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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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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동일┃동국대학교 교수 2015년 12월 406호
“가만히 앉아 계세요.”운전하던 동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제 안경 좀 찾아 주세요.”누군가 건네주는 안경을 쓰고,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그의 차가 얼마나 손상되었는지를 본 다음 8시에 만나기로 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교통사고 때의 일이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나는 신호대기 중인 차들 뒤에서 정차하
여 내리기를 준비하려던 참에 부주의한 차량에 의해 45도 방향에서 강하게 추돌을 당했던 것이
다. 그 직전에는 주말농장 텃밭에서 무를 뽑았었다. 이 사고로 응급실로 실려 갔고. 뇌 CT 사진
에서 작은 출혈 소견이 발견되어 태어나 처음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내가
사고 직후에 잠시 혼절하였다 하고, 기억을 돌이켜봐도 사고 순간은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 새
로 복원된 기억의 처음은 사고 후 십여 분에서 이십 분 정도 경과하여 경찰과 보험사 직원이 와
서 사고 수습이 진행되는 어느 순간부터였다.
사실 주말농장에서 텃밭 농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친한 선배교수가 권한 일이었지만 병원장의
소임을 놓고 생길 마음의 틈을 메우고 싶은 탓도 있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와 가까이 사시는 부
모님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였다. 두 분은 요긴한 농사의 선생님이셨고, 손쉽게 투입할 수 있는
대체인력이기도 하였다. 살아보니 부모는 늘 자식에게는 그런 존재인가 싶다. 그렇게 시작한 어
설픈 농사짓기였으나 욕심을 내려놓는 법과, 살면서 꼭 필요한 소박한 집착은 무엇인지 어슴푸레
깨닫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푸성귀를 씻어서 친한 이들에게 나누는 즐거움은 배려가 어떤
것인지 좀 쉽게 설명할 수 있게 하였다. 그렇게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가 쉬 지났다. 그간 손길이
많이 가는 일들은 대개가 나의 몫이었으나 찬바람이 불면서 연구와 교과서 집필로 인해 부모님의
일손을 빌리는 날이 늘었다. 그날 뽑은 무를 심은 것도 실은 부모님이셨다. 비록 내가 직접 심은
것은 아니었으나 모친의 탈상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료와 동생이 아픈 그의 후배에게 달짝
지근하고 부드럽게 매운 무 몇 뿌리로 정을 나누고 싶었던 마음으로 오랜만에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텃밭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텃밭지기의 일원이었던 그의 차에 동승하였고, 그의 집과 내 집
으로 가는 길의 중간쯤에서 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해 짧은 11월 저녁 어둠 속에서 분주했던 사고
수습의 모습들은 내 기억인지, 어릴 적 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일반적인 모습으로 대체된 기억인
지 여전히 알 수 없는데, 그 혼란스런 사고 현장에서 비슷한 충격을 받았을 나의 동료가 부서진
자신의 차에서 보험회사가 제공해준 차량으로 두 손 가득 옮겨 담은 것은 우리가 함께 뽑은 무였
다고 한다. 모여든 사람들이 그 무를 보고 참으로 황당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라 싶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잠시 혼절하여 기억을 잃었고,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본 시간
들을 지나면서 내 머리 속에 한동안 머문 것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로 이 물음이었다.
톨스토이는 그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미카엘이 짓는 염화미소拈華微笑를 통
해 소설의 제목이 포함된 세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준다.‘사람에게 무엇이 있는지 배워라’는
명제에 대해서는‘사람에게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배
워라’는 것에 대해서는‘사람에게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아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을, 그리고 소설의 제목처럼‘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서는‘사람은 자신을 위한 걱
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다.
이기적 요소를 머금지 않은 사랑은 아름답다. 이기적 요소가 담기는 것은 분별심에서 시작된
다.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내가 정신을 놓았다가 다시 깨어 있는
사람으로 돌아온 순간, 내게 가장 긴요한 것은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는‘안경’이었다. 그 때 안
경을 끼고 제대로 보고자 한 것은 올바른 판단을 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안경으로 본
것은 내게 놓인 사람 사이의‘관계’였고, 그 관계의 안위에 대한 판단을 얻었던 것이다.
안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 안경을 닦는다. 집을 나설 일이 있는 사람이
라면 저마다 얼굴을 씻는다. 안경을 닦고 얼굴을 씻을 때 지혜를 구하고, 마음의 허물을 씻는다
는 각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 여기저기에 상처와 멍이 들고 뇌출혈이 생기는 사고에도
다행히 부서지지 않은 안경을 닦으며 사람은 무엇으로가 사는가? 맴돌던 물음에 답해 본다. 역
시 사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 가치 있고, 관계에서 힘을 잃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혜
이다. 사랑에 있어서 지혜가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마다 가진 사랑의 처음 그릇됨이 한
정되어서 올바르게 나누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혜가 합쳐진 사랑이 힘을 가지는 것은 무
엇 때문일까? 지속성과 확장성을 지닌 탓일 것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어 세상으
로 향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무를 뽑아 나누려 했던 내 마음을 잊지 않는 뇌 기능을 아직 감사히 가지고 있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며 염려하던 아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고, 몇 뿌리 무에 담겼던
내 마음을 들어 옮기던 그의 이름을 고맙게 기억한다. 또한 이 글을 쓰면서 사고가 나기 전 언젠
가 들었던 거창의 여름밤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여름밤 옥상에 놓인 평상에 함께 몸을 뉘어 큰 별 하나가 아니라 뭇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리고 그곳에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이 가을 다시 그런 여름밤을 위해 열 달쯤을 기다
리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다시 만난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하고, 덥석 내 손을 잡아 줄 것
이라면 적조積阻했던 나날의 헐거움은 금방 채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