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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원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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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취재·정리 | 정 영 2015년 10월 404호
서울 도심 한복판에도 가을 햇살이 가볍게 내려앉는다. 인사동을 지나자니 달콤한 과자 향기가 스치고 나들이 나온 이들의 다정하고도 설레는 말소리가 감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다. 그런데 길을 하나 건너 탑골공원의 뒷골목에 발을 들이니 그 가을 햇살도 무색할 만큼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낡고 오래된 건물과 간판들그리고 거기 더러운 오물들과 늙고 지친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다.
오전 11시인데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웅크린 노숙자들과 단출한 물건 몇 개 꺼내놓고 흥정을 하는 이들이 보인다. 지친 침묵 속에 간혹 대거리를 하는 소리들 그리고 시큼하고 그늘진 냄새들. 길 건너엔 여전히 파릇한 젊은이들이 넘치는데 이 세상엔 어떤 선이 있어 이들을 이렇게 나누어 놓은 것일까.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는 낡고 오래된 건물에 있다.
급식소 앞엔 벌써 50여명이 넘는 노인들이 말없이 줄을섰다. 먼발치에 서 있자니 시간이 갈수록 줄은 금세 길어진다. 건물의 계단을 오르자 푸근한 밥 냄새가 풍겨온다. 급식소에 들어서니 식사를 준비하는 봉사자들이 정신없이 움직인다. 밥 냄새와 함께 분주하게 오가는 말소리만 들으면 마치 잔칫집에 온 것만 같다. 탱화 속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염불이 흘러나오니 마음이 금세 편안해진다.
이 시간에 부처님이 왜 여기 와 계신지 알겠다. 11시 30분, 점심 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들리자 줄을섰던 노인들이 앞다투어 급식소로 들어온다. 원경 스님은 분주히 앞치마를 매고 배식을 시작한다. 오늘 메뉴는잡채밥이다. 스님이 그릇에 밥을 푸는데 봉사자들은 내내 걱정이다.
스님이 밥을 너무 많이 담으니 다른 사람들이 밥을 못 먹을까봐 걱정이다. 스님은 저 노인의 밥이 부족할까 걱정, 봉사자들은 다른 노인들의 밥이 부족할까 걱정. 모두 더 나누고 싶어서 걱정인 배식 시간이다. 30여명만이 바짝 붙어서 밥을 먹어야 하는 협소한 공간이다 보니 다른 노인들은 여전히 밖에 줄 서 있다. 하루에 150~180여명의 노인이 밥을 먹어야 하니 다 먹는 대로 나가고 또 들어오고, 들고나고의 연속이니 정신이 없다. 그렇게 밥을 나누니 그늘진 자리에도 어느새 온기가 퍼진다.
가을 햇살도 법당까지 찾아든다.
이곳은 22년 전 보리 스님이 끼니가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운영하기 시작한 급식소다. 그런데 보리 스님의 건강 악화와 재정난으로 올해 봄 문을 닫아야만 했다. 이곳에서 밥을 먹던 노인들은 하루아침에 갈 곳이 없어졌다.
오랜 시간 지속되던 불교 차원의 일이 한 사람이 손을 놓자 끝나버렸다. 얼마나 현실이 각박한지 여실히 드러나는 바다. 그러던 중에 이 소식을 들은 북한산 심곡암의 주지 원경 스님이 그 끊기려던 밥줄을 이었다.
“이곳은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예요. 거칠고 험한 지역인데다가 힘든 일이겠구나 싶었지만 나라도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마음을 냈습니다.”
이미 누군가가 다른 사업을 하려고 임대 계약을 한 상태였지만 원경 스님은 위약금을 물어주면서까지 이곳을 지켰다. 그리고 깨끗하게 새 단장해서 4월 1일에 다시 문을 열었다.
“밥을 드시더라도 존중 받는 마음으로 드시게 하려고요. 얻어먹는다고 해서 각박해서는 안 돼요. 깨끗한 자리에서 편하게 드시도록 해야지요.”
어른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메뉴도 다양화했다. 원래는 비빔밥 하나였는데 이제는 잡채밥, 카레밥, 짜장밥 등 다양해졌다. 하루에 한 끼를 드시는 분이 태반인데다가 매일 와서 드시는 분들이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단다.
“잘 드시고 가면 기분이 참 좋아요. 세 그릇 드시는 분도 있어요. 오래 굶으셨던 거죠.”그 러나 여전히 마음 아픈 건, 자리가 협소해서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그 비를 다 맞으면서도 밥을 먹기 위해서 줄을 서요.
한 끼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몰라요.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딨냐고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건 현실을 너무 모르는 얘기예요. 비를 피할 수 있는 대기실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니, 그게 제일 딱한 노릇이에요.”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문을 연다. 복지재단이나 다른 급식소는 공휴일 명절 휴가철이면 문을 닫는다. 복지사들도 봉사자들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사회에서 최악의 환경에 놓인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굶어야만 한다. 식사는 쉬어야 하는 일도 아니고 멈춰선 절대로 안 되는 일인데도 말이다.
“국가에서 하는 복지가 진정한 복지인가 싶어요. 이곳에 있다 보니, 법과 제도로써 할 수 없는 것도 해야 하는게 진정한 복지란 생각이 들어요. 여긴 야전 복지를 하는 곳이에요. 뒷일은 나 몰라라 하는 복지가 아니라 감싸 안아주는 복지가 필요한 곳이에요. 최후에 몰린 이들인데 그들을 또 어디로 가게 하겠습니까.”
명절엔 떡국을 끓이고 송편을 만든다. 가족의 붕괴로 인해서 혼자가 된 외로운 이들에게 음식으로나마 위안을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명절 분위기를 낸다. 다른 급식소는 물론 웬만한 식당조차도 문을 닫는 명절에 말이다.
“법과 제도로 할 수 없는 복지라면 종교인이 해야지요. 일반 사회복지의 개념과 범주를 넘어서야 해요. 어머니가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데, 하루에 한번만 젖을 먹고 하루에 한번만 포옹하라고 한다면 그게 사랑인가요. 사랑은 제도에 갇혀 있어선 안 돼요. 사랑은 인간의 마음이라서 구름처럼 형태 없이 흘러가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늘이 되기도 하고 비가 되기도 하고. 종교의 복지는 그래야지요.”
20여년이 넘게 문을 열어온 곳이지만 어디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 하니 재정적인 문제가 크다.
그러니 정말 사람의 마음이란 커다란 힘으로만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원각사 급식소는 대한민국 수도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요. 여기에 밥 굶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지원을 받을 수가 없어요. 지자체에선 저 노인들이 자기 주민이 아니라면서 지원대상자에서 열외 시켜요. 서울시에선 노인들이 서울 사람이 아니라면서 제외시켜요. 그럼 저들은 누구입니까?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가요? 정치를 하면서 권력 다툼을 하는 이들은 자기한테 도움이 안 되면 외면해버리는 거예요. 법과 제도로 구축된 복지관만 지원을 받고, 법과 제도에서 밀려난 이들은 지원을 받지 못 하는 게 현실입니다. 자식이 있어 기초수급도 못 받고 늙고 병든 이들은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곳은 복지의 사각지대입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기 밥 한 술을 더는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꺼내놓는 후원금, 그리고 원경 스님과봉사자들의 힘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다. 그들이 외면할수록 더 강렬해질 것이다.
그래서 원경 스님은 이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점차 거두어 나갈 것이란다. 지금은 비록 낡은 건물에서 월세를 내며 살아가야 하는 형편이지만 ‘진흙 속의 연꽃’으로 회향할 것이란다.
“어쨌든, 와서 해보니, 저버릴 수가 없는, 이 사회 최악의 보루에 있는 최악의 노약자들이에요.
우리가 못 보고 못 들었다고, 외면한다고 해서 그들이 없어지나요? 고통스러운 현실은 그대로 있어요. 지옥의 중생은 고사하고 지금 내 눈앞의 이 지옥부터 구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경 스님은 승가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지난해까지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로 일하며 종단 산하의 복지관 관리 감독과 재난구호활동을 했다. 그러나 원경 스님은 무엇보다도 문화 포교에 있어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산사음악회의 효시로 불리며 절집 공연 문화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그것은 모두 원경 스님이 워낙에 예술가의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시인이자 찬불가를 직접 작사 작곡하고 부르는 음악인이기도 하다.
“미래는 문화와 복지의 사회라고 봅니다. 불교는 이 두 가지 일에 주력해야 해요.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환원되고 소통되게끔 역할을 해야지요. 스님들이 사회를 등지니까 사회에서 버림받는 거예요. 연기緣起를 말하면서 왜 사회를 등지나요. 사회를 위해서 무얼 할까 고민하고 행동해야지요. 현실 밖에 불교가 있는 게 아니고 불교 밖에 현실이 있는 게 아닙니다.”화과동시결花果同時結,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는다는 뜻이다. 깨닫고 나서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하면 이미늦다. 그러니 수행과 포교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란다. 수행을 통해 삶이 변화해야 할 것인데 실천은 안하고 평생 성찰만 일관하는 것은 관념불교일 뿐이란다.
“덕을 베푸는 걸 수행과 별개로 생각하니 불교가 생생하게 살아 있지 못한 거예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의 빛과 향기를 내면서 살아가면 진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노보살님 다섯 분이 원경 스님을 찾아왔다. 마주앉아 차를 나누고 살갑게 이야기를 나눈다. 20여 년 전부터 원각사 급식소에서 봉사를 하던 보살님들이란다. 98세의 할머니도 계시니 야전 복지에 있어선 원경 스님보다도 아주 한참 선배님들이시다. 이분들은 가끔 찾아와 급식소가 문 닫지 않게 해준 원경 스님을 다독다독하시는 모양이다. 원각사의 살아 있는 신장님들이신 것이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자리에 원경 스님은 혼자 말없이 앉으셨다. 왕관도 없고 황금도 없는 이 텅 빈 자리가 행복하단다. 텅 비었기에 온 우주 법계가 다 깃들었으니 이토록 행복하단다.
그런 스님께 여쭙는다.
요즘은 뭐가 제일 좋으십니까?
“가을햇살 바라보는 거요. 천지가 주는 미소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