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으로 보아도 보는 바가 없으니 분별함이 없고
귀로 들어도 듣는 바가 없으니 시비가 끊어진다
분별과 시비를 모두 놓아버리니
마음 부처에 스스로 귀의하도다
- 부설 거사 임종계 -
변산반도의 푸른 바다를 멀리 조망하며 봉래산 법왕봉 중턱에 자리잡은 월명암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등산로가 아름답다는 감탄도 잠시 미룬 채 헉헉거리며 1시간 남짓을 올라야 한다. 땀으로 날숨으로 어지간히 쏟아내고 비워낸 후에야 비로소‘월명암 300M’라는 푯말이 눈에 뜨인다. 여기부터는 월명암의 품안으로 깊숙이 받아들이려는 듯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내리막길이다. 봉우리마다 자욱한 안개와 구름이 춤을 추는 비경으로 변산 팔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히는 월명암. 1천3백여년의 역사를 지닌월명암은 신라 신문왕 14년 부설 거사가 창건했다.
인도의 유마 거사, 중국의 방 거사와 함께 세계 불교 3대 거사로 불리는 부설 거사는 영희 영조 두 도반스님들과 함께 수행하던 수행승이었다. 18세가 되도록 벙어리인 여식 묘화를 둔 만경현 백련지(현 김제군 성덕면 고현리 부설) 부근 구무원의 집에서 세 스님들이 하룻 밤 여정을 풀게 되었는데, 부설 스님을 본 벙어리 묘화가 갑자기 입을 열어 말을 하여 스님과 3생 연분이 있다하며, 죽기로 혼인 가약을 청하니 그 부모들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하룻 밤을 지샌 고심 끝에 부설스님은 당도한 인연을 받아들이기로 결심, 묘화와 혼례를 치르게 되고 두 도반스님들은 길을 떠난다. 부설스님은 스스로를 부설 거사라 하고 등운 월명 아들 딸을 낳은 뒤 이 곳 변산을 찾아와 토굴을 짓고 도를 닦아 마침내는 온 가족이 다 성불하였다.
도반스님들이었던 영희 영조 두 스님이 부설 거사의 수행력이 궁금해 방문길에 오르자, 부설 거사는 아들 등운에게 미리 맞이할 차비를 시키고, 물병 세 개에 물을 가득 넣어 천장에 매달라고 시킨다. 두 도반스님들에게 병 안의 물을 쏟지 말고 병을 깨뜨리라 하니, 두 스님들이 병을 내리치자 순식간에 물이 허공으로 쏟아져내렸으나 부설 거사가 병을 부수니 병은 박살이 났지만 병 안의 물이 그대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부설 거사는 열반 후 많은 사리가 나와 사리부도를 안치하였고, 묘화부인은 110세 장수를 누리며 수많은 이적의 도력을 보인 것으로 전해오며 등운 조사 역시 충청도 계룡산으로 가 선풍을 드날린 것으로, 그리고 딸 월명이 월명암에서 정진하다가 육신 그대로 열반해 하늘로 올랐다는 가족 성불기가 전한다. 월명암 대웅전 후불탱화에는 부설 거사와 묘화부인 그리고 등운 월명의 모습이 연한 오렌지빛 광배와 함께 생생하게 모셔져 있다.
신라의 고승 의상 대사와 조선 선조 때 진묵 대사,철종 때 성암 조사가 월명암을 중수하고 학명, 용성,서옹, 고암, 해안, 향봉, 원경, 능파, 월인, 탄허 스님등 기라성 같은 대덕스님들이 참선한 성지가 월명암.부설 거사의 예언이라 하여 전해오는 바로는 월명암에서 사성팔현이 나온다는데, 이미 부설 거사 가족 4성은 출현하였고, 8현 중 성암, 행암, 학명 스님 삼현이 나오셨으니 앞으로 오현과 12 법사가 출현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유래에도 불구하고 6·25 때 전소되어 폐허가 된 월명암은 1983년 지금의 종흥 주지스님 부임 전에는 급경사로 이루어진 열악한 도량터에 인연을 내리지 못한 두 분 주지스님의 안타까운 입적 등 극도로 척박하여 견뎌내기 어려운 도량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주지 종흥 스님의 큰 원력으로 도량 중수가 이루어지며 운해당 묘적암 사성선원 종각 등의 불사에 재가 거사인 김의원의 노력과 군 당국의 헬기지원, 1천여명이 넘는 군장병과 주민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오늘날의 명승지이자 수행성지로서의 월명암과 사성선원이 자리매김 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종흥 주지스님은 지난 10여년 동안 2천여회나 월명암 산길을오르내리며 짐을 나르느라 걸망이 누더기가 되어 8개를 바꾸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러한 도량 재탄생기를 이어가듯 월명암 사성선원은 철저히 반농반선의 수행 가풍을 따른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는 한 템포를 잊게 만든 한 짐 나무지게를 메고 산에서 내려오는 총무스님의 모습은 그 증명이 되었고, 텃밭에서는 직접 재배의 손길 아래 싱싱한 채소들이 오롯이 자라나고 있다. 잿빛 승복을 입은 그대로 텃밭을 가꾸는 스님의 모습에서 분명한 절도가 배어나오는 듯하다. 사성선원에서의 정진은 더 한층 또렷또렷하고 적적한 선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묘적암에서는 40여년 수좌의 길만을 걷고 있는 스님의 토굴 정진이 매일매일 이어지고 있다.
사성선원 아래 첩첩이 굽이치는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신비감이 가득한 운해와 낙조대에서 바라보이는서해 낙조의 숨이 멎을 듯 장엄한 광경도 매일 보면 길어야 한 달이면 익숙해진다며 오직 월명암 복원 중창에 모든 것을 올인하신 주지스님과 정진하시는 스님들, 더구나 성지 월명암에 모셔진 부처님께 공양을 지어올리는 공양간 세 분 보살님들도 예사롭지는 않다.
무엇 하나 쉬이 날라올 수 없는 오지 월명암 공양간 지킴이 보살님들은 모두 무보수 봉사 체체로 임한다고 한다. 두어 평이나 될까하는 비좁다면 무척 비좁은 공양간이지만 스님들께 온 정성을 다해 직접 재배 수확한 천연 재료들로 갖가지 국과 찬을 만들어드리고 있는 것은 공양간 한켠에 걸린 프라이팬들의 숫자가 적지 않음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어디 공양간에만 머무르랴. 틈틈이 정진하는 길에도 나태함이 없는 공양주보살님들. 월명암에서 정진 중인 스님들께서 이구동성으로 칭찬이 자자하시다.
음력 보름 때면 눈이 빛나고 가슴이 시리도록 깊고 아름답다는 월명암 달빛. 월명암을 상징하듯 기품있는 자태를 드리우고 있는 종각 너머로 달이 떴다. 밤새 하늘을 가르고 지나온 밝은 달은 새벽녘 도량석 무렵이면 법당 위를 지난다, 마음달을 찾으려 애써 수행하는 정진 선객들에게 더 없이 고요하고 맑은 달빛이다.
월명암 사성선원이 그대로 달빛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