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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승과 업과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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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금선┃해인사승가대학 1학년 2015년 08월 402호
처음 불교를 접한 것은 십여 년 전 모친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따라간 것이 계기였습니다.
수행을 해보려는 것도 아니었고 불교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가족이 가니 같이 가야한다는 말에 갈 수 밖에 없었던 .. 아무 관심 없이 멍한 표정으로 법당 밖을 서성이다 집에 오기 일 수였던 ..

그러던 중 처음 불교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것이 2003년 겨울 저녁에 본 동승이라는 영화였습니다.
따뜻한 방 안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 가운데 본 영화는 많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내 모습과 너무나 대조되는 어린 동승의 모습 ...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다림..
과연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 ..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생각을 갖게 했던 부분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동승 도념이의 모친은 파계한 비구니이며 도념의 아버지는 동물을 살육하는 사냥꾼이라는 것, 그 부모가 어린 도념을 절에 버리고 갔다는 것이 도념의 업이라는 것 , 다른 하나는 인연이라는 것 이었습니다

업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로 업은 “불교에서 중생이 짓는 선악의 소행 , 혹은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를 가리킨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화목하다면 화목한 가정 하지만 그 당시의 저는 항상 불만에 가득했고 특히 절에서 말하는
업보라는 것에 대한 반발이 심했습니다.
“내가 전생에 해 온 행동에 의해 지금 나의 상황이 오는 것이다“.
마치 운명론적인 듯한 이 말이 제가 처음 업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어느 스님이 저에게 해주셨던 말입니다.

전생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현생의 생활이 결정된다.
저는 이렇게 받아들였고 지금의 제 문제점이나 상황이 모두 과거에서 온 것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살아가야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노력이 부질없는 것이라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수계교육원에서 수계에 관한 영상을 보며 사라졌습니다.
몇 년 동안의 업에 대한 이질감은 영상에 나온 한 문장으로 인해 풀렸습니다.
“전생의 행동으로 현재가 결정된다” 에서 전생이 과거의 생을 의미하지만 그 과거의 범주가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세의 하루 전 일수도 있고 바로 5분전 일 수도 있다는 말 ..

이 말을 들으니 여태껏 내가 가지고 있던 업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업은 운명론적인 입장에서 이미 정해져 있으니 노력 해 보아야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라 5분전 , 10분전 , 하루 전의 내 말과 행동이 지금의 내 상황을 만드는 것이니 항상 좋은 말과 바른 행동을 해서 나를 탁마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인식이 바뀌니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한번 더 생각하고 조심해서 행동하게 되었고 지금 내 부정적인 상황이 바로 전에 어떤 행동 때문에 온 것이라 추측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아직 공부가 부족해 동승 도념의 업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으나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간다면 틀림없이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됩니다.

두 번째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인연에 관한 것입니다.

절에 찾은 미망인에게 자신을 수양아들로 데려가라고 말하는 도념.. 그 말을 듣고 여인이 도념에게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스님 마디마디 맺혀있는 윤회를 끊어내고 세상의 모든 것을 어머니라고 생각 하세요
그러면 기다릴 것도 없고 외로울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세상에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 아주 많단다. 세상에는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많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
법당 뒤에 목련 꽃이 몇 번이나 피고 져도 백화 나무에 그은 금이 수십 개가 생겨도 내 것이
아닌 것은 오지 않는 거란다 너도 , 나도 , 누구나 다 그렇단다.”

제가 너무 어리고 혈기왕성했던 탓일까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노력했고 , 이미 잡은 것은 놓지 않으려 발버둥 쳤고 포기해야 할 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허우적대던 저였기에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 , 포기해야 하는 것의 의미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때론 삶을 살면서 손 안에 쥐고 있는 작은 것을 지키기 위해 손 밖에 비교할 수도 없이 커다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지만 결국 손 안에 쥔 것마저 사라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지켜보겠다고 아등바등 거리는 모습이 무상하리만큼 손쉽게 사라지기도 하고
시나브로 아쉬움을 남기며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포기의 끝자락에서 모기만한 아주 작은 혼잣말로 되뇌입니다.
“에휴 ..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 그만 놓아버려야지 ”

어릴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커가면서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있는 요즘 조금 더 이해가 되려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 가지려 하는 것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항상하지 않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결국 고(苦)이다.

그렇다고 인연 또한 업(業)처럼 운명론적으로 생각하여 “저것은 내 것이 아니니 갖기 위해
노력할 필요 조차 없다“라고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작은 것을 한번 더 생각하고 한가지면 충분한 것에 둘을 탐하지 않는
소욕지족하는 무소유의 삶을 사는 것과 , 포기할 것에 애착과 미련을 두지 말고 과감히
버릴 수 있는 것이 인연을 바르게 이해하는 삶 아닐까요.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해 바르게 이해했다고 할 수도 .. 옳은 말이라 결정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배워 옳게 바꾸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금부터 해 나가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