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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 공동체의 질서를 다스리기 위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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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편집실 2015년 11월 405호
방대한 경전의 세계에서 주목되는 장면은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과 출가, 초전법륜과 열반일 것이다. 네 개의 장면은 4대 성지로 기억되어 불자들의 순례의 길이 되었다.
불교를 설명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길을 따르는 여정이라고도할 수 있다. 그리하여 순례의 길은 몸이 나아가는 것이면서 동시에 가르침을 체화하는 수행이기도 하다. 불교는 경전과 함께 현존의 사부대중에 의해 선양되고 전승된다. 전등의 역사는 가뭇거리는 불빛이기도 했으
며, 대낮처럼 빛나던 때도 있었다.
지금 한국의 불교의 빛은 흐릿하다.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하며 위안 삼기에는 불안하다. 어떤 이들은 지금 한국불교는 발전의 도상에 있다고 말한다. 즉, 100년의 불교 역사를 보면, 구한말에 스님들의 도성 출입이해제되었고, 일제의 강압적 지배와 왜색불교화에 저항한 역사가 있었으며, 해방 후 근대 적 제도를 갖추어 도제양성과 역경불사를 이루었으니, 너무 체념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불교만의 지나온 길을 더듬어보면 일리 있다. 과거를 자랑스러운 자양분으로 삼자는 견해에도 고개를 갸웃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웃종교의 성장세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고,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우리 불교가 얼마나 대응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볼 때 낙관적일 수만은 없다. 오히려 스스로를 냉정하게 봄으로써 현재의 상태를 살필수 있을 것이다. 이웃종교와의 비교는 차치하고, 불교계의 문제와 미래 대응력을 진단
하고 과제를 제시하는 종단 차원의 지혜가담긴 보고서조차 내놓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낙관은 비관보다 위험하다.
지금 종단을 이끄는 총무원은 구심점으로서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치판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부처님의 가르침보다는 권력투쟁에서나 동원되는 여러 정치기술들이 관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기경에서는 우주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설명하고 있다. 현대물리학이 설명하는 우주탄생과 닮았다. …다시 미망의 세월이 흘러,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그 사이로 연일 수레바퀴 같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그리고 어느 땐가 비가 그치고 물이 증발하면서표면에 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물결을 흔들고 수많은 거품을 만들었다. 그 뒤, 그들은 서로 부딪치고 쌓이고 뭉침을 반복하면서 위로
부터 아래까지, 아주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남김없이 지어내었다. 세기경에서는 또 사회 또는 국가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저녁 양식을 아침에 한꺼번에 수확하고 여러 날 분을 비축하면서 서로소유를 주장했다. 급기야 쌀을 훔치고 다른구역의 경작지를 침범하는 자들이 생겨났다.이렇게 질서가 무너지자 그들은 무리를 통제할 중재자를 옹립했다. 서로 합의하여, 가장 능인한 자를 추대하고 그를 백성의 주인인 마하 삼마따로 불렀다. 이 삼마따가 사까족의선조 고따마이다. 사회계약설이 불교 경전에서 유래한 것이 생각될 정도이다.
석가모니와 함께 수행했던 다섯 비구와만나 그들이 깨달음을 성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승단이 성립되었다. 승단도 집단인까닭에 질서를 흩트리는 일이 발생한다. 계율 제정에 대해 언급한 것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12년째라고 웨란자경 등에서밝히고 있다. 이때 부처님이 사리붓다에게 말씀하신다.“여래의 정법이 세상에 오래머물게 하려면 반드시 엄한 계율이 필요하다. 마치 잘 정돈된 꽃다발을 흩어지지 않게하기 위해 끈으로 단단히 묶듯이, 미래에 일부 제자들의 삿되고 엉뚱한 생각을 막기 위해 계율이라 불리는 단단한 끈이 필요한 것이다.”이때에 부처님은 곧장 계율을 제정
하지 않으셨다.“아직 해지지 않은 새 옷을미리 기울 필요가 없듯이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 뒤 수딘나 비구의 음행을 알게 되었는데, 수딘나 비구는 자식 하나를 낳아 대를 끊지 말아달라는 어머니의 간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부처님은 계율 제정의 시기가 왔음을 알고 비구들을 향해 말씀하셨다.“이제부터 그대들 중 누구든지 부정한 행위를 범하고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을 한 자는 죄를 물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빠라지까(Parajika, 공동체에서 추방)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상가에서 추방될 것이며 나와 함께 살지 못할것이다”라며 계율을 제정했다. 계율을 제정
한 열 가지 의미를 설명했다. 공동체의 질서를 다스리기 위함이요, 그대들을 기쁘게하기 위함이요, 그대들을 안온하게 하기 위함이요, 믿음이 연약한 이에게 믿음을 얻게하기 위함이요, 믿음이 돈독한 이에게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함이요, 거친 이를 교화하기 위함이요, 참회하는 이를 너그럽게 구제하기 위함이요, 현재의 부정함을 피하기 위함이요, 미래의 부정함을 피하기 위함이요,바른 담마가 오래 존속하기 위함이다.
부끄러움은 수행의 첫걸음이라고 했다.붓다께서 사왓띠성 제따와나 수도원에 머물 때인데, 장로 사리붓다가 비구들에게 말하길“벗들이여, 만약 수행자가 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랑과 공경을 잃게 되고, 사랑과 공경이 없으면 믿을 잃게 되고,…해탈이없으면 열반을 잃게 됩니다”라고 했다. 사리붓다는 다시 나무에 비유해“만약 나무의 겉껍질이 벗겨지면 속살이 상처를 입게되고…”라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수행자가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거센 물길을 건너며 몸을 보전케 해주는 것은 이 둑에서 저 둑을 이어주는 튼튼한 동아줄이다. 계율은 거친 물살의 개울을 안전하게건널 수 있게 해주는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거센 물살의 힘을 얕보거나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줄에 의지하지 않았다간 생명을 내어놓게 된다. 조계종은 일제의 오랜 지배에서도 독신비구의 전통을 지켜냈다. 그리하여비로소 조계종으로서 유지되어 왔다. 시대가격하게 변할지라도 놓을 수 없는 것이 독신비구의 전통이다. 이것이 흔들릴 때 명색은 조계종일 수 있되 속은 텅 비어 공허하다.
계울 해이의 상황은 사리붓다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수행의 첫걸음이라고 하면서 나무에 비유했듯 겉껍질이 벗겨져 속살에 상처가 나 마침내 고사에 이르는 위험한일이다. 한 수행자의 일이면 그를 공동체에서 추방함으로써 마무리된다. 그런데 계율해이의 상황이 종이에 기름이 스며들듯 공동체 전체로 번지면 정체성을 잃고 만다. 물론 공동체에서 추방될 일을 저질렀어도 참회를 거치면 살인마 앙굴리말라처럼 구제받을 수 있다. 어떤 제도이든 기계적으로적용될 수 없다. 그럴 경우 오히려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고 자비의 종자를 없애버리는우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범계를 감추고,감싸서는 범계자도 그렇거니와 집단도 망치고야 만다. 무율의 암흑에 빠지고야 만다. 경계할 일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한국불교의 추진력이 상실되는 것 또한 당연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