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인물의 반이 이곳에 있다 11 - 조선시대 선비들의 여행기에 나타난 해인사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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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천추寶藏千秋 - 종현
2015년 11월 405호
1.《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허돈 1625
“눈썹이 진하고 흰 머리의 늙은 승려가 나와 말머리에서 인사를 하였다. 일주문一柱門을 통하여 들
어갔는데, 일주문 위에는 석천石泉 임억령林億齡이 지은 오언절구가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문 밖에는 돌을 깎아 빙 돌아가게 하여 유상곡수流觴曲水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또한 최치원의 자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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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허돈 1625
우편 기둥 아래엔 조선 선조 때의 호남湖南 시인 석천石川 임억령의 오언절구가 음각陰刻으로 새겨져있다.
一柱門前賴 일주문전뢰 일주문 앞에서 기대어 서니
三髮日已爛 삼발일이란 서발쯤 돋아 태양은 빛나네
梨花山雨後 이화산우후 배꽃이 비처럼 내린 뒤에사
滿地白紛紛 만지백분분 온땅 가득 어지러이 날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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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야록伽倻錄》- 이중무 을축(1625)년
曉飯后. 今壯健一和尙. 負午飯一笥而前導. 是日卽十五日也. 上奉天臺. 自此山益峻. 路益險. 林木叢雜. 僅僅俯伏而行. 至
一處. 有石窟. 可如房室數間許. 從石門而入. 冷氣砭骨. 僧云此處積冰成堆. 至六月始消. 九月復有冰. 過冷不可久留. 又凌
兢扶曳而上. 有一穴. 直通山腰. 長可三四十步. 廣數丈許. 高可四五尺. 低首曲躬而出. 闊然天開. 乃星州地也. 異哉. 造物者
之所施設也. 中有泉水. 自石間出甚淸冽. 遂圍坐午飯于其邊. 掬水而飮.
새벽밥을 먹은 후에 건장한 한 화상으로 하여금 점심 밥 상자를 짊어지고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다.
이날이 15일이다. 봉천대奉天臺에 올랐는데, 여기서부터는 산이 더욱 험준하고 길이 더욱 위험하였
다. 수풀이 우거져 근근이 기어갔다. 한 곳에 이르자 석굴이 있었는데, 몇 칸의 방 크기만 하였다. 돌
문을 따라 들어가자 냉기가 뼈에 사무쳤다. 승려가 말하기를,“이곳은 얼음이 언덕처럼 쌓이는 곳입
니다. 6월이 되어야 녹기 시작했다가 9월이면 다시 얼음이 생기기 시작하지요”라고 하였다. 너무 추
워서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다시 추위에 떨면서 부여잡고 올라가니 한 구멍이 있었다. 곧바로 산허리로 통하는데 길이가 3, 4십
보, 넓이가 몇 길, 높이가 4, 5척 되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구부려 나오니 막힘이 없이 하늘이 열
리었다. 바로 성주星州 땅이다. 기이하구나, 조물주의 베풂이여! 그 가운데 샘물이 있는데, 돌 사이
에서 흘러나온 것이 매우 맑고 시원하였다. 드디어 샘가에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