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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를 소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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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승환 2016년 01월 407호
“오빠! 아빠 돌아가셨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여동생의 울먹임. 현실 같지도 꿈같지도 않았다. 그냥 멍~ 했다. 심장마비 급사라는 말도 차로 한 시간 거리라는 영안실의 위치도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렸다. 아들은 30여 분 동안 굼벵이처럼 미적거리기만 했다. 아버지란 사람이 아들에게 단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고 갔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켜켜이 쌓인 부채만큼 눈물도 많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꽤나 다양한 모습으로 아들 앞에 존재했다. 코흘리개 어릴 때는 시선조차 마주치기 힘든 황제로, 거뭇거뭇 털이 날 사춘기 땐 타도의 대상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힘겨워할 땐 말 한마디 섞지 않는 타인으로 서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둘은 바라보는 곳이 너무 달랐으니까. 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예술가였다. 흑백TV에 ‘황금박쥐’ 만화가 방영될 때, 아들의 장르 불명 선긋기는 만화라는 영역으로 좁혀졌다. 캐릭터는 모조리 그렸다. 이야기도 만들어냈다. 아들은 감독이고 작가고 주인공이고 악당이었다.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거 돈 안 된다!” 코흘리개 아들의 그림을 본 아버지의 첫 반응이다. 북북 찢어 쓰레기통에 버릴 만큼 하찮다는 것. 아들의 눈은 뒤집어졌다. 수십 년에 걸친 아이와 아버지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들은 마치 도둑 공부하는 노비처럼 아버지의 눈을 피해 끝없이 그림을 그렸다.
결국 사달이 났다. 이런 짓 하라고 공책을 사줬냐는 아버지의 꾸지람에 아이는 자기 돈으로 산 거라고 받아쳤다. 아버지의 눈이 뒤집혔다. 일곱 살 난 게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그날 아들은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이후 아버지는 틈만 나면, 세상이 얼마나 비정한지, 밥 벌어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훈육했지만 아이에겐 모두 한 소리로 들렸다. 바로 돈 안 되는 짓 하지 말라는 것! 아이는 진저리쳤다. 물론 혼자 집안을 꾸린 소년가장이 바로 아버지였다는 소릴 들었을 때 아들은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는 객관적 인지일 뿐 감정을 앞서지 못한다. 아버지가 너무 미웠다. 미움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꼴같잖은 논리로 무장됐다. “지금은 보릿고개 시절이 아니지. 좀 있으면 엔터테인먼트가 대세일 거다! 그때 만화는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거야.”
아들의 모든 논리는 만화가를 향한 집념으로 귀결됐다. 그래서 틈만 나면 중얼거렸다. 아버지에게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보여줄 거라고, 자신의 선택이 올발랐음을 증명할 거라고. 아들이 아버지의 그 엄청난 압박에도 굴하지 않은 이유다. 그리고 아버지가 보든 말든 그림만 그려댔다. 그때 아이 나이는 열여덟 살. “졸업하면 ○○○ 씨 문하생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몇 달 동안 준비했던 많은 대비책을 단 하나도 꺼내지 못했다. 아들이 대학에 가기만 하면 뭘 하든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며 아버지는 울며 애원했던 것이다. 무너지는 황제의 모습에 아들은 다섯 살 때부터 쌓아온 꿈을 꺾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원하는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가 더듬이 잘린 곤충처럼 배회하며 7년을 보냈다. 아버지는 예전의 황제로 복귀했다. 시시로 아들에게 세상의 냉혹함을 설교했고 권력의 단맛을 보여주려 했다. 그리고 단언했다. “니 인생 걱정 마. 내가 책임진다!” 아버지는 보란 듯 번듯한 대기업에 없는 자리를 만들어 아들을 낙하산으로 박아 넣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된 아들의 지옥은 그렇게 졸업 후에도 계속됐다.
아들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창작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창작과 연관된 뭔가를 찾아야 했다. 아버지가 기절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아들과 영화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들 머릿속엔 오로지 예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만 가득했다. 아버지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은 이미 아버지의 손 밖에 난 28세의 청년이었으니까. 아들이 떠나는 날 아버지는 술에 푹 절어 다가왔다. “너는 꼬맹이 때부터 돈 안 되는 짓만 골라서 했지. 그런데 이 나이 돼도 어찌 변하는 게 하나도 없냐? 니가 뭔 허황된 뜬구름을 잡으려는 것 같다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게다.” 그러고 아들의 셔츠 주머니에 뭔가를 쑤셔 넣고는 방으로 허청허청 들어갔다. 서울로 가는 심야 고속버스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을 꺼냈다. 꼬깃꼬깃 구겨진, 간장과 고춧가루가 범벅이 된 돈 3만 원이었다. 아들은 고속버스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아들이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첫 영화가 극장에 걸렸을 때도 아버지는 무관심했다. 아들이 유일하게 아버지의 웃음을 본 건 손자를 안겨줬을 때다. 아들은 고정수입 없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았다. 영화 제작을 한다고 아버지가 사준 집까지 날렸고, 후레자식이나 하는 짓이라던 이혼까지 했다. 아버지는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시선이 힘들 때마다 아들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보란 듯 잘 사는 모습 보여주겠다고 수백 번 다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하루하루 쪼그라들었다. 심장 혈관이 막혀 스프링을 세 개나 박았고 10여 가지 약으로 연명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은데, 이대로
아버지가 떠나버린다면… 아들은 그게 가장 두려웠다. 그나마 안심되는 건 아버지가 새벽 산책과 목욕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는 것. 그 모습이 아들 눈엔 기회의 시간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꾸준함이 한겨울에도 계속 된다는 건 문제였다. 아들은 화냈다. “제발 추울 땐 운동하지 마세요, 좀!”
아버지가 그렇게 갔다. 이른 아침 산책 후 들른 공중목욕탕에서 심장마비가 와 익사했단다. 참으로 허망하고 화도 났다. 겨울 운동을 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고집불통 영감! 기이한 것은 급작스러운 소식을 듣고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효와 죄책감의 크기만큼 한없이 눈물 쏟을 것 같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부검 중이었다. 만에 하나 있을 타살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검이 끝나길 기다리는데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렸다. “아빠는 왜 날도 추운데 운동을 나가고 그래!” 마음은 누구나 똑같나 보다. 여동생도 슬픔을 원망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뒤이은 어머니의 대답이 아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말렸지. 그런데 니 오빠 상 타는 거 보고 죽으려면 운동을 빠뜨려선 안 된다고 부득부득 나가는데, 하이구, 고집이….” 순간 아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버지의 운동이 그 때문이었다고?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이게 뭐예요, 아버지!” 아들의 눈물은 시간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 이제 언제 아버지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을까요? 억겁의 시간이 흘러 다시 아버지를 뵐 때, 그때는 그럴 수 있을까요?
“그 봐라, 이놈아. 내 말 듣지 않더니 꼴 조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