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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열 달간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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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일여(生死一如) – 생(生) - 김서리 2016년 01월 407호
이른 새벽,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경주에서 김해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내 생애
첫 조카다! 설렘으로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 입원실 문을 여니 마취에서 덜 깬 언니가 웃으며 반긴다. 제왕절개를 했나 보다. 출산을 앞둔 태아의 머리는 보통 산모의 배 속에서 아래쪽으로 향하는 것이 정상인데 내 조카는 머리가 위쪽으로 향하고 엉덩이가 밑으로 향하는 ‘둔위(역아)’ 자세라서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했다고 한다. 수술 후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초췌해진 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얼굴도 못 본 조카가 좋지만은 않았다. 이틀이 꼬박지나 겨우 걸음을 걷는 언니를 데리고 신생아실에 가보았다.
그런데 언니가 아주 환하게 웃는다. 자기 아이를 바라보며 너무나 환하게 웃는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조카의 출산이 언니의 고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언니가 환한 미소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품고 지켜내야 했던 것이었나 보다. 그것이 ‘생명’이란 것인가? 출산은 고통의 범주일까, 행복의 범주일까… 미혼이었던 내게 그건 미스터리였다. 4년 전, 조카가 태어나던 날의 장면들과 생각의 단상이다.
초기경전 《쌍윳따 니까야(Sa.yutta Nik.ya)》에 여인들만 겪는 특수한 고통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들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남자들과는 달리 여인에게는 여인이 겪어야 하는 여인에게만 특수한 다섯 가지 고통이 있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여인들은 나이가 어릴 때에 시집가서 친족과 떨어져 지낸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남자들과는 달리 여인이 겪어야 하는 여인에게만 특수한 첫 번째 고통이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여인들은 월경을 한다. (…) 세상에
여인들은 임신을 한다. (…) 세상에 여인들은 분만을 한다. (…) 세상에 여인들은 남자에게 봉사한다. (…)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남자들과는 달리 여인이 겪어야 하는 여인에게만 주어진 특수한 다섯 가지 고통이다.”
- 〈특수한 고통의 경〉(S37.3), 《쌍윳따 니까야》, 전재성 옮김

다시 정리하자면, 여인들만 겪는 특수한 고통은 ①나이가 어릴 때에 시집가서 친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 ②월경, ③임신, ④분만, ⑤남자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통’이라고 표현되었는지 궁금해서 빠알리어 원전을 찾아보았다. 이 경은 《쌍윳따 니까야》의 〈m.tug.ma sa.yutta(여인 쌍윳따)〉의 세 번째 경 〈.ve.ikadukkhasutta(특수한 고통의 경)〉에서 발췌한 것이다. 빠알리어 .ve.ika는 ‘특수한’, ‘특별한’이란 뜻이고 dukkha는 고(苦), 즉 ‘고통’, ‘괴로움’으로 보통 번역된다. 이 다섯 가지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고통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각자 다르겠고 또 첫 번째와 다섯 번째 항목은 현시대의 흐름상 꼭 여성만이 ‘해야만 하는 것’도, 꼭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월경, 임신, 분만은 육체적으로 오롯이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향상된 여성 편의시설이나 여성의 권리 신장이라는 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월경, 임신, 분만은 온전히 여성이 겪어내야 하는 것이다. 생명을 품고 지켜낸다는 점에서 임신과 출산이 숭고하고 고결한 것이지만, 그 생명을 품고 있는 여인의 입장에서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결코 편안하고 쉬운 것이 아니다.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인 오근(五根), 이 똑같은 오근으로 외부 대상을 접하고 느끼는데도 임신 전과는 사뭇,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신세계가 펼쳐진다. 나 아닌 생명체와의 동거 또는 공존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가 만나서 수태가 이루어진다. 여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합하더라도
어머니가 월경이 없고, 간답바가 있지 않으면, 수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합하고 어머니가 월경이 있더라도 간답바가 있지 않으면 수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합하고 어머니가 월경이 있고 간답바가 있어서, 이와 같이 세 가지가 만날 때 수태가 이루어진다.”
- 〈갈애의 멸진의 긴 경〉(M38.26), 《맛지마 니까야》, 대림 스님 옮김

임신의 세 가지 조건으로 경전에서는 ①남녀의 교합과 ②어머니의 임신 주기, 그리고 ③간답바를 들고 있다. 불자가 아니라면 조금은 생소할지도 모르는 세 번째 조건인 간답바(gandhabba), 즉 식(識)은 정신적인 존재현상으로 중음신(中陰身)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형성된 수정란에 이 식이 깃들게 되면서 임신이 시작된다.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졌을 때 새로운 생명이 한 여인의 몸에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인은 어머니로서 생명을 품고 열 달간의 여행을 하게 된다. 아이를 만나러 가는 여행에서 거치게 되는 역(驛)들은 입덧, 피부 변화, 배 뭉침, 두통, 졸음, 몸무게 변화, 태동, 불면증, 불안감, 심리적 변화 등 가히 즐겁고 유쾌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생명을 품고 있는 여인은 임신이라는 열 달간의 여정을 통해 종착역인 ‘출산’ 역까지 가는 동안 이 역들을 온전히 지나가야 한다. 때때로 당황스럽고 불편하고 불안하기도 한 그 역들을 통과하면서 우리 불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래서 올 2016년에 월간 《해인》을 통해 그 열 달간의 여정 에세이를 부처님의 말씀과 함께
담아보고자 한다. 어머니가 열 달간 겪는 여러 신체적·심리적 변화, 그 변화에 대처하는 것도
수행의 일면이기 때문이다. 어떤 누구도 이 삶의, 이 생명의 ‘시작’이 없었던 이는 없다. 그 시작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었던 이도 없다. 이세상에 나오게 된 우리는 어머니가 열 달간 고이고이 품어서 나온 귀한 생명들이다. 곧 펼쳐 보일 열 달간의 여정 속에 세상의 모든 생명과 그 생명을 품었던, 품은, 품을 이들의 평안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