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사랑이 필요한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남의 입장은 눈곱만치도 생각지 않고 저마다 자기 입장만 내세웁니다. 그러니 정치도 사회도 종교도 가정도 모두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이 모두가 사랑이 부족한 탓입니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배려와 존중, 존경심이나 포용, 관용, 애정 등과 같은 방식으로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기술은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을 더욱 세련되고 고상하게 다듬어줍니다. 또한 사랑은 신앙심을 쌓아가는 것과도 같이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것에 대한 세심한 사랑을 습관화하고, 이를 차곡차곡 마음의 창고에 쌓아둘 때 완숙해지는 것입니다.산골교회로 부임한 초기에 마을마다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던 중 파킨슨병으로 오랫동안 투병 중인 할머니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십수 년의 투병 기간 동안 현대의학, 민간요법, 어떤 도인(?)으로부터 기치료를 받느라 지칠 대로 지쳐버린 노쇠한 할머니였습니다. 저는 그분을 보자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미 몸은 나무토막처럼 굳어져 혼자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초여름 외양간에서 날아든 파리가 할머니 입 주변에 시커멓게 붙어 입가에 묻은 두유를 빨고 있어도, 자신의 손을 들어 파리를 쫓을 힘조차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동네 위 밭에서 일하다가 할머니의 점심을 챙기러 오신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이고 새로 오셨다는 목사님 아닌교? 반갑습니더. 우리 할마이는 이제 안 되는 기라요.
내가 저 할마이 살려볼라꼬 별짓을 다 했습니더. 이제는 죽는 날만 기다리는 기라요.”
자식들에게 치료비 달라는 이야기도 못 한다며, 할아버지의 두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을 분들이 모두 농사일에 바쁜 시기라 어느 누구 하나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도 빠듯한 농사일로 새벽에 아침밥 챙겨 할머니랑 드시고 점심 전 새참을 먹기 위해 일손을 멈추고 잠시 내려와 빨대 꽂은 두유 한 개를 할머니 두 손으로 받쳐 드시도록 하고는 다시 밭으로 갔답니다. 그리고 점심때 내려와 밥 챙겨서 함께 식사하고, 저녁에 해 질 무렵에 다시 와서 할머니와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들고… 이렇게 수발하는 10여 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 가슴은 먹먹해졌습니다.
이제 죽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당장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 치료할 돈도 없고, 파킨슨병이라는 병명조차 처음 접한 터라 의학적 지식도 없고, 도대체 내가 이 할머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만 하나 고민을 무겁게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동안 파킨슨 질병과 관련된 자료를 찾고 임상 사례를 찾아 공부하던 중 할머니에게 지금 필요한 약은, 의사가 처방한 약이 아니라 스스로를 살리는,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을 포기해버린 자아를 세우고 죽을 때 죽더라도 나를 알고 나의 나 됨을 회복하는, 마을 공동체의 일원임을, 한 가정의 어머니임을, 한 남편의 아내임을 온전히 세우는 자아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매일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특별히 종교적 행위를 하기보다, 할머니와 긴 시간 동안 그간 살아온 칠십 평생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함께 울고 웃고,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서 할머니 가슴에 묻어둔 상처들을 만났습니다. 할머니를 위로하고 또 위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인 양 죄의식으로 가득 차 자신을 짓누르고 살아오신 삶에서 해방되어가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러기를 3개월이 지날 즈음 저녁에 다급한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전화를 주셨습니다.
“목사님요, 우리 할마이가 일어났어요. 걸어서 변소로 갔는 기라요. 기적이 일어난 기라요.”
저는 마을로 한걸음에 달려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할머니가 마당 한가운데에 힘겹게 서 계신 게 보였습니다.
“할머니, 우째 일어났어요?” 하고 물으니,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변소 갈라꼬 일어나보려고 다리에 힘을 주는데 허리와 다리가 누가 받쳐주듯 가벼워지며 일어나지더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했던지요. 그 후로 마을에 새로 온 목사가 불치병을 고치는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습니다. 아닙니다.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할머니의 마음에 모신 사랑이 스스로를 치료하는 힘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그 사랑이 할머니 마음속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 그 사랑을 알도록 도와주고, 그 사랑의 힘은 스스로가 세워가는 것임을 나누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만든 기적이 아니라 사랑의 힘이 만든 기적입니다.
지난 석 달 동안 할머니와 함께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당시에 일곱 살, 네 살 먹은 제 두
아들이 할머니를 위해 매일같이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불러드린 노래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를 처음 듣고 눈물을 흘리던 할머니 모습이 생각납니다. 이 노래를 담은 테이프를 작은 카세트에 넣고 들으며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할머니 혼자서도 불렀습니다. 그러시던 할머니는 여든넷의 연세에 걸어서 주일예배를 드리러 교회 오셨다가 집에서 저녁을 맛나게 드시고, 다음 날 새벽 기도를 하지 않아 깨우던 할아버지 품에서 평안히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사랑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사랑은 종교를 떠나 하나입니다. 그냥 사랑입니다. 저는 사랑을 삶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제 사명이라 여기고 살아갑니다.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환경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잘 관찰하여 살펴주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다른 사람을 잘 대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잘 보살펴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관심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傾聽)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경청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주의 깊게 잘 들어서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경청의 바른 자세는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또한 상대의 말에 반응해주고 상대의 말을 요약하며 듣는 것을 올바른 경청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청한다는 것은 말하고 있는 상대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또 상대방의 기분을 이해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긍정적인 태도로 공손하게 그리고 상냥한 태도로 표현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평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는 태도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기쁜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심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고, 무조건 베풀며, 맨발로 뛰는 기쁨의 태도에서부터 사랑은 시작됩니다. 이 사랑을 기쁘게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저 사람을 위하여 이렇게 해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생각한 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진정한 지도자가 되어 성공적인 삶을 누리게 됩니다.
불가의 경전 중에서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만났습니다. 재물이 없어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곱 가지 방법이었습니다. 첫째, 자안시(慈眼施), 부드럽고 자비로운 눈빛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화안시(和顔施),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언사시(言辭施), 아름답고 공손한 말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넷째, 사신시(拾身施), 몸소 행동으로 사람들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째, 심려시(心慮施),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섯째, 상좌시(床座施),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곱째, 방사시(房舍施), 방을 깨끗하게 준비해서 손님에게 내주는 것을 말합니다.
참으로 공감이 가고 은혜가 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세상과 이웃을 위하여 맑고 밝고 훈훈하게 사랑이 꽃피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도 훌륭한 공덕이 아닌지요!
사랑합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