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에 못다 이룬 일을 올해는 성취하여야 할 것이고, 새해의 일은 솟는 해처럼 두둥실 잘 풀려 나가야 하겠지요.
어제 떠오른 태양이 오늘과 다르지 않듯이 본래의 자리에는 가고 옴도 더하고 덜하고가 없습니다. 바깥 경계에 끄달려 경거망동하는 사람에게는 시작과 끝이 있지만, 여여부동한 근본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무궁한 열반 락이 있을 뿐입니다. 새해 벽두에 운문스님의 말씀을 꺼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불법이 넓다는 의미는 세간법을 떠나서 불법이 따로 없고 불법을 떠나서 세간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그것은 참 불법을 실현하면 세간의 모든 일에 진리의 참 뜻이 함께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우스님은 여기에 활촉에 뾰족함을 더하는 어리석음으로 질타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문제는 간단합니다. 바른 법의 눈을 갖추었느냐 아니냐 입니다. 바른법을 체달한 사람은 세계가 드넓은 불법이요, 망정으로 덮인 사람은 세상이 어둠입니다.
새해의 불법은 바른 눈을 뜨는 일이 아니고는 어떤 것도 없다는 자세로 정진합니다. 바른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의 문을 열어 젖혀 세계가 있는 그대로 상적광토(常寂光土)임을 확인합시다.
해인사주지 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