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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그 순간처럼 살아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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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 법구경 - 김서리 2015년 09월 403호
어제는 종일 비가 오더니 오늘은 하늘이 열리고 녹음 우거진 풍경이 선명히 드러난다. 경주 동국대학교 정각원 법당에 혼례가 있다하여 한 줄기 바람 되어 잠시 구경하러 가는 길이다. 2층 법당에 가니 신랑 신부 직계가족만 곱게 앉아있다. 주례도, 집전하는 스님도 없이 신랑 신부가 모든 의식을 진행한다 하여 궁금하던 참이었다.
“오늘 저희 ***과 ***는 불교식 혼례를 올립니다. 기존의 유교식이나 서양식 혼례가 아닌 불교식 혼례를 올리는 이유는 불교를 공부하는 두 사람이 오늘 부부로 인연 맺는 것을 부처님께 고하고 배운 바를 실천하면서 살고자 함입니다.” 라는 멘트를 시작으로 불교식 혼례가 시작되었다. 삼귀의례와 육법공양이 이어졌다.
육법공양물 즉, 향, 등, 꽃, 과일, 차, 쌀, 이렇게 각각의 공양물을 양가 가족 구성원 두 명씩 나와 부처님 전에 올리고, 각각의 공양물이 올려 질 때마다 각 공양물의 의미를 신랑 신부가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공양물이 가진 의미를 앞으로의 삶 속의 발원으로 녹여내어 가족들 앞에서 서원을 세웠다. 그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렸지만 차분하게 흐르고 있었다. 양가 가족 구성원 모두 육법공양에 동참을 해서인지 다들 얼굴이 밝아져있다. 그리고 신랑 신부를 환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서 고불식과 헌화의 차례이다. 깊은 사랑과 보살심으로 부부되기를 부처님께 서원하는 고불문을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부처님 전에 낭송한다. 그리고 불교식 혼례 즉, 화혼식花婚式에서 부부가 되는 결정적인 의식인 헌화가 이어졌다. 이 헌화는 부처님 전생담인 선혜보살과 구리선녀의 일곱 송이 꽃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헌화에는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선한 공덕을 지으며 함께 보살행을 할 것’이라는 서원이 담겨있다. 이렇게 고불식과 헌화 후에 신랑 신부는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 부처님께 부부됨을 고한 후에는 서로 반지를 끼워주고 신랑 신부가 마주 보며 삼배를 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부부가 되었다...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법당에서 하는 불자들의 결혼식을 보니 그저 담담하다. 다른 결혼식에서처럼 신랑 신부가 화려하게 옷을 입고 고운 자태로 가만히 있다가 사회자의 세련된 진행에만 맞춰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혼례의 전개에서 클라이맥스에 달했을 때 흘러나와주는 결정적인 음악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하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신랑 신부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 사람 마음은 꽉 차있다. 그 누구보다 곱게 마음단장이 되어있고, 감정은 클라이맥스에 달했으며, 서로를 위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 담담했던 결혼식 이전에 그들이 모든 것을 직접, 하나씩 다 준비하면서 채워온 그 시간들 때문이었다.
짧은 30분이라는 시간을 채웠던 모든 것들이 신랑 신부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혼례를 계획하면서 가족들을 설득해가던 순간들, 의미 있는 예식 장소를 정하기 위해 두 사람만의 추억들을 되짚어 본 순간들, 예식일시를 정하면서 수많은 일정들을 맞춰보던 순간들, 육법공양물 하나하나 살펴보고 주문하고 구하러 다니며 생각을 주고받고 서로를 이해해 가던 순간들, 공양물을 올릴 때마다 읊을 발원문을 함께 써내려가다 마음이 딱 맞는 때에 마주보며 빙그레 웃던 순간들, 고불문을 작성하면서 부처님과의 인연과 불교를 통해 맺은 인연들을 또 다시 새기던 순간들, 헌화를 위해 부처님 전생담을 다시 찾아 읽으며 감히 그 헌화를 모방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부끄럽지 않게 살리라 함께 다짐하던 순간들, 그리고... 혼례 당일 아침까지 이 예식이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 수많은 시나리오를 서로 짜보면서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던 그 마음... 그 마음을 서로 보듬어 주던 순간들. 그 순간들이 다 쌓이고 쌓여 이 두 사람의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소박해보이지만 깊은 신념이 드러나는 그들의 서원이 오래도록 제대로 지켜지기를 바랄 뿐이다. 이 화혼식의 신랑 신부가 염두에 두어야할 내용이 담긴 법구경 시를 하나 소개하겠다.

yaṃ kiñci saṭhilaṃ kammaṃ saṃkiliṭṭhañ ca yaṃ vataṃ
양 낀찌 사틸람 깜망 상낄리탄 짜 양 와땅
saṃkassaraṃ brahmacariyaṃ na taṃ hoti mahapphalaṃ.①
상깟싸랑 브라흐마짜리양 나 땅 호띠 마합팔랑

부주의한 그 어떤 행동도 때 묻은 그 어떤 서원도
확신 없는 [그 어떤] 종교적 삶도 큰 결실이 없다. ② 《법구경 312》

행동이되 주의 깊은 행동이어야 하고, 서원이되 티 없이 순수한 서원이어야 하며, 종교적 삶이되 신념이 깊은 종교적 삶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 모든 것들이 공덕의 씨앗을 품고 있다가 제대로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오늘 본 예식은 혼례의 한 순간을 즐기는 축제가 아니었다. 살아온 삶의 땅에 묵직하게 발을 데고 앞으로의 순간순간을 잘 맞이할 서원을 세우는 자리였다. 서원을 세우는 그 순간처럼, 그 순간대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한 줄기 바람이었던 나는 신부의 몸과 마음에 깃들어본다. 그리고 예식에 썼던 모든 물건들을 다 챙기고 법당 정리를 하고 부처님께 인사를 드린 후 법당 문을 곱게 닫고 나왔다. 세웠던 서원을 부처님께도 두고 내 가슴에도 깊이 품으면서 그렇게 법당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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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yaṃ kiñci: ~하는 어떤 ~도. saṭhilaṃ: 부주의한. kammaṃ: 행동은. saṃkiliṭṭhañ: 때 묻은. ca: 그리고. yaṃ: ~하는 것. vataṃ: 서원은. saṃkassaraṃ: 확신이 없는. brahmacariyaṃ: 종교적 삶은, 신성한 삶은. na: ~없다. taṃ: 그것은. hoti: 있다. mahapphalaṃ: 큰 결실.
②인행위만타人行爲慢惰 불능제중노不能除衆勞 범행유점결梵行有점缺 종불수대복終不受大福 (한역법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