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부유만덕富有萬德 탕무섬진蕩無纖塵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소림원 - 수월 권상호 2016년 03월 409호
《화엄경(華嚴經)》 왕복서(往復序)에 나오는 법문이다. 왕복서는 당나라 때 오대산 스님이 기록한 《화엄경》의 서문이라 할 수 있다. 《화엄경》의 정식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
華嚴經)’으로 ‘부처님의 세계는 넓고 크고 끝이 없어서 모든 중생과 사물을 포함할 수 있으며, 이는 마치 고상한 향기가 나는 꽃으로 장식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부유만덕 탕무섬진(富有萬德 蕩無纖塵)’은 세존(世尊)께서 정각(正覺)을 이룬 뒤에 하신 말씀으로 ‘부유함은 만덕을 가졌고, 텅 비어 없음은 먼지 하나 없느니라’라는 뜻이다.

부유만덕(富有萬德)에서 흔히 부(富)라 하면 ‘재물(財物)이 많고 넉넉함’을 생각하겠지만 여기서는 덕(德)이 많음을 부자라고 했다. 곧 많은 덕을 쌓아 그 열매가 장엄(莊嚴)하게 맺힘을 뜻한다. 이는 《화엄경》의 의미와도 직결된다. 수행(修行)의 결과는 덕과(德果)로 나타난다. ‘열매 과(果)’는 꽃의 희생에서 오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탕무섬진(蕩無纖塵)에서 탕(蕩) 자는 가산탕진(家産蕩盡), 도적소탕(盜賊掃蕩)이라고 할 때의 탕(蕩)으로, 모조리 휩쓸어 없애버려 휑하니 넓은 상태를 뜻한다. ‘광대(廣大)’ 또는 ‘태탕(.蕩)’의 의미로, 여기에는 가는 티끌, 곧 섬진(纖塵)조차 이를 수 없다. 적멸위락(寂滅爲樂)의 경계에서 노니는 자부심이라고나 할까.

욕심 많게 두 손으로 잡아보았자 두 개밖에 되지 않고, 놓으면 우주가 나의 것이 된다. 집지양개 방즉우주(執之兩個 放卽宇宙)로다. 부유만덕은 밖에 내놓아도 아무도 훔쳐갈 수 없고, 탕무섬진은 마음속에 넣어도 넓고 깨끗하다. 덕은 많이 질수록 가볍고, 죄는 아무리 적게 져도 무거울 뿐인 것을….

지인 몇이서 병신년 설날 저녁, 해인사 북카페 ‘다로경권(茶爐經卷)’에서 소리 공양을 마치고, 이튿날 고개 넘어 청암사 학장스님께 세배를 올리러 갔는데, 스님의 자리 우편에 ‘부유만덕(富有萬德)’ 현판이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