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심, 찾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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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서보
2015년 11월 405호
S와의 중국 여행에서의 일이다.
평소 S와 죽고 못 사는 그런 사이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같이 보내온 세월이 그렇게 저렇게 쌓이다 보니 서로의 성미를 잘 아는 정도라고 할수 있겠다.
여행의 초반은 순조로웠다. 두 사람의 마음은 여유로웠으며, 의견을 고집하고 서로를 괴롭히는 일 따위는 없었다. 일상을 떠나온 터라 S에게서 여유로움과 어린아이 같은 들뜸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히 내 마음에서도 S에게서 느껴온 어린아이 같음을 여유롭게 수긍해줄 마음이 들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우리의 여행은 괜찮았다.
문제는, 여행의 말미쯤에 터졌다.
전날 저녁 - 공양을 만족스럽게 한 탓으로 S는 아침공양을 포기한다. 숙박료에 포함된 1인 조식 뷔페권을 행사하러 나는 방을 나섰다. 어차피 조식권은 한 장이었다. S가 나를 위해 양보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S는 내가 공양을 하는 동안, 따뜻한 물에 몸을 좀 담그겠다는 말에 그 편이 이롭겠다는 생각이들어 나는 지체 없이 자리를 떴다
아침공양으로 어느 정도 포만감을 느끼며, 이제 막 쓴 커피를 한 모금 시작한 때에, S로부터 카톡이다.
“오실 때, 화상거즈를 좀 얻어주세요.”
……‘무슨 일이지?’
“얼음도요.”
……‘이 무슨 일일까.’
마시던 쓴 커피에도 아쉬움이 묻어 있다.
……‘조금만 참지’하는 생각부터 30초 사이 갖가지 생각이 스친다. 결심하고 자리를 일어나기 전
에‘화상거즈’라고 영어로, 또 중국어로 찾아 캡쳐 해둔다. 리셉션에 말을 통했더니, 거즈는 없다하고 연고를 준다. 아직 어떠한 상황인지 나는 모른다. 대략 소통하였더니, 도움을 주러 방으로 찾아오겠다고 한다.
“땡큐~”
곧 방으로 돌아왔더니, S는 아직 씻는 중에 있다.
‘다쳤으면, 어서 나올 일이지.’
상황이 짐작이 가질 않아 황당하다. 어서 나오라고 했다. S도 당한 일이 황당한 눈치다. 화상을 당한 부위가 제법 심각하고 넓다. 리셉션에서 보내온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챙긴, 얼음의 양으로는 터무니없다. S는 내가 공양을 하러 간 직후에 화상을 입었고, 이미 끙끙 거리며 냉수마찰 등으로 내가 공양을 하는 만큼의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뿔싸!’
애매하게도 옷을 걸칠 수도 없는 아랫배 부위, 눈으로 직접 본 상황은 이것저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게 만들었다. 찬 수건을 화상부위에 대고 화기를 식혀내는것이 그때의 할 일일 뿐이었다.
‘왜 그 와중에 화상 입을 일을 만들어. 이런 일을 만들어냈냐’고 탓하는 생각도 물론 들었다. 그도 잠시잠깐 이미 지난 일 그런 말은 해서 무슨 소용이람.
S는 고통으로 동동 구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기와 열기는 속으로 리얼하게 파고드는 모양이다. 이내옷을 입지 않은 부끄러움도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 되었다. 아파하고 동동 구르는 S를 위해서 내가 할 일이라고는 냉동실에서 차게 만든 수건을 화상부위에 대게 하고, 주기적으로 교체해 대는 일이었다. 부채질도 소용이 없었으며, 찬 수건도 이내 S에게는 소용없게 되버렸다.
마음공부라는 인연으로 만난 S와 나는 이런 일을겪고 있는 현실이 공부거리다. S도 나도 이에 통감한다. 이 상황도 조금 익어지자 통증이 조금 진정이 되는 때,
“왜 이런 일을 겪고 있지?”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였다. 눈앞의S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아픈 사람을 위해서는
아픔을 덜게 해야 하는 것이련만….
S의 어린아이 같았던 면이 고통을 겪느라 흡사 칭얼거림 같기도 하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S를 지켜보던 순간, 나는비로소 이 칭얼거림을 단 한번도 온전히 받아들였던 적이 없었음을 알았다.
있는 그대로 S가 S인 이 상태를 바로 보지 않고, 나의 관점에서 S를 바라보고 해석해 왔었다고! 해체될마음의 빗장이 바로 여기에 걸려 있음을 느꼈다. 온전히 참회의 마음이 일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 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내가 그랬어요….’
아픈 S에게 기대어 털어놓았다. 눈물이 절로 났다. 그러자 놀랍게도 여기서의 빗장이 풀려졌을 뿐인데,S에게도 변화가 일었다. 동시에 한결 고통은 잦아들었으며, 속이 뚫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그 이후의 시간도 여행에 대한 꿈같은 기대는 내려놓고, 온 종일 화상의 화기를 식혀가는 치료에 갈등없이 전념할 수 있었다.
S의 고통을 덜고자 더듬었던 마음의 길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해결해보겠다는 마음. 바로 그것에서 무수히 들어온 것만으로 그쳤던 보리심이란 것이 내게 일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리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