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담은 택배를 두 개 보내마.”신난부모님 목소리를 하루 꼬박 붙들고 있으니 택배 기사가 왔다. 어찌나 무겁던지 집에 들여놓자마자 한 박스 밑이 뜯어져 부모님께서 담아 보내셨다는 그 가을이 쏟아져 나왔다. 단단한 단감이다! 또 하나는 홍시로 먹는 대봉감이다.‘요 많은 걸 어떡한담…?’넉넉함을 나누겠다는 핑계를 대며 경주 외곽에 사는 친구에게 감을 가져다주고 나니 괜스레 뿌듯해져 그날 오후는 가을을 즐길 요량으로 운곡서원에 들렀다. 하늘도 땅도 뒤덮을 만큼 클 뿐만 아니라 37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있다는 운곡서원. 그런데 나눈다는 마음 일으켜 너무 생색내서 그런지 그날 운곡서원은 가을을 보여주지 않더라. 11월 초, 여전히 연둣빛을 탱글탱글하게 머금고 있는 은행나무를 보며 시무룩해져 집으로 돌아왔다.연둣빛 은행나무에 이어 홍시가 되길 기다려야 하는 대봉감… 그리고 곶감이 되길 기다려야 하는 단감… 기다림을 곶감걸이에 같이 매달아두고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일주일도 채 안 되어 곶감 하나를 걸이에서 빼내어 입 속에 쑥 집어넣었다. 겉보기는 곶감이 아니지만 맛은 곶감일거라 믿고. 그런데 웬걸? 여전히 단감이다!그 주 주말에 신랑을 졸라서 또다시 운곡서원에 갔다. 짙은, 노란 가을이 분명 와 있을 거라면서. 그런데 웬걸?노란 은행잎은 신랑 머리에 드문드문 보이는 새치처럼 나무에도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이번 가을엔 운곡서원에 다신 안 와야지’라며 뾰로통해하고 있자니 예전에 사찰 불교대학에서 강의할 때의 수강생이 떠오른다. 연세 지긋하셨던 처사님이셨다. 수업 쉬는 시간에 가까이 오셔서는“어떻게 하면 빨리 깨칠 수 있을까요? 이 생에… 죽기 전에 깨쳐야 하는데 마음이 급합니다.” 그 분의 눈에 서려 있던 깨달음을 향한 열망 또는 조급함이 기억났다.
기다림이 깊어져 조급하게 군다한들 은행잎의 연두 물을 짜낼 수 있겠는가, 대봉감의 떫음을 밀어낼 수 있겠는가, 곶감의 쫀득함을 끌어올 수 있겠는가! 그 환경과 조건이 어우러져 끊임없이 물들어가고 익어가고 있는데도 타자他者인 나는 밖에서 그 결과만 재촉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꾸준한 수행이 깊어지고 무르익어 어느 날작은 깨침도 있는 것인데, 재촉한다고 깨침의 순간이 확 내 앞에 올 수 있겠는가. 그래, 무언가의 끝에 열릴 보물을 희망한다면 서두르고 재촉하는 내 마음부터 다스려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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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anā coday\'attānaṃ paṭimāse attam attanā,
앝따나 쪼다얕따낭 빠띠마세 앝땀 앝따나
so attagutto satimā sukhaṃ bhikkhu vihāhisi.①
쏘 앝따굳또 사띠마 수캉 빅쿠 위하히시
자신을 스스로 격려해야 한다. 자신을 스스로 제어해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고 깨어 있는 그대는 행복하게 살 것이다. 수행승이여!②《법구경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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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attanā: 스스로. coday\'attānaṃ: 자신을 격려해야 한다. paṭimāse: 제어해야 한다. attam: 자신을. so: 그대는. attagutto: 자신을 보호하고.
satimā: 깨어있는, 알아차리는. sukhaṃ: 행복하게. bhikkhu: 수행승이여! vihāhisi: 살 것이다.
② 당자칙신當自勅身 내여심쟁內與心爭 호신념체護身念諦 비구유안比丘惟安 (한역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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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법구경 제25장‘수행승(Bhikkhu)’편에 나오는 시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이상理想에 다가갈 수가없다. 조급함이 앞서면… 홍시가 되기도 전에 떫은 대봉감은 반쯤 껍질이 깎인 채 버려지고, 노란 가을을 맛보기도 전에 운곡서원엔 발걸음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깨침도… 그 결과에 조급함이 앞서면, 수행과 일상이 한데 어우러져 무르익기도 전에 수행도, 불교도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깨침이라는 이상은 가슴에 오롯이품은 채 자신을 잘 다스려‘수행’이라는 아름다운 길을 느긋하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겉으로는 느긋할지 몰라도 끊임없이 익어가야 하는 그 꾸준한 수행의 길 말이다.
지난 주 지역신문에 운곡서원의 노란 가을을 알리는 사진이 떴다. 대롱대롱 곶감들은 흰 가루가 제법 보인다.늦가을도 무르익어 이제 겨울. 올겨울은 봄 기다림 없이 온전히 겨울을 만끽할 테다. 왜냐하면 겨울이 온전히 무르익은 것이 봄이란 것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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