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부터 총무원의 총무국장 소임을 보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 교회에 다녔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매주 한 번 봉은사에 가라고 하셔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윤리 시간에 세계의 종교에 대해서 배우는데, 선생님께서 종교가 불교인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는데 저 혼자인 거예요.”
선생님께서 반야심경을 외워보라 했다. 늘 법당에 들어가기 싫어서 마당에서 배회하며 밖에서 들었던 반야심경이 무의식적으로 외워졌던지 술술 나왔다. 그날 생각했다. 사람은 정체성에 대한 확인을 요구받을 때가 있구나, 이름과 나이와 직업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정체성도 확립되어야 하는 것이구나. 그렇게 해서 스님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고3 때부터 봉은사에서 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방도 아닌 사무실 좁은 귀퉁이에서 살았지만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대학에 들어가자 종두(鐘頭) 소임을 주셨는데 새벽예불 저녁예불 알리는 대종 치는 일을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어요. 그게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그땐 스님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그저 절에 사는 게 좋았다. 그렇게 봉은사에서 6년을 살며 대학원을 마치고 군대에 갈 때가 되자 지금의 은사 스님께서 군승을 권하셨다.
그날 머리 깎고 스님이 됐다.
4년간 군승을 하며 많은 것을 겪었다. 배속된 부대의 불교적 지도자이니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일주일에 법회를 열 번은 했는데, 같은 법문을 똑같이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늘 다른 법문을 했다. 4년간 그렇게 법회를 하고 주지 역할도 익혔으니 군승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는 그것이 큰 자산이 되었다. 그런 인연으로 현재 포교와 전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단다.
“큰 절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 은사 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대중생활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맡은 바 소임을 잘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포교와 전법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그때부터 서울 창동의 정혜사라는 포교당을 맡아 지금까지 포교에 힘쓰고 있다. 그러면서 남전 스님은 경국사에서 지관 스님을 모시고 살기도 하고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을 모시고 살기도 하고 용주사에서 포교국장과 기획국장 소임을 살기도 했다.
“절집에 살면서 좋아하는 말이 ‘인연’이에요. 저는 ‘인연’이란 말을 ‘자연스럽다’라고 해석해요. 수연무작(隨緣無作), 인연에 따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지요.
내 능력대로 내 처한 환경과 위치대로 제 역할을 하면서. 스님이 되어서 큰 전법을 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가졌던 게 아니라 모든 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남전 스님은 현재 불교방송국 BTN에서 ‘즉문즉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시청자들의 질문을 받고 그것에 답을 하는 것인데 그렇게 대중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이번만은 아니다. 불교신문에 불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칼럼을 2년간 연재하기도 했고 불교방송국 BBS에서 ‘무명을 밝히고’라는 프로그램을 5년간 진행하며 청취자들의 질문에 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혜로운 삶을 위한 올바른 신행생활 50》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거창한 질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평범한 질문들을 해요.
그런 질문을 받다 보면 불교가 삶에 대한 해법을 덜 제시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불교가 시대에 맞춰 호흡하고 대중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 더 앞서나가고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요.”
법회의 환경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사스님의 일방적인 법회가 아닌, 각자의 문제를 꺼내놓고 그것을 교정 받아 실천할 수 있는 법회.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할 수 있게 해주는 법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스님은 오늘도 글을 쓰고 방송을 한다. 현대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스님들이나 사찰이 현대인들의 쉼터나 의지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마리를 던져주는 거예요. 해결은 본인들이 해야지요.
실타래가 엉켜서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땐 아예 싹둑 잘라놓고 생각하게 해요. 자신부터 바꿔놓고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죠.”
남전 스님은 누군가가 궁금해하는 것을 답해주는 게 좋기만 하다. 공부해서 힘이 생기면 더 많은 이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싶단다. 그러면서 스님도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 같단다. 그래서 오히려 질문자들이 스님의 선생님이란다.
남전 스님은 스님들께도 많은 강의를 한다. 현장에서 살아가며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포교를 함에 있어 구체적인 체계를 갖추는 것에 대해서.
“우리 스님들이 행정적인 마인드가 약해요. 그러니 스님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매뉴얼 정도는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국가 법령 중에서 불교와 관련된 법령에 대한 현실적인 강의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 스님들이 사찰에 살면서 국가의 법령 때문에 힘든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법이 적용되고 변화하며, 어떻게 법령을 고칠 수 있고 그것이 고쳐졌을 때 불교와 종단을 넘어서 우리 불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또 포교와 전법이란 관점에서는 사찰의 행정적 책임을 지는 주지스님들이 리더의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중이나 농어촌에 있는 사찰의 경우 현재 존립이 불가능한 절이 많다. 남전 스님은 그곳의 스님들에게 1년 동안의 행사 기획을 제시한다. 도심지에 있는 후원 신도들을 육성하고 그 지역의 거주자들에겐 노동을 제공 받고 그것을 다시 회향한다면 충분히 존립 기반이 생긴다고 본다.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불교 신자들은 재적 사찰이 많지 않아요. 어딜 가든 절이 보이면 들어가서 절하고 보시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 아무리 지방의 산중에 있어도, 행사 기획을 잘하면 도심에 사는 신도들의 발길이 닿을 수 있습니다.”
남전 스님은 총무원의 시스템이 원활하게 움직인다면 각 사찰에 많은 도움이 되고 그럼으로써 종단이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스님이 총무원 시스템에 맞추는 것을 여전히 어려워하는 게 현실이다.
“총무원에 사는 스님들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총무원 직원들은 원칙적인 입장을 갖고 있고, 현장에 계신 스님들은 현실에 맞게 실전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 이 행정 기구에 들어와 있는 스님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남전 스님은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일대기를 꼭 읽고 마음에 새기라고 당부한다. 시대는 달라도 그 행간에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비교해보라고 한다. 부처님처럼 살 수는 없어도, 금생에 부처님의 모습 중 무엇 하나만 좇아도 좋지 않겠나 하신다. 남전 스님에게 있어서도 부처님의 생애는 그때그때 지표가 되어주었단다. 그런 스님께 여쭙는다. 그래서 스님은 행복하십니까?
“내게 ‘행복’이란 말은 왠지 완성의 의미로 들려요. ‘행복’을 목표로 가고 있습니다. 그게 ‘행복’해지는 길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