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철저’는 필자의 좌우명座右銘이다. 필자가 젊었을 때 시詩·서書·화畵를 함께 공부하며 일상의 금언으로 삼은 말이다. 타고난 재능도 특별한 교육을 받은것도 없으니 일생을 두고 우직스럽게 갈고 닦는 수밖에,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현대에는 학문이나 예술이 극도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된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시·서·화를 한 작품 안에 융합해 보려는 나의 꿈은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좌절할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마철저’란 교훈으로 옷깃을 다시 여미었다.
언제부터인가‘마철저’란 좌우명이 너무 우직스럽고 둔하며 지혜롭지 못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스피드 시대, IT시대, 우주 로켓시대에 너무나 동떨어지고 엉뚱한 것 같아서, 바꿔보려고 하는데 너무 늦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필자의 시아버지 무문無門 정근모鄭根謨 선생은 평생을 교육계에 종사한 독실한 불교신자이셨다.
<교육자는 사랑의 봉사자>의 저자이신 시아버님은 20세 때 동국대 철학과 명예교수 정종(호: 온 버림) 형과 함께 금강산 장안사長安寺 지장암地藏菴에 머무는 백성욱白性郁 박사를 모시고 60일간 입산수도入山修道한 적이있다. 방학 때면 시아버님은 자비로 준비물을 구비하여 광주 원각사 고등부학생들에게 설법하는 등 보시布施에 열정을 쏟으셨다.
필자는 젊었을 때 불교서적을 탐독한 적이 있는데, 어떤 부분은 난해하여 지방에서 시부모님이 올라오시면 밤늦도록 시아버지와 불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질문을 하곤 했었다. 시아버님은 중생의 3독三毒인탐貪·진瞋·치痴의 3화三火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열반이요 해탈이라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젊었을 때부터 뼈 병을 지닌 필자는 욕심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욕심을 털어버리는 변화의 시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마지막 기회라는 말은진리에 가깝다. 변화를 시도했다. 욕심을 털어버리려고 했다. 들고 가는 짐이 가벼우면, 걸음에 속도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테가 60을 헤아릴 때 20여년 간 매달려오던 그림 그리는 작업을 버렸다. 온 집안에 먹물과 채색, 대형 책상 위에 깔렸던 서예담요도 거두었다. 평생 외우고 읊고 하던 한시漢詩와 우리시를 멀리하고, 직접 시작詩作에 몰입했다. 시 창작도 깊이 갈이에 빠져드니 고뇌가 날로 커갔다. 그래서 시작을 멀리했다. 그리하여 시·서·화를 멀리했다.
이제는 생각나는 대로 글만 긁적인다. 아직은 사유의 봉창封窓을 통하여 밤하늘에 거니는 달을 볼 수 있다. 카랑한 정신의 한 조각이 남아 있어 떠날 자리를 비우고 있다. 구석구석에 묵힌 원고 뭉치를 책으로 묶고, 정리하고 버리며, 텅-비우고 있다.
다 버렸으니 좌우명은 날아갔는가?
‘시서화’를 다 버렸으니‘마철저’는 책상머리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아니다! 이제는 책상머리에서 아예 나의 마음 속, 마음벽에‘마철저’란 편액으로 동그마니 단 하나 걸려 있다. 그렇다면 칠십 중반, 이 나이에 무엇을 갈고 닦을 것인가?‘치매痴呆’라는 나 자신의 쇠막대기에 녹이 썰어 내려앉기 전에 매일 어느 귀퉁이를 돌바닥에 갈고 있다.
직접 빗자루와 걸레막대를 들고 함께 늙어가는 둥지를 돌본다. 마음의 구석에 노욕으로 곰팡이가 피지 않게 바람 높고 햇볕 좋은 날 마음의 창을 연다. 장롱 깊숙이 뭔가 반짝이는 것이 있으면, 더 반짝이게 자식들에게 간수하라고 떠맡긴다. 골방 가득 쌓여 있는 서화작품도 이제는 어디로 떠나보내야 한다. 비워야 한다.
버리는 작업과‘마철저’는 무슨 상관관계?
버리면 되는데 어찌하여 땀과 노력, 그리고 인내를 필요로 하는‘마철저’와 연관 짓는가? 비운다는 것,
지워버린다는 것, 버린다는 것, 노욕에서 툴툴 털고 일어선다는 것, 치매와 맞선다는 것은 쇠막대로 바늘을 만드는 것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쇠막대를 갈면 언젠가는 뭉두룩한 대못이라도 될 것이다. 그리고 한강물은 막을 수 있고, 메울 수는 있어도 인간의 욕심은 메울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매일 의식적으로 조금씩 갈고 닦아야 한다. 조금씩 버려야 한다. 마음의 눈을 밝히고 나의 주위를 살펴보며 꾸준히 내가머문 자리를 비우며, 세척해야 한다. 그날까지‘마철저磨鐵杵’를 묵상하며….