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꿈이 있어 아름다운 남자 유수상’입니다. 《해인》지를 통해 여러 불자님과 만날 기회가 생겨 감사합니다. 저는 경남 거창 가북면이라는 산골에서 조그마한 교회를 섬기는 저는 19년 전에 고향인 부산을 떠나 거창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교인이 한 분밖에 없는 시골의 작은 교회라 기본적인 생활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힘듦이 있지만,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걸어온 목회자의 길이라 기쁨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그저 받는 사랑의 빚만 늘어갑니다. 《해인》지를 통해 제 삶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했습니다’, ‘이루었습니다’ 하는 자랑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보니 ‘참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맺으니 ‘세상이 바뀝니다’, ‘사람이 변합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첫 단추로는 제가 사는 삶의 중요한 가치와 철학을 나누려 합니다.
처음 거창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막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 연고가 없는 낯선 땅에서 처자식을 건사할 아무런 여건이 없는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을을 다니며 농사일을 거들기도 하고, 이동이 불편한 동네 분들과 목욕탕도 다니고, 마을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그저 마을에서 친근한 이웃으로만 살아도 먹을거리도 생기고,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한 사람살이의 맛을 알았습니다. 내가 저들에게 전해줄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성서가 아니라 성서가 승화된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순박한 시골 어르신들에게 종교적 설교나 전도가 아니라 내 삶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도시에서 배우고 익힌 선교 방법론을 버렸습니다. 교회를 ‘사람 모이는 곳’이 아닌 ‘삶을 나누는 공간’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해오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이후 제 손에는 복음을 전한다는 소위 전도지 대신에 저들의 고단한 노동 뒤에 찾아오는 통증을 어루만지는 파스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오라는 말 대신에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사랑은 나와 너라는 구별이 없는 세상으로 이끌어줍니다. 하나가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치료하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무한한 힘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후 동네 분들과 함께 일구어가던 일이 규모화되면서 사회복지기관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거창 지역에서 어르신들을 섬기고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설을 만드는 일의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혼자 힘이 아니라 뜻을 나누고 함께 동역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저는 앞에서 열심히 일하고, 섬기며 나아갑니다.
지금은 어르신을 섬기는 거창효노인통합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앞서는 ‘월평빌라’
라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을 설립해 5년 반 동안 원장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사업이든 목회든 그 중심이 ‘사람’이라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 중심’의 가치를 적용한 사회사업 현장에서의 삶의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저에게 이런 사회사업의 중요한 가치를 알게 하신 사회복지정보원의 한덕연 선생의 《복지요결》이라는 책 서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회사업 바르게 하려면, 근본을 세우고 근본을 좇아 행하고 근본으로써 성찰해야 합니다. 사람다움이 무엇이며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지, 문제의 근원이 무엇이며 복지의 바탕이 무엇인지, 원리도 모르고 뛰어들 수는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이상과 철학도 없이 나설 수는 없습니다. (…) 근본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사업 그렇게 하는 근거 곧 ‘사람다움’, ‘사회다움’입니다. 사회사업의 개념, 가치, 이상, 철학, 주안점 같은 요소들을 밝히고 사회사업 실제가 여기에 들어맞게 해야 합니다.”
저는 이 머리말을 자주 읽습니다. 스스로가 나태해지고 힘든 순간마다 이 글을 통해 새로운
힘을 공급받습니다. 종교적 활동이나 사회사업은 모두 ‘사람’을 돕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이러해야지’ 하는, 그 사람다움이 무엇일까요? 저마다 중시하는 바가 있거니와 종교인으로서, 사회사업가로서는 무엇이라 할까요? 그것은 사회가 약자도 살 만해야 하고 약자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사회는 약자도 살 만해야 합니다. 약자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적 활동과 사회사업은 ‘이웃이 있고 인정이 있어 정 붙이고 살 만한 사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눈물·고통·슬픔이 있고 가난·질병·장애가 있고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이웃이 있고 인정이 있어 살 만한 세상, 불편하거나 갈등이 있을지라도 혼자는 아닌 세상, 고운 정이든 미운 정이든 정 붙이고 살 만한 세상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문제가 없는 곳이 아니라 정 붙이고 살 만한 세상, 사람 사는 것 같은 인간적인 사회입니다.
이 꿈을 함께 꾸어보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