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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인물의 반이 이곳에 있다 11 -홍류동 계곡 석각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자이름 - 기녀妓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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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천추寶藏千秋 - 종현 2015년 11월 405호
1. 기妓 양대운陽臺雲 명월明月
여러 명의 기녀가 새겨져 있지만 유일하게 문헌 기록이 전해오는 이가 양대운이다.
“《진연의궤進宴儀軌》에 의하면, 1744년(영조 20) 영조의 보령이 망육순(51세)이어서 기로소耆老所입소경축 잔치 때, 61세의 양대운은 도기都妓이자 풍물차비기생風物差備妓生으로 활약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겨레음악대사전, 2012.11.2, 도서출판 보고사)
양대운은 조선 중기 양주(전주)에서 활동한 기생이다. 유근(柳根:1549~1627)이 호서 지방 관찰사가 되어,전주 공북루拱北樓에서 인근 관장들을 모아 큰 잔치를 열었을 때, 아직도 흥이 덜 올랐는데, 벌써새벽 첫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 양대운이 재치 있게 닭소리를 백로소리라고 말해 분위기가 깨지지 않게 했다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원형백과 조선시대 기녀문화), 2003,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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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춘宜春 기妓 연선蓮仙 연향蓮香 기영국 한성
의춘현감宜春縣監(1864 담양부사) 이수악李秀岳 이형기, 덕기 두 명의 아들을 데리고 홍류동을 방문하였다. 신유(1861) 9월이란 기록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옆에 동행인의 이름이 있다. 기영국 한성조석해 등의 이름과 의춘기 연선 연향의 이름이 나란히 있다. 의춘현감이 의춘(지금의 의령) 기생과 함께 홍류동 나들이를 한 것이다. 조선시대 신분의 차이가 명확했던 시절 기생도 당당히 현
감 옆에 이름을 나란히 새겼다. 조선 말 기생의 사회적 위치를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3. 최상의崔相宜 달達기妓 매화梅花 성산박국향星山朴菊香자 양돌朴梁乭
4. 남원南原 기妓 가애可愛 손종대孫宗大
5. 거창居昌 기妓 채봉彩鳳
6. 기妓 화선花仙 김경모金景模
7. 기妓 금련錦蓮 정일용鄭鎰溶
8. 촉기矗妓 비飛
촉기비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촉석루
에서 온 진주 기녀로 보이며 마지막 글자는
알아볼 수가 없다.
9. 기妓 김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