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쌀쌀해졌다. 바람에 치마 날릴 새라 치마 꼭 움켜지고 강의실로 향했다. <불교영어입문> 수업시간이다. ‘사성제’에 관한 기본적인 영어를 배우는 날인데, 교재에 괴로움의 관념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The notion of suffering does not represent a negative world view. It helps us to deal with the world as it is.’해석하자면,‘괴로움의 관념은 부정적인 세계관을 뜻하지 않는다. 괴로움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이다. 진도를 죽죽 빼고 있는데 학생이 소심하게 손을 들어 질문을 한다.“교수님!‘as it is’를 어떻게 해석하나요?” “‘as it is’는‘있는 그대아주 오래전, 인도의 힌두철학자 라마나 마하리쉬의“ be as you are”라는 책의 제목에 매료되어 그 사람의 철학에 빠졌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십년도 훨씬 전에 한국에서“있는 그대로”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 나왔고 최근에 다시 개정판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도 그저‘매료된’상태로 책을 읽었을 뿐 제목이 가지고 있던 본 뜻을 내 삶에 녹아내어 온전히 이해해 보려고 하지 않았었다.
열하게 사유하고 뒤집어보고 해야 하는 것인데, 초발심과도 유사한 마음을 일으키기만 하고 십 년이라는 시간만흘러버렸다. 스무 살의 어떤 아이는 그 하루에도 치열하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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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ca vassasataṃ jīve kusīto hīnavīriyo
요 짜 왓싸사땅 지웨 꾸시또 히나위리요
ekāhaṃ jīvitaṃ seyyo viriyam ārabhato daḷhaṃ.①
에까항 지위땅 세요 위리양 아라바또 달항
누가 백 년을 살지라도 나태하고 정진을 게을리한다면
열심히 정진에 힘쓰는 이의 하루 동안의 삶이 낫다.②《법구경 112》
yo ca vassasataṃ jīve apassaṃ udayavyayaṃ
요 짜 왓싸사땅 지웨 아빳쌍 우다야브야양
ekāhaṃ jīvitaṃ seyyo passato udayavyayaṃ.
에까항 지위땅 세요 빳싸또 우다야브야양
누가 백 년을 살지라도 일어남과 사라짐을 깨닫지 못한다면
일어남과 사라짐을 깨달은 이의 하루 동안의 삶이 낫다.③《법구경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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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들은 법구경 제 8장‘천(sahassa)’편에 나오는 시들이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수행하지 않는다면십 년, 아니 백 년, 아니 천 년을 산다한들 세상을‘있는 그대로’대하고, 현상을‘있는 그대로’이해하고, 상대를‘있는 그대로’볼 수 있겠는가. 짧은 하루를 산다 하여도 열심히 정진하는 삶, 일어남과 사라짐의 이치를 이해하는, 그런 반짝반짝 빛나는 삶이 낫지 않겠는가.
오늘, 월간 해인 원고를 마치면 곰곰이 사유해보려고 한다.‘있는 그대로’가 화두가 되겠지. 그리고 일상에서 상대를 만날 때도, 현상을 이해할 때도, 그리고 관계를 살필 때도 번잡한 내 마음 속의 감정이나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 삶을 마주하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하겠지. 오늘 밤은 명상하기 참 좋은 날이다. 귀한 하루로 마무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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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yo: 누가 ~할지라도. ca: 그리고. vassasataṃ: 백 년 동안. jīve: 살지라도. kusīto: 나태한. hīnavīriyo: 정진을 게을리 하는. ekāhaṃ: 하루. jīvitaṃ:
삶이. seyyo: 좋은 일. viriyam: 정진에. ārabhato: 힘쓰는. daḷhaṃ: 열심히.
② 약인수백세若人壽百歲 해태부정진懈怠不精進 불여생일일不如生一日 면력행정진勉力行精進 (한역법구경)
③ 약인수백세若人壽百歲 불지성패사不知成敗事 불여생일일不如生一日 견미지소기見微知所忌 (한역법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