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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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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의 5 - 최 스베틀라나┃카자흐스탄 2015년 07월 401호
제 이름은 최 스베틀라나입니다.
2002년에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에 처음으로 왔고 이제 한국에서 남편과 12살 된 딸아이와 계속 살고 있습니다. 보통 가정에서 태어났고 내 삶이 보통 삶 이라고 생각하고 특별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 이야기와 몇 가지 생각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저는 고려인 3세이고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조선에서 태어났습니다. 1901년생 제 할머니는 17살 때 러시아 땅에 넘어가게 됐고 러시아 동쪽 블라디보스톡에서 살게 되고 제 아빠는 1924년에 블라디보스톡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수학 선생님이었고 중국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의 집에서는 할아버지가 가르친 강의 노트를 할머니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다가 1938년에 스탈린 강제 이주로 카자흐스탄 땅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강제 이주 가기 전에 아무 죄 없는 우리 할아버지는 NKVD(소련 내무부)에 잡히게 됐고 사이베리아 쪽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잡힌 날 이후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아빠와 아빠의 2명 여동생들을 혼자서 카자흐스탄에서 키우게 됐고. 다 커서 우리 아빠가 역사 선생님이 되고 엄마를 만났고 1967년에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저는 태어났습니다. 아빠는 역사 선생님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늘 우리 땅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빠가 이 마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아빠의 소망이 내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그 아빠의 말이 내 귀에 들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아빠의 말 때문인지 내가 한국에서 뿌리를 내렸습니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나의 현재와 미래입니다. 역사를 알아보고 정말 한국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누구나 나를 외국인으로 보지 않아, 살면서 자주 듣는 말들이 있는데‘한국사람 다 되었다’라는 말이 왠지 내 마음을 슬프게 해줍니다. 거의 13년 한국에서 살고 한국어는 아직도 서툽니다. 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글 쓰는 것을 몰랐습니다. 학교에 입학하고 할머니에게 러시아 알파벳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내가 열심히 가르쳐도 할머니는 글을 잘 쓰지 못 했습니다. 내가 태어날 땐 할머니는 67세이셨습니다. 내가 할머니의 구부러진 손가락에 연필을 놓고 열심히 가르쳤는데 할머니가 알파벳을 외우지 못 했고 미소를 지으며 따라 공부했습니다. 할머니의 러시아어 발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혀는 한국어에 익숙했고 러시아어는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을….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여전히 러시아어를 못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살면서 공부하고 발음이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말 시작하면 어디에서 왔느냐고 한국에 온 첫날부터 오늘까지 늘 나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이제 나도 할머니의 마음을 알게 됐습니다. 공부하고 자유롭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한국어를 알고 싶고 배울수록 한국어는 깊어지고 넓어지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딸에게 철자법을 확인하고 있고 딸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는데 내 딸과 러시아어로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웃긴 이야기 나눈것 모두 러시아어로 하면 알아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 이번 여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갈 계획입니다. 오래 전부터 아빠와 엄마의 고향에 가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고 블라디보스톡에는 이모네 딸 사촌언니와 사촌오빠가 살고 있는데 이때까지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딸 새연이와 비행기 타고 두 시간 되지 않는 거리의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할 수 있을것입니다. 사진 속 블라디보스톡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보고 싶고 기대가 됩니다. 아이가 여행을 좋아해서 기대하고 내가 30년 동안 가고 싶고 못 갔던 땅 부모의 고향, 누구의 기대가 깊은지 잘 모르겠어요. 새연이는 지금까지 배웠던 러시아어를 러시아 친구들과 대화로 이루어질까 정말 많은 기대가 됩니다. 소련 때는학교에서 한국말을 배우지 못 해서 아주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때 배웠다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온 결혼 이민자들이 훨씬 또 빨리 한국 생활에 익숙하고 또 수월하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아쉬운 생각들이 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국가에서 엄마의 모국어 배울 기회를 준다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이 한국어도 알고 엄마의 모국어도 알면 한국사회에 큰 보탬이 될 거라고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어가 잘 되지 않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엄마들에게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면 가정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결국 국가도 도움을 받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엄마는 집에 혼자서 언어를 가르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못 한 경우 또 많습니다. 그래서 엄마들 중에서 학력이 되고, 하고 싶은 마음이 넘친 엄마들을 선택하여 모든 언어교실을 실시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다문화센터에서 모국어교실이 있기는 있어요. 그런데 광주 지역에서는 언어교실이 주로 중국어와 베트남어만 실시하고 다른 언어권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사회복지 전공을 해서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앞으로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국가에서 다문화법에 엄마의 모국어 새로운 법을 실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대한민국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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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의西來意는 abc(아시아밝음공동체)의 도움으로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정착하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