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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정상오 2015년 08월 402호
밍크코트를 입고 비 오는 거리를 다니는 것보다, 가벼운 옷차림이 편안하다. 용도에 맞는, 내
몸에 맞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처럼 우리 협동조합의 건축가들은 생활을 담는 공간에
집중하고 있다. 일을 해보니 디자인이 생활을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활이 우선이다.
대화, 걷기, 웃기, 노래하기, 비를 피하는 곳, 밥먹는 장소, 꽃을 피우는 마음 같은 것이다. 잠시
쉬어가는 그늘과 길도 같은 요소들이다. 우리들이 만드는 건축물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장
소들이 곳곳에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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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둥지를 틀고, 개미가 집을 짓는 것처럼 사람들도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집과 공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 이라는 전문분야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집과 마을을 투기와 재산증식의 가치로 인식하고 \'분양\'을 받고 있다. 살아가는 장소가 아닌 사고 파는 물건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와 가족, 어떤 장소만의 특별함은 사라지고 있다. 어디에 가든 같은 것이 만들어 지고 있다. 현재의 건축문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들이 딛고 서있는 땅과 집, 건축에 대해 되돌아보고 싶은 것이다.

꿀벌 사회에서는 1년에 한 번 분봉을 한다. 새로 태어난 아기 여왕벌에게 지금까지 살던 집과 일족을 넘겨주고 엄마 여왕벌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간다. 이 때 집터 정찰대가 사방 수 십 킬로미터 이내를 샅샅이 살피고 다닌다. ‘집터정찰대’가 집터를 잘못 찾으면 그해에 꿀벌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얼어 죽거나, 번식을 할 수 없거나, 먹을거리가 없어서 굶어 죽는 일이 발생한다. 생존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

사람들이 집을 짓고 건축물을 만드는 것도 꿀벌들과 다르지 않다. 여왕벌이 분봉을 하듯이, 사용자의 눈높이로 살아가는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몸에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안내하는 꿀벌의 ‘집터 정찰대’ 같은 존재는 건축계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내가 몸담고 있는 건축회사는 협동조합이다. 건축물이 지어지는 수 개 월에서 수 년 동안 함께 의견을 나누고 결정한다. 꿀벌들이 8자 춤을 추면서 민주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집터를 찾아내는 것처럼 설계자, 시공자, 철근공, 배관공, 전기공, 조적공, 도배공, 목수, 석공, 페인트공, 정원사까지 현장에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건축물을 조성하고 있다.
혼자서는 발견하기 힘든 것을 집단지성(集團知性)으로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주요 관심사인 사람과 건물, 땅과 건축, 길과 사람, 공간과 특별한 장소 같은 본질적인 것들을 합의제로 찾아 간다. 이런 방식은 조합원들과 의견을 맞추어 갈수록 아주 재미난 과정이다.

건축가가 설계를 할 때는 머리속의 이미지를 도면화 하면서 scale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도면에 실물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축적을 이용하여 이미지와 계획을 담는 것이다. 종이 안에 0.01의 크기로 평면도, 단면도, 상세도, 입면도로 건축물을 표현 한다.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도면의 1cm는 현장에선 1m가 되기도 하고, 2m가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1대1의 현장과 0.01(1/100)의 도면 사이에는 무수한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협동조합은 건축주들이 현장에 자주 오도록 안내를 한다. 자주 오는 건축주는 우량 건축주, 자주 오지 않으면 불량 건축주라고 부른다. 도면으로는 이야기 할 수 없고, 생각으로는 추측할 수 없는 많은 건축적 변화를 현장에서 판단하고 선택하기 때문이다. 1/100의 도면 안에 이웃, 정원, 경사지, 빛, 물소리, 공동육아, 책 읽는 곳, 따스한 곳, 손길, 웃음소리 이런 정서들을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현장에서 건축행위라는 물리적인 변화를 통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어떤 장소로 구체화 될 수 있다. 각각이 연관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건축현장이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니 현장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건축주분들과 설계단계에서부터 시공 마무리 때까지 현장에서 자주 만나기를 희망한다.

밍크코트를 입고 비오는 거리를 다니는 것보다, 가벼운 옷차림이 편안하다. 용도에 맞는, 내 몸에 맞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처럼 우리 협동조합의 건축가들은 생활을 담는 공간에 집중하고 있다. 일을 해보니 디자인이 생활을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활이 우선이다. 대화, 걷기, 웃기, 노래하기, 비를 피하는 곳, 밥먹는 장소, 꽃을 피우는 마음 같은 것이다. 잠시 쉬어가는 그늘과 길도 같은 요소 들이다. 우리들이 만드는 건축물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장소들이 곳곳에 스며있다.

새와 벌, 개미들처럼 스스로 집을 지으면 좋은데 사람들의 건축물은 절차가 좀 복잡하다. 인허가, 설계, 시공을 직접 하기에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 많다. 서로 협력하고 인정하면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잘 모르다보니 일방적인 의심을 하기도 하고, 끝없는 요구에 지칠 때도 있다.
건축주, 시공자, 설계자가 다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지 않다. 건축주의 의도를 설계자가 이미지화 하고 시공자는 1대1로 실현 시킨다.
우리 협동조합은 다르지 않음을 중요시 여기고, 이것을 풀어 가고 있다. “우리는 한 배에 타고 있다. 목적도 동일하니 보물섬을 향해서 함께 가자. 그 보물섬을 우리가 안내 하겠다. 나에게 필요한 건축물을 지었으니 집이 없는 이들에게 집 지을 돈도 십시일반(十匙一飯) 보내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건축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를 통해 세상의 건축문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그 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2009년 경북 문경에 소재한 j center의 명상원, 사무동, 전문 수련동, 법당, 요사채를 지을 때 경험한 스님들과의 대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드라의 그물망 같이 연결된 건축회사를 운영하는 밑바탕이 된 배경이다. 그 인연으로 2013년에는 지금의 코비즈건축시행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인도 성지순례에서 인도인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알게 되면서, 한 채의 집을 지으면 제3세계에 한 채의 집을 기부하는 일도 시작하게 되었다. 부처님이 성도하신 인도 비하르주 보드가야 시 인근에 꾸준히 주택을 기부하고 있다. 1만 채의 주택기부를 목표로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다.
2015년 현재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20여 채에 이르는 코하우징 주거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다양한 건축물들을 직접 설계하고 시공하고 사업 관리를 하면서 건축분야의 협동조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들이 기존의 건축시장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관점을 달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종속된 전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