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에서는 ‘개구즉착(開口卽着)’, 입을 여는 즉시 그르친다는 준엄한 경책이다. 이로써 삿된 견해를 다스렸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 입을 다물라는 의미에 머물러서는 이 또한 그르치는 일이다. 깨달음의 세계를 말과 글로써는 능히 드러낼 수 어렵다는 인식의 표현이다. 배고픈 자에게 밥과 김치에 대해 온갖 표현을 동원해 설명했을지라도 한 숟갈 입에 넣는 것에 미치지 못함이다.
침묵은 위대하다. 그리고 말과 글도 위대하다. 침묵할 때는 우레와 같이 침묵하고, 말할 때는 침묵 속에서 얻은 지혜를 쏟아내야 한다. 글로써도 그렇다. 지금 침묵과 말과 글을 이야기함은, 지금 우리 종단에 말과 글 또한 우레와 같은 침묵처럼 활발하게 울려 퍼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즐겨 하셨다. 거리의 삶은 곧 말씀의 삶이었다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곳 저곳을 다니시며 사람을 만났고, 만나서는 대화를 나누었다. 제자들에게 먼저 물으라 하셨고 답하셨다. 임종을 앞둔 가운데서도 뵙기를 청하는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돌아가실 즈음, 마지막 제자가 된 수밧따를 맞아 문답을 나누는 장면이다. 수밧따는 붓다께서 곧 열반에 드신다는 소식을 듣고 뵙기를 청했다. 아난다는 위중하므로 친견할 수 없다고 물리치려 한다. 붓다가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난다, 노인을 막지 말라. 수행에 관한 의혹을 풀려는 것이니 번거로울 게 없다. 그가 나의 설법을 듣는다면 반드시 유용하리라.” 붓다는 수밧따에게 팔정도를 설하고 “내가 29세에 출가하여 오직 꾸살라를 찾아 금욕‧명상‧지혜를 닦으며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내 가르침의 핵심이요, 이 길을 떠나서는 싸마나의 삶이란 없습니다.” 어지간한 이라면 이쯤에서 대화를 멈췄을 것이다. 그러나 붓다는 자상하게 다음과 같이 이른다. “수밧따여, 다른 교위를 믿다가 우리 상가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대략 4개월 동안 견습 기간을 거치며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행이 훌륭하다면 그 이전도 가능합니다.”[장종천 편역, 땡큐 붓다, 888~889쪽]
선종에서는 말보다 침묵을 귀히 여겼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선종사는 선종어록사라고 할 만큼 무수한 말과 글들로 엮여 있다. 세계 어느 종교를 보아도 불교와 선의 전통만큼 말씀을 많이 남긴 종교전통은 단언하건대 없다. 깊은 침묵만큼 말과 글로써 법을 전하고 받았던 것이다. 아울러 불교는 침묵의 종교다. 말 없음 속에서 깨달음을 구했다. 또한 불교는 말과 글의 종교다. 멀리 갈 것 없이 팔만대장경이 단적으로 증명한다.
독재자는 말을 지배한다. 뛰어난 웅변가이자 선동가였던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을 말로써 지배했다. 게르만족 우월론을 펴 증오와 광기로 몰아넣었다. 대항했어야 했다. 대항의 무기는 말과 글이다. 현대의 독재자는 언론을 지배하려 한다. 국민들의 말과 글을 빼앗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전해주는 것을 보고 듣기만 하라고 윽박지른다. 우리 사회는 6.25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깜깜한 밤에 느닷없이 들이닥쳐 후레쉬를 비추며 어느 편인지를 붇는다. 묻는 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나. 입은 얼어붙는다. 아무 말도 못하고 죽음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 장면을 보고, 그 얘기를 듣고 전쟁을 헤쳐왔다. 살아남는 일의 첫 번째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체화했다. 끝이 아니었다. 남북의 분단은 최소한 말의 반을 앗아갔다. 해방 후로부터 70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뼈와 핏속에 자기를 감춰야 산다는 인식이 생존의 법칙으로 박혀 있다.
산중은 말에서 자유로운가. 산중이라고 하여 한국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정화의 그림자가 덧씌워졌다. 정화는 폭력의 악순환을 구조적으로 심어놨다. 폭력은 유용한 수단으로 쓰였다. 대처승을 몰아내는데 폭력을 앞세웠다. 폭력이라는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폭력배들을 불러들였다. 말과 글의 자리를 폭력에 내주었고, 대물림되었고, 구조화되었다. 사교입선은 교학을 버리는 것으로 잘못 이해돼 글과 말을 경시하는 폐단을 낳았다.
초기불교의 갈마 전통은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다. 경계 내의 대중 전원이 참석해 공동체의 문제를 논의해 결정하는 장면이란 가히 장관이다. 초기불교 공동체는 공화주의를 표방하지 않았지만 민주공화적으로 운영됐다. 세기경을 보면, “급기야 쌀을 훔치고 다른 구역의 경작지를 침범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질서가 무너지자 그들은 통제할 중재자를 옹립했다. 서로 합의하여 가장 능인한 자를 추대하고 그를 백성의 주인인 마하 삼마따(통치자)로 불렀다. 이 삼마따가 사까족의 선조 고따마이다.”[장종천 편역, 땡큐 붓다, 27쪽] 서로 합의하여,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지도자를 추대했던 것이다.
이 전통은 지금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산중공의제로서 산중총회, 임회라는 제도로 살아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보다 더 오래된 지혜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활치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말 없음이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산중을 어지럽히고, 종단을 어지럽히면 내가 속한 공동체의 질서를 훼손한 것이므로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터인데, 말 없음 속으로 스며들고 만다. 말씀은 진리를 전하고 받는 데에만 있지 않다. 일상의 삶이 진리에 부합하도록 이끌어내는 것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진리가 어찌 일상의 누추함 위에 떠도는 공중부양이란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침묵은 위대하다. 무문관 수행은 침묵하는 중 화두 참구에 나아가는 방법으로 예부터 찬탄받아 왔다. 이생에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화두 타파에 일념으로 매진한다는 것은 얼마나 거룩한가. 그러나 말을 앞세워 질서를 훼손하고 대중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의 음모를 외면하는 침묵은 위대한 침묵이 아니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무책임이며, 무기력을 감추는 나약함일 뿐이다.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말을 나누고, 그러한 가운데 해법이 발견된다. 독재자이거나 음모가들은 깨어난 대중의 말을 무서워한다. 침묵하는 가운데 얻은 지혜는 말과 글이 되어 공동체의 건강성을 회복하는데 회향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