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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스님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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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무설┃해인사승가대학 1학년 2015년 11월 405호
사미계를 같이 받은 도반들은 다들 먼저 기본교육기관에 갔지만 내 경우는 사형스님들이 은사스님 시봉하고가라해서 그들보다 한 학년이 늦다. 행자생활도 1년을 했다. 그것도 행자생활 오래 할수록 잘 산단 말에 넘어가서다. 물론 다 지나간 일이고 조금 늦었다고 억울하다거나 원망한다거나 아까워 할 일도 아니다. 솔직히 그때는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대개 절에 오는 불자님들은 큰스님밖엔 모르는 것 같았다. 같이 살던 사형스님도 승랍이 20년 되었는데도 오로지 은사스님 말고는 관심 밖인 태도였다. 하물며 행자 땐 어떠했겠고 사미계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뭐가달라졌겠는가? 기억해 보면 우리 속가 부모님도 절에 가시면 큰스님밖에 몰랐던 것 같다. 지금은 금쪽같은 자식이 스님이 되었다니 절에 오시면 관심이 많이 달라지신 것 같다. 같이 사는 스님부터 상주하는 절의 모든 보살님, 거사님, 꽃들, 나무들 할 것 없이 모두 관심거리인 것처럼 보인다. 강원 있을 때는 방학 때 말고는 볼 수없으니 연락도 기대하지 말고 찾아 오지도 마시라고 했더니, 조계사에서 해인사로 오는 성지순례에 따라와서날 보고 가신 적도 있다. 세납이 많은 편인 내 경우도 이런데, 어린 도반스님들이 속가에서는 어떠했을지 상상이 갈 일이다.
나는 출가 전에 절에 가도 예불이 참 싫었다. 예불의 의미를 모르니 길게만 느껴졌고 무슨 곡조가 트롯트도 민요도 아니고 발음도 이상해서 영 내키지가 않았다.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니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언제부턴가는 속가 부모님과 절에 가면 난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법회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때우다 왔었다.
지금은 경전도 배우고 예불의 의미를 새기며 하므로 출가 전 기억들이 멀기만 하다. 나와 같은 재가 불자님들이아직 많이 있을 것이므로 열심히 공부해서 잘 알려 주는 스님이 되는 것도 나의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스님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의외로 절에 사는 것이 나와 잘 맞는다는 것이다.
밖에서 보았던 절은 조용하고, 점잖고, 정적이고, 한결같았다. 그런데 실제로 절에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은않다. 앞에 사람 음식 씹는 소리가 시끄러워 다투고, 신발을 똑바로 놓지 않는다고 옳은 말 한 번 했다가 싸우고, 말을 못되게 하는 사람도 많았고, 항상 시비를 못해 안달인 사람도 보았다. 안거를 난다는 명분으로 절에와서 막행막식만 일삼다가 가는 불자님들도 많았다. 참 위험해 보였다. 부처님 법을 믿는다는 공통점 하나로 절에 같이 산다는 것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고, 아무리 말을 해도 고쳐지지 않았고, 이상한 사람들은 계속 절에 왔다. 가슴이 쿵쾅거려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못살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있던 은사님 절에만 그런 사람들이 오는 줄 알았다.
도반스님들한테 얘기 들어보니 부처님 공부 열심히 하는 불자님도 많고, 이런 저런 불자님들은 어느 절에나 다 있다고 했다.
출가 전에는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은 굳이 만나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은 장소엔 굳이 가지 않아도 되었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절은 내가 떠나지 않는 한 어떠한 사람과도 같이 살아야 한다. 더구나 난 스님이다.
결국 언제부턴가 이기는 것 보다는 지는 것이내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겨서 흡족
한 마음은 잠깐이지만 져주어서 그 사람에게 생각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또한 받을 과보를 받나보다 했더니 마음이
좀 편해졌던 기억이 난다. 옳고 그름을 따져 얻는 이익보다는 얼른 먼저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
는 편이 부처님 공부 아닌가 하며 위로했었다.
분별하는 마음으로 보면 손해이지만 지나고 나니 잘 했단 생각이 드는 일이다.
지금은 학인스님들이 되어 해인 강원에 있지만 그때 그 사람들은 얼굴을 달리하고 내 주위에 늘 있다. 아마내가 어디를 가도 그들은 내 주위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벗어나는 방법은 그들을 밀어내고 바꾸려 하기 보다는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눈을 달리하는 방법뿐이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눈이 부처님 마음과 같아지기를 순간순간 간절히 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