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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정토사 회주 수성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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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취재·정리 | 정 영 2015년 08월 402호
팔만대장경은 우리나라의 국보이고 장경판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것은 보물이나 유산이라는 어떤 형태적 가치를 넘어서서 부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정토사 회주인 수성 스님은 그 팔만대장경에 담긴 뜻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서 34년째 팔만대장경의 원문을 디지털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팔만대장경은 기록문화입니다. 그것의 역사만 자랑하고 그 형태만 보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살려서 후학들에게 남겨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성 스님은 1960년대 초반에 해인사 장경각의 기도법사 소임을 맡았다.‘대장경의 무사 안전과 호국 불사’를 제목으로 하루에 네 차례 두 시간씩 기도를 했으니 하루에 여덟 시간씩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삼 년 동안 매일 장경각에 출입하면서 스님은 생각했다. 언젠가는 저 경전을 다 읽어볼 것이라고. 그리고 해인사 강원에 다닐 땐 늘 경전을 보면서 글자를 판독하느라 애를 먹었다. 의미를 새기기에 앞서 어떤 글자인지 찾아봐야 하는 게 일이니 공부가 쉽지 않았다. 마모되고 훼손된 목판으로 찍은 책이니 그 상태가 좋을리 없었다. 그때 수성 스님은 생각했다. 나중에 이것을 붓글씨로 깨끗이 써서 후학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그것을 인연으로 수성 스님은 34년째 컴퓨터를 이용해 경전을 복원하는 중이다.
“원본을 사진으로 찍어서 영인하는 것도 좋지만 현대의 기술에 맞게 복원해야지요.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하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수성 스님은 강원에서 공부할 때의 것들이라며 오래된 책을 꺼내 보여주신다. 그 시절엔 종이와 먹을 들고 장경각에 들어가 손수 목판에 종이를 대고 찍어서 공부할 책을 만들었단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목판 자체가 훼손된 터라 그렇게 찍은 책도 글자를 판독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쏟아야 했다.
“이걸 어떻게 읽을 수 있겠어요. 근데 안 보인다는 이유로 지금 그냥 지나가버리면 이 경전은 영원히 알아볼수 없게 되는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렇겠지요. 그러니 지금 복원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팔만대장경은 현재 영인본과 한글판이 발간되어 있다. 그러나 수성 스님은 현재 강원에서 보고 있는 영인본의 상태 또한 글자 해독이 불가한 것이 많으니 반드시 그 한자들을 깨끗하게 새로 써서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경전은 불법승 삼보 중 법보잖아요. 법당이 허물어져서 비가 새면 즉각 수리하는데 경전이 허물어져도 누구하나 복원할 생각을 안 하니 내가 절집에 사는 동안엔 해야지요. 경전은 나만 살고 가는 집이 아니라 후손들도 살아야 하는 집이니 그들이 살도록 고쳐놓아야지요.”
수성 스님은 후학 스님들이 깨끗하게 복원된 경전을 보면 얼마나 좋겠나 하신다. 그렇게 부처님 말씀을 잘 알아듣고 성불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나 하신다.
수성 스님은 장경각에서 3년 기도를 마치고 나와 대구로 갔다. 팔만대장경 사경을 목표로 삼았기에 바로 서실에 등록하고 2년간 서예를 배웠다. 악필로는 경전을 옮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1년 동안은 붓글씨로 대장경을 필사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당시에 컴퓨터가 보급되
기 시작한 것이다. 자판을 두드리기만 하면 사경이 되는 컴퓨터를 보고 스님은 다시 컴퓨터 학원에 등록해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저 사경에만 뜻을 둘 것이 아니라 대장경을 디지털화 해서 영구보존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더 큰 뜻을 품었다.
“그때는 하루에 10시간에서 15시간씩 작업을 했어요. 이 작업을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몰라요. 처음엔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잠도 아끼면서 했지요. 글자만 쓰는 것이 아니라 뜻을 새기면서 하니 내 수행법인 것이지요.”
예전에 강원에서 보았던 경전들을 다시 보게 되면서 스님은 그 뜻을 되새기게 되었단다. 같은 내용인데도 그때는 와 닿지 않던 것들을 지금 와서 또 다르게 알게 되니 모든 게 새롭고 또 경이롭단다.
수성 스님이 하고 있는 대장경 복원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판 한 장에 수백 자의 글자가 있으니 한 장을 복원하는 데에만 다섯 시간이 넘게 걸린단다. 하루 꼬박 작업을 해도 하루에 서너 장이 전부다.
경판의 글씨를 하나하나 컴퓨터에 한글로 입력하고 그걸 다시 한자로 바꿔서 재입력해야 한다. 게다가 육안으로 알 수 없는 한자들은 여러 판본들을 일일이 대조해 글자를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컴퓨터에 없는 한자일 경우엔 한자 두 개를 조합해서 쪽자를 한다. 그렇게 일일이 공을 들여야만 한다. 그렇게 초판이 완성되면 원고와 대조하고 교열을 거친다. 그것만이 아니다. 수성 스님은 편집도 경판 모양 그대로 앉힌다. 나중에라도 대조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오판이나 오류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모습이다.
“같은 경전을 두고서 세 사람이 한글로 번역을 하면 다 다른 세 개의 번역본이 나와요. 그렇기 때문에 원문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글은 시대나 장소에 따라서 바뀌지요. 백 년 전의 한글이 다르고 백 년 후의 한글이 달라요. 경상도 말이 다르고 전라도 말이 다르지요. 하지만 한문은 변하지 않아요. 뜻을 그래도 갖고 있는것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 등의 한문권 안에서는 다 통하지요. 그래서 한문 원전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수성 스님은 신념과 신앙으로 34년 동안 해온 이 작업을 게을리한 적이 없다. 통도사 소장의 능엄경과 금강경, 쌍계사 소장의 치문과 기신론과 원각경, 봉은사 소장의 화엄경과 경덕전등록과 선문염송집과 열반경과 종경록 등 총 4만여 장의 불경을 복원했다. 그것을 현재 13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그것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서 CD로도 만들었다. 그 지극한 작업을 하는 동안 수성 스님은 77세라는 고령이 되었다. 그러나 수성 스님은 오늘도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한다. 이제야 팔만대장경을 1/4 옮겨 적었는데 이제 체력이 예전 같지만은 않단다.
“내가 봐도 어떻게 이렇게 했나 싶어요. 한 글자 한 글자 쓰다 보니 한 줄이 되고 한 장이 되고 그게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내가 기초를 닦아놨으니 이제 후학들이 이 일을 계속해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 혼자서 하니 이렇게 오래 걸렸지요. 함께 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닐 거예요. 이젠 종단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수성 스님은 원력을 세우고 평생을 바쳐서 이 작업을 했는데 나온 결과물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이 없고, 원문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지도 못 하니 걱정스럽단다.
“난 학자도 아니고 박사 학위 같은 것도 없어요. 난 스님으로서 부처님 말씀을 반듯이 옮겨 적을 뿐입니다.”
한문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불교 학자라고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닐 것이다. 부처님의 뜻을 알고 그 글자를 새겨 넣으니, 학자가 아닌 스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성 스님은 젊은 스님들이 이 일을 계속 이어나가 주기를 마음 다해 바란다.
“꼭 한문 경전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한글 번역본으로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한문 경전을 전공하는 스님들도 있으면 좋겠어요. 한문 경전 학과를 따로 두어서 이것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팔만대장경이 영원히 보존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후세의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수성 스님의 바람은 그저 그뿐이다.
수성 스님은 삼국유사 원본도 그대로 복원했다. 목판은 불타서 사라지고 그 목판을 찍어 놓은 책이 도서관에 남아 있어 그것을 보고 컴퓨터에 입력한 것이다.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수성 스님은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군위의 인각사에 여러 차례 찾아가 일연 스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곤 했다. 마음으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행자로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걸 함으로써 돈이나 명예를 바랐다면 오히려 못 했을 거예요. 그냥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뿐이었어요. 이해관계를 따져야 하는 일이었다면 지루했을 거예요. 난 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지루했던 적이 없어요.
늘 신이 나서 했지요. 하다가 다 못 하더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진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지금도 내 힘이 닿는 날까지 계속해서 할 생각입니다.”늘 경전과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신도들에겐 가깝지 않은 스님이었고 젊은 스님들에겐 답답한 스님이었다. 그러니 현재 수성 스님 곁엔 상좌 스님도 없다. 그저 팔만대장경 복원이라는원을 세우고 평생을 살아온 스님일 뿐이다. 눈떠서 눈감는 순간까
지 부처님 말씀을 새기는 고독한 수행자일 뿐이다.
“절집에 들어온 걸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 절집 안에서 경전을 접하고 쓴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부처님의 제자로서 할 일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다가와 사는 동안 무엇을 했느냐 묻는다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저 깊은 산중의 한 스님은 대답 대신 주장자를 들어 보이시려나. 그 순간에도 수성 스님은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기
고 계시려나. 스님 발자국마다 부처님 말씀이 한 자 한 자 오롯이 새겨져 있으려나. 그럼 수성 스님은 저만치서 우리에게 그 발자국만 잘 따라오라 하지 않으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