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동안거는 해인사 원당암에서 가야산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면서 화두와 씨름하였다. 화두는 번뇌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혀 힘을 쓰지 못하였다. 원당암에 오기 전 남해의 어느 선원에서는 그런 대로 잡히던 화두가 좌선의 시간패턴이 바뀌어서 그런지 나의 마음에서 번뇌에 밀려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몇 개월을 가야산에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희열을 느꼈으며, 이것은 아마 숙세로부터의 수많은 세월 속에서 심었던 발원의 종자가 싹이 트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해인사와 인연이 닿은 것은 아마 25년 정도 되는 것같다. 그 시작은 해인사선우회와의 만남이었다. 우연히 들른 홍제암에서 어떤 거사와 만나게 되면서 해인사와의 인연이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다가왔다. 매달 한 번의 선우회 법회를 통하여 참선에 대하여 배우게 되었으며, 그 당시 해인사에 주석하셨던 성철 큰스님의 영향으로 어느 때보다도 참선에 대한 열기가 대단하였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참선에 관한 법문을 많이 듣게 되었으며, 조사스님들의 어록을 많이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집중적인 참선수행을 해보고 싶었지만 바쁜 직장생활로 인하여 참선을‘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 게좋다’고 여기면서 마음속에서는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어느덧 20여년의 풍상을 겪으면서 인생의 많은 짐을 내려놓고 다시 불교성지 가야산 품으로 들어와 참선을 하게 된 것은 마치 어머니를 멀리 떠나 있던 자식이 다시 어머니 품속으로 돌아온 느낌과 같이 따스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야 인생의 무상함과 삼계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니 비로소 가야산이 입실을 허락한 것인지 해인사는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으며, 이곳에서 불성의 종자를 싹을 틔우고 잘 자라게하여 부처라는 열매를 맺게 하리라 발원해 본다.
금년 봄에 집안 정리를 하면서 선우회 초창기인1991년 1월부터 발행했던 선우회보를 발견하고는 감회가 새로웠다. 제14호까지 나오다가 중단되었는데 한때 회보편집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글자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당시에는 참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조사스님들의 법문이 마치 벽을 대하듯이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이제 언설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이나마 그 이면의 숨은 뜻이 느껴지게 된 것은 아마 그 동안 다양한 수행과 능엄경 공부를 통하여 참선에 대하여 약간의 이해가 생겼나 보다.
선우회보 창간호 표지에 달마대사의 그림과 함께 심외무불성心外無佛性이라는 제목 하에 대사의 혈맥론血脈論의 일부가 실려 있었다. 그 가운데 핵심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그대의 마음이요,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니, 끝없는 예로부터 행동하여 온 것 모두가 그대의 근본마음이며, 그대로가 부처일진대 이 마음 밖에는 따로 부처가 없나니, 이를 떠나서 보리菩提와 열반을 찾음은 올바르지 못하느니라.” 참선은 우리의 마음속에 부처의 종자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삼는다. 우리의 마음 밖에서 무엇을 구하는 것을 우리는 외도라고 부른다. 우리의 마음이 부처이고 마음이 일체를 만든다는 것을 투철하게 실증하기 위하여 오늘도 참선을 하는 것이다.
해인사와 선우회는 저의 인생과 수행의 여정에서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앞으로도 넉넉한 가야산의 품속에서 수행을 마무리하고 싶다. 나에게 해인사는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 모두 가야산의 청정한 기운을 듬뿍 받아서 불생불멸의 진여자성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