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분노의 사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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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15년 10월 404호
자본주의 체제로써 역사의 종말을 얘기했지만, 한국 사회의 역사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격랑에 휩싸여 뒷걸음질치고 있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시간을 사회와 버무리면 시간은 반드시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때론 거꾸로, 때론 맴돌기도 한다. 그 현상을 지금 우
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종교, 불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비는 어떻게 사회화되어야 하는가.
남북 관계는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다. 북한이 우리 측 지역에 매설해놓은 목함지뢰가 폭발해 두 젊은 군인이 발목을 잘라내야하는 부상을 입었다. 이에 항의해 대북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전군 동원령을 선포했다. 서로가 대응수위를 차차 높여갔다. 남북의 고위당국자가 며칠 밤을 새워 협상을 벌
여 사다리를 타고 오르던 긴장은 꺾이기 시작했다. 불과 한 달 전쯤의 일이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한풀 꺾일 즈음 중국은 세계를 향해 군사 시위를 벌였다. 중국은 일본, 베트남과 태평양 상의 섬을 두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평화헌법의 제9조를 폐기했다. 동남아시아를 침탈키 위해 전쟁을 벌였던 일본은 전쟁 가능 국가로 되돌아갔다. 이로써 일본은 어느 지역
이든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 개입을할 수 있게 되었다. 한반도 위기 시 일본은 자국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의 요청이 없어도 군사 행동을 할수 있게 되었다.
중국의 군사대국화에 맞서 일본의 대응도 그에 상응할 것이다. 미국은 일본 아베정권의 행보를 두둔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 팽창은 끝 모를 경쟁을 향해 치달을 것이 뻔하다.
한국경제는 장기침체 국면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한국은행의 통계를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2014년 28338달러에서 2015년 27000달러로 감소했다. 가계부채는 2010년 처분가능소득대비 127.7%에서 2014년 137.6%로 상승했다. 자영업자로 인해 가계부채 증가폭이 커졌다는 것인데, 자영업의 실패는 벼랑 끝에 내몰리는 것이어서‘핵폭탄’으로 비유된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이다. 해법 찾기는 더욱 난망한 상황이다. 정치권은 주도권 싸움에 매달려 합리적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게 될 수밖에 없다.
정치는 보수화되고 있다. 경기침체기, 군사적 긴장이 높을수록 보수화 경향을 띤다는 정치와 경제의 함수관계를 증명하고 있다. 유승민 사건에서 보듯 합리적 보수주의조차 들어설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 내년 20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있어 보수화는 가속화되고 사회는 더욱 경직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와 정치 상황이 이렇다보니 혐오사회의 징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 사회를‘헬조선’으로 비하하는 신조어가 떠돌고 있는 것의 원인을 따지기 전에 왜 그런지 피부로 느낄 정도다. 사회학자들은 단순한 비하 현상이 아니라 각종 사회 병리현상에 따른 자존감 상실, 분노의 표출이라고 진단하면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분노가 사회적으로 압축되면 큰 혼란으
로 폭발한다. 몇 가지 통계를 보면, 그럴 개연성이 짙다.
2013년 OECD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격차는 상위 10% 평균소득이 하위 10%대비 10.1배에 이른다. 삶의 질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근로시간은 세계 최장에 속하는데 1시간당 평균임금은 중국 0.6 달러, 한국 9.9, 캐나다 18.4, 일본 20.7, 미국 21.9,독일 30.6 달러이다. 일은 오래하고 임금은적다.‘저녁이 있는 삶’은 아직 한참 멀다.소득격차는 교육격차를 불러온다. 국가기구에 대한 신뢰도는 어떨까. 공정성의 상징이랄 수 있는 사법제도 신뢰도에서 우리나라는 27%만이 신뢰한다고 답했다.(OECD,2015. 9) 조사대상국 42개 나라 중 39위다.
콜롬비아, 칠레, 우크라이나가 우리나라보다 못했다.
세계 최저의 출산률(1.17), 최고의 자살률을 지속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약자를 향한 분노, 혐오와 분노의 상품화, 상황이 이러니 이민을 꿈꾸는 사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러한 때 종교는 고통 완화를 위한 사회적 역할을 하라는 호출을 받게 마련이다.
그런데 종교 또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2014년 한국 사회의 정치 및 종교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 종교별 신뢰도(5점 만점)는 천주교 3.39, 불교 3.32, 개신교 2.92, 원불교 2.41, 이슬람 2.17로 나타났다. 3대 종교가 모두 60점대에 머물러 있다. 낙제를 면하는 수준이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한국사회가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로 복지후생(30.1%),경제성장(27.2), 공정·평등(24.1%), 인권존중(21.2), 민주주의(17.8), 화합·조합(17.5)의 순으로 꼽았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는 빈부격차(44.3%), 부정부패(24.9), 정치 불안정(24.1), 범죄·일탈
(22.4)로 보았다. 먹고살기 힘든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종교는 사회적 현상의 유지에 기여하기도 하고, 변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지금의 한국 종교는 불교를 포함해 현상의 유지에 기여하는 측면이 강하다. 종교 내부의 변화를 이끌 역동성이 미미하다. 각 종교의 주류는 정치와 사회 권력에의 기생성이 심화되어 있다. 종교조차 신자유주의에서 자유
롭지 않다는 분석과 한탄이 나온 지는 오래 되었다.
일본의 신화학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에서‘전체성의 경제학’을 얘기한다. 신화학자의‘사랑의 경제학’이라고 할 만한데, 다음의 인용문이 이책의 핵심이다. “경제가 오늘날 생활의 합리성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현상의 특성으로 보이는 합리성은 표면에 나타난 가식적인 표정에 불과합니다. 경제는 표면에 가장 가까운 층은 합리성에 의해 포장되어 있지만, 그 뿌리는 어두운 생명의 움직임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전체성’을
갖춘 현상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전체성 안의 심층 부분에서 우리가‘사랑’이라고 부르는 것과 융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도 욕망의 움직임을 통해서 우리들의 세계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카자와의 생각에서 불교가 착안할 일이 있다. 자비의 경제학, 자비의 정치학, 자비의 사회학을 제안하는 것이며, 그것의 실험을 불교 안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금 불교는 중생의 고통을 완화하라는 호출에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