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나, 아직 한 줄이야”라며 침울한 표정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여자 주인공, 그리고 그 장면에서 깔리는 슬픈 배경음악. “나, 두 줄이야!”라며 밝은 표정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여자 주인공, 그리고 그 장면에서 깔리는 밝고 감격스러운 배경음악.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비슷한 장면, 다른 배경음악이다. 한두 줄의 차이일 뿐인데 상징하는 바가 다르다. 임신을 기다리는 수많은 여성이 공감하는 이 한 줄과 두 줄이라는 것은 임신 테스트기에서 나타나는 표지선이다. 두 줄이 나타나면 임신이지만 한 줄일 경우는 임신이 아니다.
결혼하고 나니 선배 유부녀들이 앞다투어 이 집 아기엄마 저 집 아기엄마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그 집 아기엄마는 아이를 기다린 지 2년 만에 임신이 되었다더라”, “저 집 아기엄마는 5년 동안 임신이 안 되어 인공수정을 했다더라”, “옆집 아기엄마는 시험관 아기시술을 해봤다더라”, “윗집은 아직도 아이를 기다리는 중이라더라”라는 수많은 이야기. 그 속에서 알게 된 사실은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 누구나 ‘임신 확인’역에 가볼 수는 있지만 누구나 다 기차에 올라타는 것은 아니다.
“여보, 우리 나이가 많아서 아이가 못 오면 어쩌죠? 과거에 내가 잘못했던 일들 때문에 아이가 안 오면 어쩌죠?”라며 나의 불안함을 남편에게 던지며 답을 구한다. 별 대답 없이 하루 마감 기도를 마친 남편이 말한다. “아이는… 우리가 몸과 마음자리를 잘 준비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올 거야”라며 들뜨고 불안한 나를 살포시 가라앉혔다. 그렇게 ‘기다림’과
‘기다림의 다스림’을 일상 곳곳에 절절히 심어가며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썅윳따니까야》의 〈보장가쌍윳따〉에 ① 감각적 욕망 ② 성냄 ③ 혼침과 졸음 ④ 들뜸과 걱정 ⑤ 의심은 수행과 우리 일상에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정신적 요인이라고 말한다. 이 가운데 ‘들뜸과 걱정(uddhacca-kukkucca)’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아이를 기다리는 이 과정에서 밝고 느긋해야 할 마음이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채워진다면 일상뿐만이 아니라 수행(참회와 삼업 관리)까지 무르익지 못한다. 고운 아이 인연이 깃들게 하기 위해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밝지만 들뜨지 않게, 느긋하지만 수행만은 붙들어서 인연이 무르익기를 희망해야 한다.
태몽
“일어나봐, 응? 일어나봐~”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가면서 잠에서 빠져나오니 남편이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나를 깨우고 있었다. 내 눈까지 말똥말똥해지는 걸 확인한 남편은 이내 “희한한 꿈을 꿨어!”라며 눈을 맞춘다. 평소 꿈 이야기 한 번 안 하던 사람이 나를 깨워서 생생하게 그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내용이 뭔가 묘하고 희한했다. 각자 잠시 생각에 잠겨 침묵하다 동시에 서로를 보면서 말했다. “태몽이다, 태몽!” 임신을 확인해보기도 전에 태몽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는데 태몽풀이의 첫 번째 항목에 남편 꿈 내용이 담겨 있다! “태몽 맞네! 아마 성별은… 아들? 아들!” 그렇게 김칫국부터 벌컥벌컥 마시며 그날 당장 임신 테스트기를 사기로 하고 하루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나는 태몽을 믿는가’, ‘태몽의 예지력과 암시에 근거가 있는가’, ‘태몽 풀이에서 나타나는 재능이나 성격 등은 한 인간이 한 생을 철저하게 살아보고 나서만이 그 근거가 생기지 않겠는가’, 이런 잡념들로 하루를 보내다가 퍼뜩 사찰 벽화에서 자주 본 것이 떠올랐다. ‘아,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도솔래의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八相圖)의 첫 번째 그림으로, 전생의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흰 코끼리를 타고 이 세상에
내려와 마야 왕비에게 수태되는 장면을 주로 묘사한 것이다. 팔상도의 기본이 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의 내용을 살짝 뽑아봤다.
“보살은 생각을 바로 하고 도솔천에서 내려와 정반왕의 첫째 왕비인 마야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 머물렀다. 그때 왕비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에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를 보았다. 그 코끼리는 머리가 붉은빛이었고 여섯 개의 다리와 코로 선 채, 금으로 상아를 단장하고 허공을 날아 내려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왔다.”
“마야 왕비도 태몽을 꿨었지!” 나도 남편도 아닌, 온전한 새 생명을 우리 삶으로 들이는 이 귀하고 신비한 이벤트에서 수많은 정신적·신체적 변화를 겪게 되는데, 꿈이라고 평범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래, 태몽 자체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 어떠한 꿈 풀이도 새 생명이 이 세상에 나와서 살아나갈 그 삶을 온전히 풀어낼 수 없는 법. 그렇다면 태몽은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불자라면 태몽으로 ‘아들이다’ ‘딸이다’, ‘길하다’ ‘불길하다’라는 소위 대박 여부를 살피지 말고, 수행의 차원으로 돌려보자. ① 우선, 아이가 와준 것 자체에 감사하자. ② 길한 태몽이라면 그 귀한 아이의 재능과 자질을 담아낼 수 있는 부모가 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③ 불길한 태몽이라면 ‘참회하기’와 ‘삼업 관리’를 통해 아이를 더 현명하고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부모의 자질을 계발해야 할 것이다. 태몽으로, 어떤 아이가 우리에게 오는지에 대한 것보다 내가 어떤 부모가 되어줄 것인가에 초점을 두자.
《디가니까야》의 〈씽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에 자녀에 대한 부모의 도리를 다섯 가지 말하고 있다. ① 악한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② 선한 것을 확립하게 하고 ③ 기술을 배우게 하고 ④ 어울리는 배우자와 맺어주고 ⑤ 적당한 때에 유산을 물려준다. 이 항목 하나하나를 제대로 자녀에게 해주려면 부모부터가 먼저 이를 견지해야 한다. 악과 선을 구분하여 악을 멀리하고 선을 실천하고 있어야 한다. 불자라면 그 어떠한 상황도 수행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하겠다. 태몽에 집착한 수행이 아니라, 태몽조차 수행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임신 확인
그날 저녁, 식탁에 앉아 종이를 펼쳤다. 논문자료 볼 때보다 더 정독했던 그 한 장짜리 종이는 약국에서 사온 임신 테스트기의 사용설명서였다. 아침에 검사할 것을 권장하고 있고
표지선의 한 줄과 두 줄로 임신 여부를 알 수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가 새벽에 단숨에 일어나 보물단지 모셔놓듯 챙겨놓은 테스트기를 가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남편에게 달려갔다!
“일어나봐, 응? 일어나봐! 나, 두 줄이야!” 그렇게 시작된 하루, 그리고 그 하루를 채웠던 기쁨, 막연함, 설렘, 불안함, 감사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 예상했던 대로 기쁨, 설렘, 감사함은 온전히 누렸지만, 막연함과 불안함이라는 불청객도 있었다. ‘내가 부모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막연한 느낌과 ‘열 달을 온전히 채울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 그 모든 감정을 온전히 안고 그날 오후, 산부인과에서 임신 확인 진단을 받게 되었다.
생명이 주는 신비로운 힘으로 기쁨과 설렘은 다스리고 막연함과 불안함은 달래며, 이제 우리 앞에 도착한 기차에 오른다. 수많은 역을 거쳐 무사히 종착역에 이르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