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경 스님은 얼마 전 네팔에 다녀왔다. 스님이 후견장으로 있는‘젊은 부처들’과 함께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온 것이다. 여름 우기가 끝나고 가을이 되면 또 다시 네팔에 가서 복구 작업을 할 예정이란다.‘젊은 부처들’은 10여 년 전부터 탄경 스님을 중심으로 모인 것으로, 도움을 요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의 모임이다.탄경 스님의 이런 활동은 2005년도에 파키스탄에 지진이 났을 때 모금 활동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저 모금한 돈을 전달할 것만이 아니라 직접 가서 돕자는 뜻이 모아졌다. 대학부 법회를 맡고 있던 탄경 스님은 그 청년들과 함께 파키스탄으로 떠났다. 약 1억 5천만 원의 성금과 구호품을 들고 가서 그것을 나눠주고 잠잘 곳을 마련해주고 지붕을 만들어주는 등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뛰었다.
“그곳에서 일하며 이게 내가 갈 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일을 하니 내가 중이란 것도 느껴지고 사람이란것도 느껴졌거든요.”
그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탄경 스님은‘젊은 부처들’을 꾸려오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스님이 가야 할 곳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태어난 것은 똑같은데 문화와 관습과 제도 때문에 대접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요. 대한민국안에서만이 아니라 이 지구 안에서, 그리고 지구 밖이 있다면 또 그곳에서도 그들을 도와야지요. 우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함께 살면서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더 가진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신라시대에 곳곳을 돌아다니며‘대안大安’이라고 소리치고 다니며 중생이 평온하기를 바란 대안 스님이 있었다. 탄경 스님은 이 시대에도 스님이라면 그러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신다. 힘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서 손을 잡아주는 것이 스님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스님의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며 원숭이 왕 이야기를 꺼내신다. 원숭이 무리가 냇가 과일나무에서 과일을 따먹다가 떨어뜨려 그것이 물줄기를 타고 내려가 바라나시까지 흘러갔다.
왕이 강물에 떠내려 온 과일을 먹어보고는 그 과일나무를 찾아왔다. 인간들이 그곳에서 과일을 따먹으니 원숭이들은 배가 고파도 가까이 오지를 못 했다. 그러다가 인간들이 낮잠에 들자 원숭이들이 다가와 과일을 따먹었다. 그러자 왕은 원숭이들을 다 죽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원숭이들의 왕이 그의 무리를 피신시키고자 협곡에 제 몸을 놓아 원숭이들을 건너가게 하였다.
그것을 본 인간의 왕은 죽어가는 원숭이 왕에게 왜 그리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원숭이 왕은 대답했다.‘죽는다는 사실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따르는 이들에게 행복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저 아래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누가 구해줘야 하겠습니까. 우리 스님들이 해야지요. 제가 해야지요. 이 시대가 바라는 스님은 소외된 이웃과 약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스님이에요.”
출가하려고 집에서 나와 차비를 하고 남은 돈이 오십 원이었단다. 그것마저 불전함에 넣고 나니 돈 한 푼 없었는데 지금 시주 받아서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느냐 하신다.
“출가를 하고 나서도 스님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도반들이 선방으로 갈 때, 저는 소외된 계층의 약자들 곁으로 갔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도울까 하는 게 저의 화두죠.”
탄경 스님은 절에 찾아와서 돈 달라고 밥 달라고 하는 이들을 결코 내치지 않는다.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서 계속해서 찾아오는 노숙자들도 있지만 그들조차도 내치치 않는다. 공양주보살에게 꼭 밥을 먹여 보내라고 당부한다.
“내가 제일 행복할 땐 퍼주고 나눌 때예요. 그리고 내 마음이 가장 부자일 때는, 내일은 무엇을 더 나눌까 생각할 때예요. 봉사활동 할 때는 제가 가장 깨어 있는 순간입니다.”
탄경 스님은 우리나라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힘을 쓰고 있다. 일자리를 잃어서 숙소가 없는 이들을 절에 머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은 스님이 직접 보증을 서서 월급을 받아주기도 한단다.
동두천에‘네팔 이주민 센터’를 만들어서 그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고,‘마하 이주민 지원 단체 협의회’의 운영위원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태국의 난민촌에 있는 유치원과 학교에 계속해서 지원을 해주고 있다. 탄경 스님은 없어서 굶주리고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단다. 노트 하나도 없고 공 하나도 없는 아이들을 보면 말문이 막혀버린단다. 그래서 스님은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젊은 부처들을 끊임없이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에 같이 봉사활동을 가요. 그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교육입니다.”
음식이 가득 찬 냉장고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 이 풍족한 삶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현 시대의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이 그 험한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사고와 태도가 완전히 바뀐단다. 자기 또래의 친구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이들은 서서히 부처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탄경스님은 우리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정표를 만드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부처가 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욕망으로 가득 찬 중생에게 있어 나눔이란 건 마음먹는다고 해서 쉽게 실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탄경 스님은 99명이 안 한다고 해서 자신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란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고 할 게 아니라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저항 세력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나눔이 쉽지 않다고 말하는 건 직무유기예요. 방법은 많아요. 우리가 하루에 커피 한 잔만 안 마셔도 할 수 있어요.
거창한 게 아니라 그런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그런 마음을 자꾸 연습해야 해요. 모든 사물에 대해서 관용을 가져야 해요. 그게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입니다.”
탄경 스님은 그 마음을 잃지 않고 끝없이 걸어가고 싶단다. 이번 생만이 아니라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인간의 몸을 받는다면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은 게 원이란다.
“저는 지장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지장보살님처럼 일체의 중생이 부처가 되지 않으면 나도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한테 바보라고 하는데 바보면 어때요, 이렇게 나누면서 사니까 행복한 걸요.”
탄경 스님은 이 시대가 원하는 스님의 모습을 늘 생각한단다. 변화해가는 이 사회에서 스님들만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박물관에 있는 전시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다. 그러니 어떤 게 가장 스님다운 모습일 것인지 끝없이 생각해야 할 것이란다. 풀 먹인 두루마기를 입고 다닌다고 해서 진정한 스님인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 내면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탄경 스님은 말씀하신다. 삽을 들어야 할 상황엔 삽을 들고, 일을 하는 데에 있어 승복이 거추장스럽다면 흔쾌히 승복을 벗어버리고 작업복을 입고 땀 흘리는 스님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홀로 숲길을 포행하는 스님들의 뒷모습을 보면 참 아름답다고 하는데, 저는 수많은 군중 속으로 걸어가는 스님이고 싶습니다.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을 어루만져주고 싶
어요. 그것이 제 일이고 제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