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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깃드는 선기와 진인의 평화로움, 용흥사 몽성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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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남희 2015년 11월 405호
용구산과 몽성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람안으로 사뿐히 내려앉은 대웅전 처마 위로는 수행자의푸른 기상을 드리운 듯한 소나무들이 초가을 바람을 희롱하고 있다. 미타전을 옆으로 하고 이름 모를 가을 풀꽃들이 나지막이 피어난 풀길을 지나치면 황토물이 곱게 들어 있다는 느낌이 채 사라지기 전에 고색창연한 깊은 젠컬러의 기둥들이 무게감 있게 느껴지는 용흥사 몽성선원이 자리하고 있다.
가을로 접어든 시절을 때맞춰 그려내고 있는 붉은 감나무들 사이로 선원 한켠은 인적이라고는 끊어져버린 자연 그대로를 뿜어내는 계곡과 맞닿아 있어 서늘 하면서도 맑은 기운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준다. 정진 대중 스님들이 포행하시는 앞마당이지 싶은 둥근 모양의 풀밭에는 잔디들이 편안하게 살아 있다. 말끔하게 잡초를 뽑은 모양새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손길이 안 닿은 모양새는 더더욱 아닌 평화로운 전경으로 다가온다.
선원의 크기도 자그마해서 몇 분 스님들께서 한철한철 나고 계실까 하는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서니, 꼭선원 앞마당 풀잎새처럼 수수한 미소를 머금으신 수좌스님 한 분이 기다리고 계신다. 선원 안에는 반자도 채 안 되는 크기의 작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모셔져있다. 마음이 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철저히 배제하는곳이 선원이니 부처님 형상도 크게 모시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하시던 어느 선원장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안으로 또 안으로 무가보물을 찾아나서는 길이라서일까… 문득 헤아림을 멈추고 석가모니부처님 뒤붉은 일원상을 바라보니, 다만 그 심오한 뜻길을 물음표로 세우신다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스님께서 안거철이면 이 곳몽성선원에서 정진을 하시고 염화실에 머무신다. 회주스님과 여러 구참스님들 일고여덟 분께서 한철을 나시는 곳이라 20년 이상 선방에서 정진만 해오신 다른 선원 입승 소임 스님께서도 이 곳에 오니 하판수좌.
하지만 어른스님 모시고 정진하는 길이 복되고 행복하다신다. 선원 나지막한 아래쪽으로 보이는 염화실 툇마루에는 스님들께서 직접 주워 오셨다는 도토리들이 널려 있고, 그 위로 가을 햇살이 그윽하게 비껴든다.
세간 이야깃거리로 조선시대 영조와 그 아들 사도세자 간의 갈등과 비극을 그린 영화‘사도’가 인기다. 영조는 무수리 신분으로 궁에 들어가 후일 자신을 낳은 어머니 최숙빈과 외조부모님을 위해 궁에 육상궁을 먼저 세우고(영조 19년, 1743년) 용흥사를 원찰로 삼아 모친을 위해 국모암(용흥사 동쪽 근방 중전암이라 전승)을 지어 추모하였다고 한다.
용흥사는 거슬러 올라가 고려 말 태고보우 스님이 임제정맥의 법을 받아 온 이후 그 직전 계보가 청허휴정 아래사대문파 중 한 주류를 이룬 소요태능의 문손으로 이어졌다고 하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불교 선맥의 한 중심이었음이 전해져 오고 있다. 두 큰 대사인 청심쌍인과 영향응준이 뛰어나 숙종시대에 이르러서는 48동 12암자의 대가람을 이룬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18세기까지 가람 규모
가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임란과 6·25 때 전소되었던 용흥사는 1999년에 진우스님의 중창 발원에 의해 2002년에 대웅전, 미타전, 삼성각, 몽성선원과 스님 처소 요사채 4동, 재가선원, 사천왕문, 일주문이 건립되었으며 현재에도 복원 불사가 계속진행 중에 있다. 조선 개국 전 이성계가 기도하던 중 꿈에 성인이 나타나 현몽한 후 왕이 되어 산 이름이 몽성산으로 개칭된 유래를 갖게 되었다 하니, 2008년에 선찰의 본질을 구하고 소요 스님의 법을 융성시켜 이어가고자 하는 뜻으로 건립된 몽성선원은 그 창건 유래와 맥이 깊고도 오래지 않을 수 없다.
해탈이 해탈 아니거니
열반이 어찌 고향이겠는가
취모검의 빛이 번쩍이나니
입으로 말하면 그 칼을 맞으리
인조 27(1649)년 11월 21일 소요 대선사께서 임종게를 붓으로 쓰시고 열반에 드시니, 붉은 무지개가 하늘에 뻗치고 묘한 향기가 진동하는 상서로움이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깊은 선맥을 잇고 있는 용흥사에서는 2014년 동안거 때부터 재가선원 선불당을 개원했다. 사부대중이 함께 정진하고자 하는 실천수행 원력의산실이 되고 있는 용흥사 재가선원 선불당. 원용 용흥사 주지스님과 열넷 재가 정진 대중은 산철 결제로 여념이 없다.
새벽 3시. 청아한 새벽녘. 반달이 신령스러운 달무리를 지으며 환하게 떠 있다. 두 줄로 면벽을 한 정진대중들이 차례로 죄복에 앉는다. 주지스님은 몽성선원 선객 대중 스님들의 외호와 함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재가 정진 대중과 같이 선불당에서 정진 길을 챙겨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고요하고 맑은 새벽을 가르며입승의 죽비 소리가 기운차다. 깊은 침묵으로 드는 화두. 저 멀리, 그러나 바로 코앞이라 하였던가. 임제스님의 임제종에서 드러내 보이신 무위진인의 함 없는길…. 그에 계합하려는 정진길에 달빛조차 고요하기만 하다. 용흥사 몽성선원에서는 울력시에 풀 뽑는 일하나도 자율에 맡겨진다. 잡초를 솎아줄 때 수행 근기로 다져진 수좌스님들이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잡초들이 깨끗하게 뽑아질 수 있게 된다. 이맘때쯤이면 저쪽에서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좀 그냥 두지요, 너무 다 뽑아낼 게 있나…….”
“하하….”
‘번뇌가 곧 보리’라고 하는 선가에 내려오는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오랜 세월 선찰의 선기를 품어 온 도량의 예사로울 수 없는 선 가풍이 고즈넉한 가을날처럼 밝다. 서옹 큰스님께서 주창하셨던 참사람 무위진인으로서의 선지를 올곧게 이어가고자 하는 몽성선원 이기에 평화로움 속에 그 선기가 분연히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