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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뒤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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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능허┃해인사승가대학 1학년 2015년 12월 406호
부처님과 같은 삶을 살려 노력하지만 아직은 미숙해서일까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나에게 반대라는 이유로 가끔 화가 치밀어 오르곤 합니다.
감정이라는 것이 항상한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임에도, 또한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배우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그래서 내 감정을 잘 다스리기 위해 무슨 방법이 있을까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의지하기 위해 경전을 읽는다거나, 끓어오르는 마음을 내리기 위해 호흡법을 연습해본다거나, 아니면 하루의 마무리를 하기 전 10분 정도 하루를 점검해 본다거나 하는….
제가 몽매해서 그런 것일까요? 위의 방법들은 반성과 정리를 위한 방법일 뿐 실질적인 마음의 변화는 초래하지 못했습니다. 항상 떠오르는 감정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고 여러 가지 방법을 찾던 중 용타스님께서 개발하신“나지사 명상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지사 명상법에서 나,지,사는 “그랬구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감사”의 끝 글자를 따서 만
든 것입니다. 이 명상법을 자주 하다보면 어떤 상황에든 즉각적으로 남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예를 들어 누군가 약속장소에 늦게 도착을 한다면 처음으로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봅니다.“○○이 약속장소에 늦게 나왔구나.” 두 번째로는“○○이 나오다보니 급한 일이 있었겠지, 퇴근시간이라 차가 많이 밀렸겠지”라고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생각을 합니다. 단, 이 긍정적인 생각은 내 마음속의 생각이므로 반드시 사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이 급한 일이 있고 차도 많이 밀렸는데 약속 장소에 나와주었구나”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마칩니다.
생활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많은 감정적인 기복이 나타납니다.
이런 감정적인 기복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점을 갖는 다거나 다른 사람을 수용受容하는 것에서 해결될 수있습니다.
부처를 바라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영원하지 않은 감정에 얽매어 살아가는 것을 지양하려 하지만, 우리는헛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은 여태껏 살아왔던 삶과 습관에 젖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애욕愛慾과 상충되어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단지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삶의 작은 부분부터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 첫 걸음으로 자신보다는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보다는 남을 우선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하는 것, 남을 이해하는 것 어쩌면 너무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도 행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예전 도림道林 선사禪師께서 백낙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하는 삶이란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이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선을 받들어 행하라.”
그 말을 들은 백낙천은 너무 당연한 말이라 세 살짜리 아이도 알겠다고 하였고, 도림선사는 이와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세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알지만, 팔십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렵다.”
내가 없는 삶, 내 안에서 나보다 남을 더 위하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조금 더 부처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