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수사스님께 이 이야기를 듣고 한참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부분으로 생각하여야
옳은 것일까. 최근 읽은 책 중에 써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선교일치(禪敎一致)와 사교입선
(捨敎入禪)에 관한 내용으로 책의 논지는 이러했습니다. “선(禪)이란 부처님의 깨달음을 말없이 드러낸 것이고 , 교(敎)란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말씀으로 표현하신 것이기에 선(禪)과 교(敎)는 땔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 문장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화두란 것이 말 이전의 것이지만 부처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의 생각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멀지 않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끼워 맞추기 식의 생각을 진행하였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의 연기(緣起)에서 조금 더 나아가 조건이 멸하면 법 또한 멸한다는 생각을 하니 병속의 새를 구하려 병을 없애려면 그 조건이 되는 것을 없애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곤 그 조건인 새를 주웠다는 것이 12연기 중에 취(取)이며 그 취(取)를 없애면 조건이
사라지는 것이니 새를 주웠다는 생각을 잊어 버리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12연기에서 현재 5과인 취取를 없애면 그 뒤에 오는 미래 2과인 생(生)이 없어지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병속에 있는 새는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며 병 속은 비어있다라는 생각으로
고착되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 이 생각을 교수사 스님께 말씀드리니 단번에 ‘아니다’라는 매정한 대답만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끼워 맞추는 식의 생각은 禪이 아니라는 것 ...
다시 올라온 선방에서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잘 풀렸던 생각들은 쓸모없는 잡념이 되어
머릿속을 어지럽혔고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는 저에게 이 문제가 너무 어려운 것은 아닐까하며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루 남짓 시작도 하지 못하고 풀이 죽어 툇마루에서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때 윗반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선이란 것은 사탕을 먹는 것과 같아서 처음 사탕을 입에 넣었을 때는 달콤함이 입 안 가득 맴돌고 , 조금 먹다 보면 혓바닥이 단맛에 익숙해져 무슨 맛인지 잘 구분을 못하기도 하다가 , 조금 더 먹어 사탕이 작아지면 그것을 깨물어 볼까 그냥 먹을까 고민도 해보고 , 마지막에는 혓바닥에서 사라져 사탕을 입에 넣고 있었는지도 모르다가 물을
먹었을 때 문득 사탕의 향이 되살아 나는 것과 같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제 생각이 사탕을 먹고 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사탕 껍질만 핥고 있던 것을 아닐까 생각 되었습니다.
그래서 몇 일 남지는 않았지만 생각을 좀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 보려 노력했습니다.
‘새를 감싸고 있는 병은 무엇인가’ ‘병은 무엇인가’‘병은 왜 새를 메어놓고 있는 것인가’
집중이 잘 안될 때도 있고, 수마(睡魔)에 견딜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 깨어 있는 동안 만큼은
병 그 자체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병 속의 새가
자연스레 꺼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값비싼 도자기이다. 깨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병에 집중을 하였지만 그 병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그냥 내 마음에서 새를 가려 놓기 위해 만들어 놓은 어떤 경계나
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병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새를 보았습니다.
병속에 있었다기엔 너무 작은..
그 새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불성이 있고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법화경의 말씀에서 볼 수 있든 우리도 모두 마음속에 작은 새 같은 佛性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자신의 욕심이나 핑계에 가려져 그 새를 보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을
병속의 새에 비유하여 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런 생각을 하니 그저 한가로이 삶을 보내고 있던 자신이 부끄러워 졌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고 말조차 꺼낼 수 없을 만큼 여느 병보다 커다랗고 휘황찬란하던 제 병이 부끄러워 졌습니다.
삶을 살면서 우리는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덮고 가리고 치장하는데
힘쓰기만 합니다. 병속의 새에서 병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덮고 가리고 치장하는 것보다
본질을 보고 , 진정 보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삶이 더 값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병에 가려진 새를 보고 그 새를 병 안에 가두지 않으려 노력하고 키워 나간다면
우리도 언젠간 성불(成佛)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비록 작은 새의 날개짓이나 , 언젠간 삼계를 뒤덮을 飛上이 될 것이라 믿으며
글을 마칩니다.
이런 문제를 깊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교수사 스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