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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인물의 반이 이곳에 있다 8 - 문중,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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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천추寶藏千秋 - 종현 2015년 08월 402호
조선왕조 마지막 궁녀였던 천일청(불명 : 정공심) 상궁은 1910년 해인사 궁현당과 관음전불사를 시주했고 당시 회광 스님이 세웠던 근대식 병원‘불교제중원’을 건립하는 데 막대한 시주를 했고 이후 경영상의 곤란으로 1924년 불교제중원은 경기여고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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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남일우南一祐 남주헌南周獻 남태순南太淳 남인구南麟耈홍류동 암벽에 1886년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남일우와 조부 남태순, 1808년 함양군수를 지낸 남주헌과 부친 남인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남주헌南周獻 1769(영조45)∼1821(순조21). 본관은 의령宜寧. 아버지는 돈녕부도정 인구麟耉이다.1798(정조22)년 사마시에 합격, 세마·호조좌랑·감찰을 거쳐 함양·무주·남원·임천 등의 수령을 역임하며 주로 외직을 맡아 치적을 남겼다. 특히1808(순조8)년 함양군수 재직시 암행어사에 의하여 치적이 보고되어 승서陞敍되고 이듬해 남원현감이 되어서는 진휼에 힘쓴 공으로 표창을 받았다. 문
장과 시부詩賦에 능하였으며 저서로는《의재집宜齋集》이 있다.
15. 조병현趙秉鉉 조봉하趙鳳夏
1833년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조병현은 홍류동 벽에, 그의 아들 조봉하는 낙화암 절벽에 큰 글씨로 새겨져 있다.조병현趙秉鉉·만영萬永·인영寅永·병구秉龜 등과 함께 풍양조씨 세도정치의 중심 인물이 되어 안동김씨安東金氏와 권력 다툼을 벌이는 데 앞장섰다. 1838(헌종4)년 예조판서에 올랐다. 다음해 병조판서·대사헌을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다. 이 때 그는 안동김씨를 배척하는 벽파僻派의 실권자로서 천주교를 탄압, 기해박해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조봉하趙鳳夏 1817년(순조17)~미상.
1866(고종3)년에는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도총부도총관都總府都摠管·예조판서禮曹判書·이조판서吏曹判書·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을 역임하였다.
16. 권학인權學仁 권극인權克仁 권익인權翊仁 취적봉에는 1800년대 안동권씨 인물인 권학인 권극인 권익인 삼형제가 새겨져 있다.
17. 이미李彌 이은李溵 윤광호尹光濩
1760년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이미와 삼정승을 지낸 형 이은 그리고 사위 윤광호가 새겨져 있다.
취적봉에 독보적으로 크게 이름을 새겼는데 그의 장인인 이미 역시 홍류동에 가장 큰 글씨로 각이 되어 있다. 문중의 특징인가보다.
18. 김계하金啓河 형 김계한金啓漢 김정진金鼎鎭
김계하金啓河는 함경도관찰사를 지낸 인물이다. 본관은 강릉江陵. 할아버지는 상벽尙壁이고, 아버지는 정진鼎鎭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1798(정조22)년 생원으로 제술부문에서 1등 함으로써 전시에 직부直赴하여 춘당대친시春塘臺親試에 을과로급제하였다.
1813년 강계부사江界府使로 나가 성실히 업무를 수행한 결과 가자加資되었으며, 그 후 의주부윤義州府尹과 개성유수開城留守를 거쳐, 1827년에는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다.
19. 오치성吳致成 오치익吳致翼
1810년 상주목사를 지낸 오치성과 동생 오치익
20. 윤수정尹守正 윤희대尹希大
첩석대에 1845년 합천군수를 지낸 윤희대와 그의 부친 윤수정이 새겨져 있다.
21. 윤희후尹羲厚 윤이후尹頤厚 윤경의尹景儀 윤경성尹景成
홍류동 암벽에 1771년 의성현감을 지낸 윤희후와 그의 아들 윤경의, 윤경성 그의 형 윤이후가 새겨져 있다.
22. 임백수任百秀 임사준任思準 하용제河龍濟 하겸락河兼洛
1861년 사간원 대사간과 이후 형조판서刑曹判書·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한 임백수任百秀와 그의 아들 임사준任思準의 이름이 홍류동 치원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옆에는 항일운동을 펼쳤던 산청 단성출신의 하용제河龍濟와 그의 부친 하겸락河兼洛이 있다.
하용제河龍濟 1854(철종5)년 6월 29일∼1919년 11월 8일.
조선 말기 무신·유학자·항일운동가로 자는 은거殷巨이고, 호는 약헌約軒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며, 출신지
는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이다.
23. 이대원李大遠 이계원李啓遠
1780년 진사에 오른 이대원과 이계원 형제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24. 홍류동 상류 독립된 바위에 1868년 좌부승지를 지낸 정현유鄭顯裕와 동생 정현재鄭顯載·정현오鄭顯五가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