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해가 시작됐습니다. 빠르게 달려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이지요. 칼바람 부는 한겨울 건너가는 당신에게 사람 사는 세상의 온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시대에 열정으로 사는 그들을 만나고, 따뜻함을 나누는 당신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그 여운을 이곳에 풀어놓으려 합니다. 치과의사 강정일 박사(강플란트 원장)는 인터뷰 요청을 하는 내게 “제가 왜요?” 하며 완곡하게 사양했다. 하지만 나는 못 들은 척 꼭 만나야겠다고 고집했다. “직업이란 본질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남에게 필요한 일이어야 한다. 그래야 남이 내 직업에 돈을 지불하고 나는 그 돈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라는 말에 무릎을 치던 참에 그이를 봐야겠다고 채근한 것이다. 조금 수줍고 겸손하며 꽤 와일드한 이 남자, 치과 보철 전문의 강정일 박사를 만났다.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많은 직업이 사라지겠지만 수행자, 정신과, 치과의사는 끝까지 살아남을 거라 예상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하하, 그런 세상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까요? 치과의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라니 나쁘지는 않은데, 사라지고 존재하고의 여부를 떠나 좋은 치과의사여야 한다는 것이 평소 제 생각인데요. 치과의사는 외과의입니다. 수술을 비롯한 실제 치료를 잘해야 하는 거죠. 의술이라 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의사는 의료 기술자라는 말이지요. 쉬지 않고 새로운 테크닉을 섭수하고 기본에 충실한 진료를 완벽하게 실행하도록 자신을 경책해야 합니다.
의사가 스스로를 의료 기술자라고 말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하지만 폄하라고 항의가 있을 법한 이 표현이 새삼스럽게 신선하다. 그런데 치과의사들은 자신의 치아를 어떻게 관리할까.
원장님의 치아관리법~ 비결이 있나요?
입 안에 28명의 속 썩이는 자식이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비법은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이 최선이고요. 조금만 이상 있으면 치과를 찾는 것이 차선입니다. 치과의사들도 병원 가는 거 좋아하지 않아요. 좀 웃기지만 우리 치대 동기들은 가끔 모이면 다들 입 벌리고 서로 체크를 합니다.
개업의, 동국대 경주병원 치과 과장, 다시 경주에서 개업… 이런 일련의 과정이 원장님의 인생 계획에 있었던 건가요?
제겐 없었고 아마도 부처님의 계획에 있었을 겁니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전통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경주가 최고로 동경하는 도시였습니다. 3년 전 동국대병원 치과 상황은 전망이 어두웠고 주변에서 말렸지만 조금의 망설임 없이 선택했는데 부처님께서 이끄시는 법음이 들리는 듯했지요.
치과의사로선 보기 드물게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 자격증을 갖고 계십니다. 불교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였는지요?
조부께서 경남 합천 삼가면 인근 사찰의 법당 불사 화주를 도맡아 하셨다고 들었으니 불교집안이었죠. 젊은 시절 현각 스님의 책을 인연으로 불교 공부를 시작했으나 뭔가 미진하여 불교대학에서 교리를 배우던 중 포교사 욕심을 냈습니다. 취미로 색소폰을 연주하는데 음악을 통한 포교는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초파일 제등행렬 때 대형 트레일러에 무대를 만들고 그룹사운드가 찬불가와 대중가요를 연주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불교가 구식이라는 편견이 무너지더군요. 젊은이들에게 신세대식 포교로 다가설 수 있었다고 봐요.
평소 좋아하는 경전이나 새기는 가르침이 있는지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을 최고의 경전으로 여기고 늘 곁에 두고 읽습니다. 한때 과욕으로 《금강경 오가해(金剛經五家解)》를 배운다고 공부 높으신 스님을 저의 병원에 초빙하여도 봤지만 초심 때 배운 자경문이 저에겐 최고입니다.
의사 가운을 입고 진료실에 앉은 한 사람, 그리고 록 밴드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또 한 사람, 경전을 늘 곁에 두고 있는 모습이 겹쳐질 듯하면서도 겹쳐지지 않는다. 섬세한 주름 사이에 낀 시간의 흔적과 함께 건너온 한 시절을 이야기하는 그이에게서 뜨거움이 느껴진다. 세상 남자들은 자신만의 베이스캠프, 삶의 충전소가 되는 어떤 곳이 필요하다는 데 그는 어떨까? 일이 싫어질 때 찾아가는 그이의 망명처가 있을 법하다. 가끔 삶에도 해독제가 필요하듯이.
하고 있는 일이 싫증날 때가 가끔 있지요?
안 그런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그저 몸이 원하는 만큼 늘어져서 놀아봅니다. 해보니 3일을 못 견디겠던데요. 한약재 품질관리사 2급을 취득한 후로는 틈만 나면 온 바람 맞으며 약초 캐러 산에 오릅니다. 산이 저의 에너지이자 베이스캠프입니다.
휴대폰 메인 화면에 똑 닮은 아들 사진을 띄워놓으셨더군요. 그 아들이 한의대에서 공부하고 있다지요? 치대 진학을 권유했을 법한데 의외였어요.
저는 어릴 적 꿈이 천문학자였는데 부모님의 권유로 치대에 갔어요. 지금 불만은 없습니다만 아들에게는 한의대 진학을 권했습니다. 만족하며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참 고맙지요. 사실 저는 지금 이 순간을 항상 즐기며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지난 시간에서도 꼽으라 하면 아들이 한의대를 선택했을 때와 육군 현역으로 군대에서 안 죽고 제대했을 때 가장 행복했습니다.
부모는 어떤 행동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한다 했던가? 공부걱정 안 시키던 아들의 진로를 깊이 고민했을 강 원장의 아버지, 그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쌓이면 그것이 한 사람을 대변하는 모습을 만들 것이라는 심정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그이, 아버지의 성실함을 보고 자란 아들이 또 다른 길을 만들어가는 3대. 그 중심에 서 있는 강정일 원장의 이야기가 새해 벽두에 훈훈하다.
유쾌한 그이와의 만남을 마무리하며 나는 그에게서 《해인》지 평생 구독을 약속 받았습니다. 경주역 앞 강플란트 치과에서 《해인》지는 매달 새로운 독자를 만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