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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만화가 지찬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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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6년 01월 407호
한 팟캐스트 포털사이트에 ‘스님, 머리하셨어요?’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올라왔다. 그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단골 카페 주인이 지찬 스님에게 말을 건넨다. “스님, 오늘 머리하셨네요?”
라고. 웃으며 돌아서는 지찬 스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여러분은 깔끔하고 멋을 내기 위해 머리를 하지만… 우리도 깔끔하고 핏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하는군요. 그 멋의 중요함은 언행에도 똑같이 핏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의정부의 한 포교당에서 방 하나를 얻어 거처로 삼고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지찬 스님. 스님은 일상에서의 사유에 불교적 감성을 더하는 카툰 작가다. 그런 스님의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지금의 내 모습에 불쑥 참회하게 되고 일상의 작은 위트에 슬며시 웃게 되고 쉽게 다가오는 부처님 말씀에 감화된다. 스님의 카툰에 등장하는 ‘어라 스님’은 지찬 스님의 자화상이기도 한데, 세상 모든 것을 궁금해하고 또 실수는 많지만 유쾌한 캐릭터다. 그래서 그 이름이 ‘어라’다. 지찬 스님은 이 캐릭터를 통해 누구라도 쉽게 불교적 감성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지찬 스님께 여쭙는다. 스님으로 사는 게 좋으십니까? 뭐가 그리 좋으십니까?
“난 이 승복이 그렇게 멋있어요. 밖이든 여기든 괴로움은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이유를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좋아요.”

머리 깎고 승복을 입은 채 걸어가는 스님들의 뒷모습은 저토록 마냥 좋아서 아름다운 게 아닐까. 생과 사가 없는 숨을 고르며 나아가는 고독한 수행자의 모습이기에. 그러니 저 삭발한
머리와 저 단출한 승복은 색도 빛도 없이 얼마나 멋진가.
지찬 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생과 사의 문제에 천착했다. 집안 어른들이 해오던 호흡 수행을
하며 점점 더 수행자의 길에 가까워졌다. 고등학생 때 출가를 결심하고 절에 찾아갔으나 졸업 후에 오라고 해서 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고서야 출가했다.
“밖에서도 수행하면서 살았기에 내면에 기운이 꽉 차 있었어요. 자신감이 있었죠. 그런데 출가해서야 알았어요. 내가 그때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출가 후 전국 선방을 다니며 수행했다.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어 쳐다보지도 않았다. 소임을
산 것도 은사 스님 밑에 1년 있었던 게 전부다. 그런 스님이 어떻게 카툰을 그리게 된 걸까?
“진정성은 자기가 담는 거잖아요. 그땐 다른 걸 볼 줄 몰라서 수행 아닌 것은 무시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스님은 경상도의 엄격한 집안에서 극단적인 사고를 하며 자랐다. 그러다가 대학에 가서 사소한 일에 얽혀 경찰서에 가게 됐다. 훈방되어 나오긴 했지만 그 경험이 사고 전환의 계기가
됐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죄를 지을 수 있고 그 죄를 뉘우쳐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여지와 이해가 생긴 거죠. 그러면서 시각이 바뀌었어요.”
소임을 살 때였다. 그간 수행을 해왔기에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그때 막내 사제가 건넨 일본 만화책 《우리는 모두 돼지》를 읽게 됐다. 말로 하기 어려운 불교를 네 칸의 만화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간단한 그림이어서 이 정도면 나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게 잘 그린 그림이었어요, 힘 뺀 그림. 그걸 알았더라면 시작하지 않았겠죠.”
수행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스님, 그러나 선방에 앉아 있다고 공부가 되는 건 아니란 걸
깨닫게 된 스님, 그러던 중 우연히 만화를 접하게 된 스님, 무언가를 제공하고 보시를 받고 싶던 차에 지찬 스님은 만화를 그리기로 했다.
“사소한 기연들이 쌓여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때 만난 게 만화가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면 지금 그걸 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만화를 위해 만화를 선택한 게 아니라는 만화가의 말씀이다. 만화를 통해 중생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수행자의 말씀이다. 불교가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남녀노소 누구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중생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5년 전, 지찬 스님은 성신여대 사회교육원에서 만화 창작을 배웠다. 블로그에 계속해서 카툰을 올리고 카툰 작가들과 함께 불교 카툰 신문 ‘만만卍卍한 뉴스’를 창간했다. 몇 차례의 전시회를 거치면서 많은 이가 스님의 그림에 공감했고, 스님은 동국대 일산병원에 그림을 한 점씩 기부하기 시작했다. 108개를 기부하겠다는 원력으로. 그리고 ‘어라 스님’은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으로 출시됐다. 그리고 지난달엔 ‘불교언론문화상’의 뉴미디어상을 수상했다.
“어라 스님이란 캐릭터를 통하니까 공감대가 커지는 것 같아요. 내가 아직 공부가 깊지 않아
사람들이 내 그림을 통해 법열을 느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불교의 감성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테크닉을 배울 때마다 난 희열을 느끼죠.”
삼매에 들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니 늘 지찬 스님은 수행자의 자리에 앉는다. 그림을 그리는 그 자리 또한 수행의 자리이지만. “수행을 하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죠. 계속 퍼낼 수만은 없어요. 그러면 그냥 만화가인 거죠. 채우고 그리고 지치면 또 채워요.”
지찬 스님은 현재 불교방송 btn에서 ‘뮤직 에세이 편지’의 디제이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이 보낸 사연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도 듣는다.
“재미있어요. 하지만 소통이란 게 쉽지만은 않아요. 내가 다 해결해주지는 못하니까, 그럴 땐
미안하고 자괴감이 들죠.”
법보신문에 매주 카툰 연재를 시작했다. 부담되는 일이지만 지찬 스님은 주어지는 인연들 속에서 언제나 소통하고 싶다. 그래서 얼마 전엔 ‘어라 스님’이 인형이 되었단다.
“어라 스님을 3D로 구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작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직접 공방에 가서
인형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지만 사람들이 좋아해요.”
지찬 스님은 작은 공방을 마련하고 싶다. 새로운 방향의 포교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다. 일반적인 공방이 아니라 함께 차 마시며 공부도 하고 몇몇이 둘러앉았을 땐 법문도 하고 같이 명상도 하면서 불교적 감성을 전하는 곳을 꿈꾼다. 그곳에서 인형 만드는 수업도 하고 싶단다.
“바느질을 하면 일단 자신을 가라앉히게 돼요. 그리고 둘러앉아 인형을 만들다 보면 자기 얘기를 하나씩 꺼내놓더라고요. 내가 타심통이 있는 게 아니니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게 하면 좋겠다 싶어요.”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생활 속의 불교였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찬 스님은 얼마 전에 타로를 배웠단다.
“타로 카드를 이용해 이야기를 꺼내게 만들고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거예요. 안 좋은 카드가
나오면 명상을 통해 변화하게 만드는 거죠. 하다가 재미를 못 붙여도 좋아요. 명상하는 인연을 지어주는 게 내 목표예요.”

그러니 ‘어라 스님’은 오늘도 바쁘시다. 인터넷에서 활동해야 하고 방송도 해야 하고 스마트폰에서 이모티콘으로도 활약해야 하니, 모두들 스님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니, 여기서 ‘어라’ 저기서 ‘어라’ 하며 묵묵히 수행의 길을 가시니.

지찬 스님의 포행 길을 따른다. 그 길 어디쯤에 문득문득 멈춰 이야기를 나눈다. 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스님과 헤어졌다. 돌아오는 캄캄함 밤길에서 자꾸만 웃음이 난다. 마음이 온화해진다. 어라 스님은 그런 분이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